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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봉지 04화

3.

by 김단이


"저번에 우리 애하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는데, 글쎄 어디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소리가 글쎄 위쪽에서 나잖아. 저기 비닐봉지에서. 그런데 그게 점점 애기 울음소리가 이상한 비명처럼 변하더라고. 아휴! 하도 기분이 나빠서 집에 들어왔는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저 안에 고양이가 들어있는 것 같아."

“아니, 저기 나무꼭대기에 달린 비닐봉지에 고양이가 들어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경비원이 다소 흥분한 채 아줌마에게 소리쳤다. 어이없어하는 그를 보며 아줌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하여간 빨리 떼어내는 게 좋겠어요.”


아줌마의 말이었다. 그때 휠체어를 힘주어 뒤로 돌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녀의 표정을 본 것 같다. 그녀의 눈썹이 이상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나는 비닐봉지를 올려다본다. 비닐봉지의 한 손잡이 부분이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나뭇가지의 끝이 위로 말려 들어간 모양이어서 비닐봉지가 있는 곳까지 직접 올라가 잡아떼지 않는다면, 쉽게 떼어내긴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저렇게 위태롭게 걸려있는데, 좀 더 센 바람이 분다면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그리고 저렇게 비닐봉지가 한쪽만 걸쳐져 있는데 쥐나 고양이가 들어있었다면 나뭇가지는 단번에 부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봉지를 더욱 눈여겨보았다. 바람으로 인해 검은 비닐봉지의 옆면이 나풀거리며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아래는 아무런 미동도 없는 걸로 보아 뭔가 작은 물건이라도 들어있는 것 같긴 했다. 가령 깡통이나 음료수 캔 같은 것 말이다. 나는 내가 예상한 비닐봉지 안의 실체가 더 설득력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어떻게 저렇게 나뭇가지에 걸려있을 수가 있는 거지? 아무리 가볍다고 하더라도 뭔가 들어있었다면 바람에 날려도 저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도 없었을 텐데. 분명 누군가가 걸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저 나뭇가지가 있는 곳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도 아니었다. 만일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무게에 못 견뎌서 나뭇가지가 먼저 부러질 것이 뻔한데…. 도대체 언제부터 저기에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던 걸까?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경비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고 보니 쓸데없이 비닐봉지 하나에 아침부터 힘을 쏟는 것 같아 언짢아졌다. 이제 늦은 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거리를 마저 끝내놓아야지. 꽤 쌀쌀한 날씨에 오랫동안 나와 있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뛰다시피 우리 동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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