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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Aug 23. 2023

팔꿈치가 된 얼굴


 길을 가던 중이었다. 어떤 남성이 나를 지나쳐 앞서가고 있었다.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반팔 소매 아래로 함께 움직이는 팔꿈치를 보았다. 왠지 그가 뒤에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우리 몸에 전혀 다른 곳에 또 얼굴이 달려있었더라면 어디에 있었을까. 영화에서는 심심치 않게 뒷머리에 또 다른 얼굴을 숨기고 다니는 인물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머리보다도 팔꿈치가 본래 얼굴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세히 보면 사람마다 각기 다른 표정의 팔꿈치를 지니고 있다. 눈과 코와 입이 있었을 법한 이목구비도 어렴풋이 보인다. 원래 오른쪽, 왼쪽 팔 뒤마다 달려있던 얼굴이 점차 쓸모가 없어져 퇴화해버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뭉툭한 이목구비로 남아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팔꿈치에 달린 얼굴의 역할은 누군가를 해하는 일보다 나를 위한 기능이었을 것이다. 뒤에 작은 얼굴이 두 개나 달렸다고 뒷사람을 공격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욕하고 겨우 침이나 뱉었겠지. 작은 얼굴은 내가 뒤에 남긴 나의 결점을 살피고 나에게 말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람의 삶이란 앞만 보고 그대로 전진하기만 해야 하는 일이니 두 얼굴은 점차 필요를 잃게 된 것이 분명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내가 어떠한 결점을 흘리고 다니는지 이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니까. 내가 지나간 자리는 한 번쯤 되돌아보고, 뒤를 살펴볼 줄 아는 덕목 또한 불필요한 행위로 남겨졌다. 내 앞길만 깨끗하다면 사람은 쉽게 만족하고 안심한다.


 내 팔꿈치를 만져본다. 여기가 코, 그 위가 이마, 여기에 두 눈이 달렸겠지…. 손끝을 따라 매만지면 금방이라도 얼굴이 툭, 불거져 나올 것 같다. 나는 볼 수도 없는 두 얼굴은 내 뒤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너 지금 쓰레기를 흘렸으니 줍고 가라고.”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힘이 날 것 같다. 아무런 결점도 흠도 없으니 지금 하는 대로 앞으로 잘 가기만 하라는 그런 말들.



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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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가 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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