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만 길게 길게 자라나는 아보카도를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가지치기를 시도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과감히 줄기의 중간을 잘라 주어야 더 굵게 자라날 수 있다는데, 생각보다 지금까지 키워낸 이파리들을 그것도 꽤 길게 자란 줄기까지 싹둑 잘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내 마음만 힘든 일이라는 건 안다. ‘더 무성해지라고 잘라버렸는데 이러고 죽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정말 건강하게 아보카도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언젠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고는 가위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꽤 웃자란 줄기를 뚝, 잘라냈다. 그리고 상한 이파리까지 전부 다. 나는 처참하게 잘린 줄기를 꽤 오랫동안 손에 들고 바라보았다.
예전 같으면 잘린 아보카도 줄기처럼 지금의 나도 힘겹고 아프다고만 썼을 것 같다. 그러나 난 이제 눈 뜨고 코 베인 느낌으로 내 억울함만 먼저 호소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지금의 난 아보카도를 키우는 주인의 마음. 다시 어린아이처럼 키가 작아진 아보카도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잘려야 한다면 잘릴 수 있어야 하고, 아픔이 있어야 한다면 겪어내야만 해.”
아직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했지만, 내가 경험해 온 바에 의하면 그렇다. 그 아픔이란 준비 없이 닥쳐온다면 그렇게라도 이겨내야 했고, 준비가 다 되지 않았음에도 온몸으로 결과를 감당해내야 할 때도 있는 것이었다. 사실 가지치기하는 사람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미련과 아쉬움이 남지만, 이 아이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나 또한 마음먹고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아보카도가 곧잘 견뎌주기를 바라며. 잘라낸 잎과 줄기들은 꾸깃꾸깃 접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너의 몸과 마음이 무색하지 않게 튼실하게 자라주었으면 해.”
엉성하게 어린 모습을 한 아보카도에게 물을 흠뻑 주고 나서 영양제도 꽂아주었다. 더위가 한풀 꺾였으니 이제 마음껏 기지개를 켜기에도 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면서. 내 마음이 그에게도 닿길 바라면서.
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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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지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