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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01. 2023

소원이라도 빌고 싶은 밤


 이틀간 큰 무지개가 두 번이나 떴다. 한 번은 정말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고 그다음 날에는 쌍무지개가 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두 무지개 모두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뜬 무지개만 아주 희미하게 실루엣만 겨우 확인했을 뿐이다. 쌍무지개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친구들이 SNS에 두 무지개 사진을 열심히 올려준 덕에 새삼스레 무지개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감탄하며 구경할 수 있었다. 오늘은 슈퍼문이 뜬다고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이번엔 꼭 보고야 말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왠지 또 운이 없어서 보지 못할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늦은 시간까지 일정이 있던 오늘은 집에 돌아가면서 계속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달은커녕 별도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달리해가며 아무리 길을 걸어도 슈퍼문이 보이지 않자 귀찮아진 나는 별 미련도 없이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자정이 되는 시간,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지금 옥상에 빨리 가보라고. 잠옷 바람으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간 나는 그제야 황홀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을이 다가온 만큼 새파란 하늘은 굉장히 높아져 있었고 그 가운데 커다랗고 환한 달이 댕그랗게 박혀있었다. 얼룩덜룩한 표면까지 다 보일 만큼 선명하도록.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찾을 땐 보이지 않더니 우리 집 옥상에 이렇게 크게 떠 있을 줄이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는 오랫동안 슈퍼문을 올려다보았다.


 소원이라도 빌고 싶은 밤이었다. 그러나 내겐 소원이랄 것도 없었다. 내가 갖고 싶고 바라는 것은 왠지 ‘소원’이랑은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소원. 사실 나는 소소한 편이다. 그렇게 큰 걸 바라지도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누군가에겐 일상일 수도 있는 것을 나는 때론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다. 소원을 생각하다가 그간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자취만 남겨놓았던 생각의 단편들을 쭉 훑으며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언젠가는 ‘소원’의 모습을 띠기도 했던 작은 꿈 하나가 한 단어로, 한 문장으로 입속을 맴돌기도 했다. 아닌가? 누군가에겐 일상인 것들이 나에겐 소원이고 꿈이어야 하는 팔자를 나는 살아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원망은 아닌 물음만 가득 담긴 마음으로 난 계속 달을 올려다보았다.


 소원이란 건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진짜 운이 좋아서 이루어진 소원은 감사한 거고, 보통의 인생이라면 소원 같은 건 이루어질 리 없다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무지개도 번번이 놓치다가 오늘은 괜히 달을 보게 되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말았다. 오랜 시간 꿈꿔오던 일을 오늘 하루만 은밀하게 ‘소원’으로 승격시켜본다.


 어떤가요? 내 소원이. 이번엔 들어주고 싶지 않은가요?



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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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라도 빌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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