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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버스 Oct 18. 2021

[싱가포르] 디지털 시민권을 획득한 커리어 코치

(조금 오바해서) 듀얼 시티즌십을 갖게된 사연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다가, '얘는 에스토니아 시민이기도 해'라고 해서 화들짝 놀랐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에스토니아 전자 시민권이 있지.


에스토니아는 인구 130만의 작은 나라이지만, 유럽의 경제권에 속하는 EU 국가이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시민권을 가지고 사업을 하면 EU가 제공하는 법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국가 규모가 작다 보니 내수시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거고, 외국인들한테 e-Residency라는 혜택을 줌으로써 경제활동을 보다 활발하게 하려고 한 것 같다.

국가 거버넌스에 블록체인 기술을 가장 일찍 도입한 디지털 정부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고.


나는 우연찮게 에스토니아에서 전자 시민권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18년 1월 공식 사이트를 통해 digital nation의 시민이 되겠다는 신청서를 접수한다.

비용만 지급하면 큰 이슈 없이 모두 발급되는 전자 시민권이긴 하다만, 그냥 그 자체로도 신기해서 고민하지도 않았다.

한국에는 영사관이 없어 실물 키트를 받기가 번거로웠지만,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싱가포르에서는 바로 픽업을 할 수 있었다.

신청한 지 세 달 후에, 에스토니아의 Ministry of Foreign Affairs(외교부)가 발송한 e-residency kit(전자 시민권 키트)가 싱가포르에 도착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알려준 일시에 영사관에 가보니, 나 말고도 전자 시민권을 신청한 사람들이 7~8명 정도 더 있었다.

우리는 작은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전자 시민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간단한 교육을 들은 후에, 왜 전자 시민권을 발급받으려고 하는지를 대답해야 했다.

에스토니아 정부 측에서도 도대체 사람들이 이걸 왜 신청하는지 궁금하니--아니 이걸 진짜 한다고?, 간단하게 FGD(Focus Group Discussion 집단 인터뷰)를 실시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식 사이트에서 가져온 사진

내 영문 이름이 적힌 카드와 usb가 들어있는, 촉감이 좋은 까만 키트를 받았다.

usb가 카드리더기 역할을 해서, 카드를 인식시키면 랩탑으로 신분증 관리를 할 수 있게 설계를 해 놓았다.

이렇게 지구 반대편의 국가에 나의 digi-ID가 생긴 것이었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왜 전자 시민권을 신청했는지를 듣다 보니 대부분이 나와 같은 호기심에서 기인한 거였다.

실제로 바로 사업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하고 있고, 디지털 정부로 유명한 에스토니아에서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을 듣게되어 신청했다고 말했다.


내 대각선 방향으로 앉은 한 분은 악센트가 조금 있는 호주인 H였다.

H는 사람들의 커리어에 컨설팅을 해주는 '커리어 코치'였다.

사실상 국경 없이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에스토니아 디지털 시민권으로 인해 에스토니아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더 많은 일자리 교류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직접 체험해보고자 신청했다고 했다.

나는 면담이 끝나고 나서 H의 명함을 받았고, 링크드인의 인맥으로 추가를 했다.


얼마 뒤, 링크드인 메시지 기능을 통해 H에게 혹시 클라이언트가 생겼냐고 물었다.

에스토니아에서 전자 시민권을 준다는 내용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에스토니아가 IT산업의 중심 국가도 아니다 보니 관련 클라이언트는 아직 없다고 대답했다.

하긴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설립할 정도의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남에게 커리어 코칭을 의뢰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 떠나서 유럽권역이 주 활동 무대가 아닌 사람이 뜬금없이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설립한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일까 싶다.

아무리 디지털화가 잘 되어있고 절세 혜택이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에스토니아'여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e-Residency를 취득한 외국인중에 실제로 얼마나 법인을 설립하고 실제 경제활동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21년 10월 현재 사이트에서 조회를 해보니 한국인 국적을 가진 사업가는 아직 없다. (내가 사업을 시작하면 최초가 되는 것인가!)

전자 시민권을 취득한 자가 본인의 사업체를 사이트에 등록하는 게 필수는 아니라서 사이트 정보가 100% 정확도를 갖진 않을 것이다. 아무튼 조회되는 선에서 IT, 마케팅/광고/PR, 리서치/교육, 미디어 업종의 사업체들이 등록이 되어있다.


시민권 획득 이후 나는 실제로 에스토니아 탈린에 출장을 가게 되었지만, 전자 시민권은 전혀 활용을 하지 못했다.

대중교통에서 시민권 체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은행 계좌를 만들 시도를 한 것도 아니다 보니 쓸 일이 없었다.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도 딱히 대우를 해준다거나 하는 특이사항은 없었다.

다만 심적으로 아 내가 내 나라에 왔구나? 하는 정도였다ㅋㅋ

시민권 유효기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만료되기 전까지 이걸로 뭘 더 할 수 있을지는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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