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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ding Jul 26. 2016

한 번 쏟아진 믿음, 사랑

한 번 쏟아진 믿음과 관계

서로에게 쌓인 믿음과 사랑은 흔히 이야기하는 맑은 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속담 중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는 말처럼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다는 말이 있다. 믿음이나 사랑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엎질러진 물을 아예 못 담는 건 아니다. 다시 조금씩 담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진짜 사랑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맑은 물


컵 속에는 이미 맑은 물이 담겨 있다. 어딜 봐도 투명해 반대편에는 항상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간혹 흔들리는 물결 속에 그녀가 일렁이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내 눈앞에 있다고 확실하고 그녀를 볼 수 있다. 어떤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게 아닌 내 눈으로 보이는 그녀 자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를 보는 데 있어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봐주고 사랑해준다. 아마 엎지르기 전 컵 속에 든 맑은 물은 그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아닐까 싶다.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은 물



컵을 들고 있다가 잠깐의 실수로 물이 엎질러졌다. 어떻게든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한다. 비록 흘러내리는 물이지만 양손 고이 모아 조금씩 조금씩 컵에 옮겨 담아본다. 손에 묻은 먼지들이 물과 섞여 컵에 담기기 시작한다. 땅에 있는 먼지들이 컵 속에 함께 들어간다. 그래도 괜찮다. 엎질러진 물을 다 채울 순 없지만 그래도 꽤 맑은 물이 다시 컵 속으로 들어왔다. 이게 그녀와의 관계에서 한 번의 실수 후 보이는 믿음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그녀 역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다. 컵 속에 있는 먼지들에 그녀가 가려져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된다.





흙탕물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음에 화가 나 물을 또 엎질렀다. 이번엔 깨끗한 바닥이 아닌 모레와 흙이 가득한 땅에 엎질렀다. 다시 한 번 같은 실수를 한걸 깨닫고 물이 땅속에 스며들기 전에 어떻게든 다시 컵 속으로 주워 담았다. 내 손이 더러워지더라도 일단은 두 손 가득 물을 모았다. 어떻게든 모아보니 다행히 조금의 물이 컵 속에 남게 됐다. 그런데 더 이상 컵을 통해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더러워질 만큼 더러워진 흙탕물이 그녀의 모습을 가린다. 있는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고 싶지만 더 이상 그렇게 안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맑은 물



그녀와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니 어떻게든 우리 관계가 유지됐다. 그런데 참 다행이다. 흙탕물이 돼버린 우리 관계가 이제 끝날 줄 알았는데 지저분한 모레와 흙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다시 맑은 물이 됐다. 비록 물의 양은 줄었지만 다시금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 관계가 처음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괜찮다는 그녀의 모습과 줄어든 물의 양, 그녀의 믿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큰 걱정 없이 넘겼다.





컵이 흔들렸다.



그녀가 지쳤는지, 내가 변한 건지 들고 있던 컵이 흔들렸다. 함께 잡고 놓지 않았던 컵이 이제는 나 혼자 잡고 있다. 그녀가 손을 떼자 다시금 가라앉아있던 흙과 모레가 섞이며 흙탕물이 됐다. 맑은 물이 됐다고 굳게 믿었던 내 마음이 이제는 그녀가 지쳤는지 그녀 손에 의해 흙탕물이 됐다. 더 이상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컵에서 그녀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흙탕물이 맑아지길 기다리고
혹시라도 그녀가 보이지 않을까 기다린다.


_by puding



그래도 유리잔이 깨지지 않아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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