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사랑 보관함 마지막 이야기#1
8월 16일 하루 종일 그녀가 생각났던 날이다. 자기 전부터 일어나자마자 무언가에 이끌리듯 계속해서 그녀가 생각났다. 1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뭔가 달랐다. 아침부터 일어나 브런치에 글을 쓰고 출근을 했다.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한다며 조급해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꼭 그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퇴근하고 곧장 그녀를 만나러 갔다. 오후 9시쯔음 그녀 집 앞에 도착했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냥 날 더 미워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전송 버튼을 누르고 그녀를 기다렸다. 오늘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오늘이 지나기 전에,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이렇게 왔어. 마실 거 사 왔는데 볼 수 있을까? 안된다고 해도,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그냥 이렇게 해야 될 거 같아서 찾아왔어. 나올지 모르겠지만 10시까지 널 기다려볼게
사실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 종일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그녀의 생각이 났고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기에 찾아왔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다. 조금씩 초조해지기도 하며 그녀의 집 근처를 조금씩 걸어봤다. 역시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온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40분이 됐고 50분이 지나 10시가 됐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을 내려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고민했다. 아마 그녀에게 연락이 없었다는 건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을 거라는 뜻이겠지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연락했다. 아니 사실 어쩌면 그녀를 오늘은 꼭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락을 또 했던 거 같았다. 그리고 떨리는 이 마음 진정시키려면 그녀를 안 보고는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연락했다.
오늘은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는데 아니었나 봐. 하루 종일 떨리고 그러길래 오늘만큼은 무슨 날일 거라 생각했어. 아직도 너만 생각하면 조급해져서 이렇게 카톡도 보내고 문자도 보내나 봐. 이렇게 다시 또 1년이 지나겠지. 오늘도 고마워 소중한 걸 알게 해 줘서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껏 그래 왔으니깐 오늘도 똑같을 거야.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날인걸. 여러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사는 곳에서 등을 돌려 언덕을 내려왔다. 내가 느꼈던 이 감정을 믿고 찾아왔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 언덕 중턱을 내려갈 때쯤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답장이 왔다. 그녀에게.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거의 10개월 만에 처음 그녀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날 보면 더 힘들어질 건 오빠라는 걸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하기에 일부러 안 만나려고 하는 거야. 조심히 잘 가~
이렇게 1년 동안 그리워하고 못 본 것보다 힘든 게 있을까 싶었다. 지금 바로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큰 고민을 하지 않고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힘들지 않아" 이렇게 쓰고 나니 그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그녀의 대답에 내가 말할 수 있는 진심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본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녀가 하는 말 그대로 따라 집에 갔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조금씩 변한 건지 그러라고 시키는 건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힘들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1년을 그리워하며 어쩌면 그녀는 이런 습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던 물결이 보였다. 간혹 속마음을 숨기고 싶을 때, 혹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그녀는 항상 물결을 붙여서 보내곤 했다. 비록 예전에 나눴던 대화는 전부 지워졌지만 그때 느꼈던 내 마음은 그랬으니깐. 힘들지 않다는 말과 함께 다시 그녀의 집으로 올라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지만 막상 그녀 집 문 앞에 서서 생각해보니 아직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나만 이렇게 그리워하는구나 생각하며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그녀에게 말한다.
힘들지 않아. 지금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보다 힘든 게 있을까? 다시 올라와서 마실 거 문에 걸어놨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시원할 거야. 내려가고 있으니깐 걱정하지 말고 가져가. 고마워
정말로 힘들지 않을 거 같았다. 오늘 하루 종일 그녀 생각에 몸도 마음도 떨리는 지금보다 더 힘들 수 있을까? 그래도 그녀에게 더 이상 미움받기도 싫었고, 그녀의 말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돌아가고 있다고 보냈다. 괜찮았다. 그렇게 얼굴을 보지 못해도 그녀에게 답장이 왔으니깐. 아니 어쩌면 저 답장은 괜찮지 않았기에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대로 가버리면 어떻게 될까? 나 정말 괜찮을까? 그래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조금 더 기다리겠다는 말을 적었다 다시 지웠다. 결국 그녀가 좋아했던 차를 문에 걸고 다시 내려와 버스를 탔다. 한정거장을 지나갔을 때 그녀에게 다시 답장이 왔다.
지금 집 가고 있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잠깐 기다려도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문에 걸어 놓은 거 지금은 못 가져간다는 단순한 말일까? 사실 어떤 의미가 있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예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헤어진 지금 그녀에게 다가가는 건 어쩌면 다가가는 게 아닐 수 있지만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니 그녀의 답장을 받자마자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곤 이렇게 보냈다.
기다려도 될까?
알겠어
지나쳐온 버스정류장을 스치며 언덕을 뛰어올라갔다. 이상하게 눈앞에 번쩍이는 네온사인은 무슨 글씨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에게 가는 길만큼은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무언가를 흘려가며 그녀를 만났다. 함께 산책했던 그 공원에 올라가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더 오래 보고 싶을 때 함께 이야기했던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1년 만에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그녀를 쳐다봤다. 괜찮은 척하려고 웃으며 다가갔지만 그게 잘 안됐다. 그래도 괜찮았다. 1년 만에 이렇게 얼굴을 보고 그녀 옆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1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널 사랑했다는 기쁨에 날 눈물 흘리게 만들었고, 이별했다는 슬픔에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1년 만에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났다.
오늘 너에게 찾아간 건 기적이고,
오늘 너를 봤던 건 필연이라 생각해.
운명인지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나 아직은 운명이라 믿어도 될까?
_by puding
이번 스토리를 끝으로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사랑 보관함의 정식 연재는 종료하려고 합니다. 그녀와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눴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됐는지는 이번 스토리에 담을 예정입니다.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사랑 보관함은 종종 그녀가 오늘처럼 떠올라 힘들고 떨릴 때 간혹 써 내려가려고 합니다. 끝내는 글을 쓰기 전 지금까지 구독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자 마지막 글을 써 내려갑니다. 마지막 글인 만큼 직접 찍고 찍었던 사진들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댓글로, 카카오 상담소를 통해서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제 무언가가 바뀌진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조금 더 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오늘 쓰는 글은 이만 줄이고, 마지막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by pu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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