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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ding Aug 19. 2016

1년 만에 찾아온 대화, 마주침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사랑 보관함 마지막 이야기#2

그녀가 나에게 말한다.


공원 한쪽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고 곧장 걸어갔다. 멀리 보이는 가로등 아래에 그녀가 있었고 공원의 불빛은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1년 만에 찾아온 그녀와의 마주침. 1년이 지난 나는 아직도 그녀를 보면 두근거리고 떨릴까?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공원 입구에서 그녀에게 다가가기까지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보다 내가 정말 궁금한 건 한 가지였다. 아직도 내 마음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까? 그런 궁금증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금방 풀렸다.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조금씩 나려고 한다. 그녀 옆에 앉아서 눈을 마주치자 역시나 참고 있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닌 척하려고 고개를 돌려봤지만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눈가로 올린다. 그녀를 보고 싶었지만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됐다. 1년 만에 기쁜 과 슬픔이 공존하는.



오랜만이네, 1년 만에 보는 건가? 뭐하고 왔어?

 


운동하고 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음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이 눈앞에 있었으니깐.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고 온 것도 아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끌려서 그녀를 찾아왔으니깐. 뭐라고 이야기할지 몰라 아마 이렇게 첫마디를 꺼낸 거 같았다. 목소리도 안 나왔고 그녀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짧았다면 짧은 1년이 지나고 길었다면 긴 세월이 지났지만 그때 그 마음은 진심인가 보다. 다행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그녀는 나를 반듯이 바라보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가 왜 이러는지 뭐 때문에 힘든지 잘 알고 있어. 나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정리하지 못해서 힘들어봤기에 오빠 연락에 답장도 안 했고 냉정하게 대했던 거야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사귀기 전부터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사귀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완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5년 동안 기다렸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아픔을 알기에 나에게 더 냉정하게 대한 게 아닐까 싶었다. 글을 쓰면서도 많이 느꼈다. 어쩌면 그녀가 이렇게 더 냉정하게 대해주면 나도 조금씩 놓고 멀어지지 않을까 하며.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오늘만큼은 믿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지만 계속 부정해왔으니깐. 그리고 그 이야길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었으니깐. 마치 자신을 잊어달라는 말을 하듯 들려온 저 말이 마음이 아팠다.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 대화하고 싶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었으니깐. 그렇게 우린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헤어진 사람들이 연인에게 연락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 뭐하고 지내? 잘 지내?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땐 그렇게 의미 없는 말도 없다고 생각했고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떨어져서 지내보니 가장 궁금한 게 무엇인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잘 지냈는지 당연히 그게 제일 궁금하니깐.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물어봤다.



제부도 대진횟집에서 photo by puding



사실 오늘 이렇게 만난 건 뭔가 준비를 하고 왔던 게 아니야. 정말 어제부터 오늘까지 하루 종일 네 생각 만나고 오늘은 정말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해서 찾아왔어. 그냥 그동안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그런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어. 어쩌면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너무 좋다.



1년 동안 그녀가 뭘 하며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연결된 모든 걸 끊어버렸으니깐. 간혹 공개된 글로 올라온 소식 몇 가지가 내가 알 수 있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지 그녀는 막힘없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그녀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까지 그녀는 어떻게 알았는지 술술 이야기해줬다.



사실 오빠랑 헤어진 이유는 전에 이야기했던 첫사랑 때문에, 그 사람과 계속 연락을 했고 그 사람을 정리하지 못해서 오빠와의 관계를 끝내자고 생각했어. 오빠랑 연애하는 동안에는 정말 좋았지만 조금씩 마음이 변하고 그때가 왔을 때 냉정하게 헤어지자고 받아들인 거야. 그 이후로 그 사람과 만났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힘들던 중 설상가상으로 여러 가지 일 때문에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까지 같이 찾아오더라고. 나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무리해서 하기 시작하고 꿈도 포기할까 많이 생각했어. 그래도 한 번쯤은 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현실에 휘둘리지 말고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고 있는 거고. 그리고 그때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난 거야. 그 사람은 말이야 오빠처럼 말을 잘하거나 회사의 대표 거나 이런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그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내가 평소에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 끄집어내서 나를 위로해주더라고. 그런 부분이 너무 좋아서 만났던 거 같아.



그녀가 지금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지, 꿈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언니의 결혼식, 동생의 입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고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주듯 전부 이야기를 해줬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 내 머릿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그녀의 말은 저게 아녔을까 싶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적어왔던 내가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이 전부 담겨있었으니깐.


사실 그녀와 이렇게 헤어진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싸운 것도 아니고 아니 어쩌면 조금은 감정이 나빠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해보고 헤어졌으니깐. 내가 얼마나 잘못했을까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생각도 해봤고, 혹시나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다. 혹시나 하고 생각해봤던 그 이유랑 같았다. 그녀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잠깐 생각해봤던 이유로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머릿속으로 생각은 해봤지만 그녀의 입에서 이렇게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쩌면 우리 정말 잘 만나고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이별을 맞이했으니깐. 그렇다고 그녀가 지금 그 사람과 행복하지 않으니깐. 어쩌면 내가 그 사람이 생각 안 날정도로 잘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정말 못했구나. 내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못해줬구나 그냥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그녀의 표정이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지금의 나랑 똑같은 사랑을 그 사람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결혼식에는 꼭 참여하자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5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짝사랑을 하고 이제야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 결국엔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걸 봐야 한다니.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랑을 축복해줘야 한다니. 지금의 내 모습과 너무 똑같았다. 그렇기에 그녀가 지금까지 나한테 이렇게 대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아팠던 건 그녀의 기억 속에서 나는 단순히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자 말을 잘하는 강사 정도로 기억에 남아있는 듯 느껴져서 슬펐다. 그녀의 이야기를 이끌어내주지 못하고 그녀 곁에서 나무처럼 버텨주지 못한 건 사실이라도 그냥 나는 뭔가를 잘하는 사람 정도로 기억에 남았던 거 같았다. 반면에 지금의 남자 친구는 그녀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어떻게 이야기를 했든 지금 그녀 옆에는 그녀를 더 잘 보살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다. 오늘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녀에게 찾아왔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아직은` 그녀에게 다가갈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용산역 민속주점에서 photo by puding



그 사람이 결혼을 하고 5년 동안 짝사랑을 했던 내 마음이 이제 조금씩 정리가 되나 봐. 사실 아직도 그 사람이 생각나고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나 역시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5년이 지나서야 잊을 준비를 하는 것처럼. 오빠도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나도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오빠 마음 잘 알아. 그래서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거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금의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위로한다. 지금은 네가 더 힘들면서 나한테 이렇게 위로를 건넨다. 아니 어쩌면 위로가 아니라 그만 잊어달라고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건 그래 조금씩 잊어보자가 아니었다. 너도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할 때까지 그 사람을 못 잊었던 것처럼 아마 나도 네가 결혼할 때까지 5년이든 10년이든 계속 기억하고 잊지 못하지 않을까 싶었다. 너 역시 그때가 돼서야 잊을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그때가 와야 너를 놔줄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깐. 그녀를 이렇게 만났어도, 혹은 만나지 못했다고 아직까지 그녀를 잊을 준비가 안됐다. 비록 연인은 아니더라도 그녀는 내 인생의 큰 부분을 바꿔준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오빠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사람도 아니고 긍정적인 사람도 아니야. 지금 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많이 힘들고 여유도 없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계속 승무원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예전에 붙었던 호텔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도 조금은 후회하고, 또 아무 회사나 들어가서 취직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그래도 이런 문제로 내가 해보고 싶은 거 해보지 못하고 그냥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 왜 해야 하는지 정말 이 길이 맞을까 지금은 많이 고민도 되고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년 상반기를 마지막으로 도전해보려고.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힘들어 보이는 게 눈에 보였다. 평소에 힘들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까 싶은 그녀의 입에서 힘들고 여유가 없다는 말이 나왔다. 눈은 크게 뜨고 웃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냥 그녀의 말투나 목소리에서 힘이 없는 게 많이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항상 하고 싶은 꿈을 자신 있게 이야기했고 당당했던 그녀였지만 정말로 그런 모습에선 자신감과 긍정적인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잘 모르나 보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착한 너도 아니고, 긍정적인 모습의 너도 아니고, 매일같이 웃던 너도 아니라는 걸.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지금 1년 전도 지금도 내 눈앞에 있는 너였다는걸.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이렇게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그녀도 그렇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나 혼자 행복했던 걸 수도 있고 나 혼자 뭔가에 치여 살았던 거 일수도 있다. 그런 약한 모습을 보니 더 마음이 아파진다. 힘든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힘든데 도와주지 못해서. 지금이라도 잘해주고 싶다고 말해주고 싶다. 큰걸 바란 건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어주고 싶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걸 주고 싶었다. 그냥 그런 우리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구로디지털단지 VIPS에서 photo by puding



마지막으로 내가 궁금했던 건 당연히 지금 그녀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다. 처음 이야기를 할 때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해줬기에 어떻게 물어볼까 했지만 먼저 들려줬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브런치를 통해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그 편지를 계기로 지금까지 내가 썼던 모든 글을 다 읽어봤다고 한다. 그렇기에 내가 어떤 걸 궁금해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궁금했던 건 전부 들을 수 있었고 물어보고 싶은걸 다 물어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아니 물어보지 못하는 질문들을 빼고는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그녀와 나눴다. 그녀가 얼마 전에 다리를 다쳤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이야기까지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그중에서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적어봤다. 어쩌면 이 브런치가 지금 이렇게 글이 많아지고 그녀의 추억과 나 혼자만의 상상이 쌓였던 이유부터 원인,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그녀와의 만남으로 이렇게 마무리되는 게 아닐까 싶다.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후회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맞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쓴 글은 그녀와 다시 만났던 과정,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과정 속에 있었던 내 속마음이었다. 다음은 그녀에게 내가 해줬던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마지막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직접 찍었던 사진과 추억들로 적어보려 했는데 내가 찍은 사진 속에는 전부 그녀가 나온다. 어쩌면 내 시선과 카메라는 항상 그녀를 향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과정부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까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리 써 내려가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거 같아 이만 줄여본다. 아마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과 대화는 4편의 이야기로 끝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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