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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ding May 26. 2016

첫사랑,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수줍게 그리고 순수하게

To. 빙그래짱님



그녀를 만났다



중학교 2학년까지 산타할아버지를 믿고 고등학교 1학년까지 거짓말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순진했던 숙맥인 남자가 있었다. 평생을 연애도 한 번 못해볼 사람처럼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 조차도 없었던 남자. 그나마 군대를 가서 꽤 많은 변화가 있었던 그 사람이 처음으로 누군갈 좋아하기 시작했다. 말년휴가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숙맥의 남자가 처음으로 사랑을 해보려고 한다.





한 걸음 다가갔다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도 연인이 되는 방법도 모든 게 서툴기만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갔다. 매일같이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고 답장을 한 번 할 때마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그녀가 떠올랐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소하지만 그녀보다 일찍 일어나 먼저 문자를 보내야 했고, 자기 전에는 항상 그녀보다 늦게 잠들고 마지막 문자를 보내야만 안심이 됐다. 그렇게 그녀와 연락하며 한 걸음 가까워졌다. 아니 가까워지고 싶어 노력했다.



두 걸음 다가갔다



그녀와 나와의 거리는 150km. 그녀가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지만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생각뿐이었다. 먼 거리였지만 문제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우리 영화 한 편 볼래요?" 술 한잔 마실까, 밥을 먹자고 할까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꺼낸 생에 첫 데이트 신청이 영화였다. 살면서 여자와 대화라곤 인사밖에 못해봤던 내가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됐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단 걸 알려준 사람이다.



세 걸음 다가갔다



그녀와 데이트 약속이 하루 전날까지 다가왔다. 하루 종일 밤을 새 가며 데이트 코스를 짰다. 그녀가 뭘 좋아할지 영화는 어떤 걸 볼지 고민하며 하루 종일 설렜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 디즈니를 참 좋아했다. 음식점을 알아보고 아기자기한 영화를 예매한 후에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잠을 많이 못 잤지만 이상하게도 피곤함은 전혀 없었고 설레고 두근거림만 가득했다.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옷을 입어보며 데이트 준비를 했다. 그리곤 항상 필수품이라고 들었던 담요와 물티슈까지 챙기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와 만났다.





네 걸음 다가갔다



그녀와 만났다. 얼굴엔 긴장감 가득한 표정이 눈에 띄게 보였는지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자기가 알아본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며 데리고 갔다. 그녀도 나처럼 밤새 준비해온 건가 생각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건대에 있는 꽤 분위기가 괜찮았던 일식집이었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단 둘이 됐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걱정하며 왔지만 그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던 건지 다행히 대화는 기분 좋게 이어졌다. 덕분에 나 역시 용기 내서 그녀를 대할 수 있었고 꽃샘추위로 차가워진 그녀 손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었다. 그녀와 카페도 가고 구경도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찾아왔다. 내가 오면 함께 가보고 싶었던 바가 있다며 그곳으로 들어갔고 생전 처음 칵테일을 마셔봤다. 그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대화하고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며 하루 데이트가 끝났다. 지하철도 버스도 없는 새벽 2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첫차가 오는 시간까지 그녀가 사는 동네를 돌아다녔다. "다음엔 저기도 가봐야겠다" 추위도 외로움도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 편히 자고 있겠지만 마치 내 옆엔 그녀가 있는 기분이었으니깐.



다섯 걸음 다가갔다



우리는 더 많이 대화했고 더 많이 가까워졌다. 누가 봐도 널 좋아한다며 홍보하고 다녔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언제 고백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내가 좋아하는걸 들키진 않았는지 조마조마했다. 시간이 흘러 화이트데이가 다가왔고 벚꽃축제가 찾아왔다. 다시 한 번 데이트 약속을 잡고 고백하자 굳게 다짐했다. 고백할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또다시 고민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좋게 고백하거나 로맨틱하게 깜짝 선물과 함께 고백하곤 했던걸 많이 봤다. 그때는 그렇게 고백하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생이라 돈도 없고 모든 게 서툴기만 했던 나는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장미를 접기 시작했다. 데이트 날만 기다리며 장미 100송이를 접고 철사로 하나하나 줄기를 만들어 붙였다. 완성된 장미 100송이를 들고 꽃집에 찾아가 꽃다발로 만들었다. 화이트데이 사탕보단 초콜릿을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CNA에서 예쁜 유리병을 골라 초콜릿이 담긴 종이 장미 화분을 만들었다. 그렇게 화분을 들고 그녀를 보기 위해 150km를 달려갔다.



여섯 걸음 다가갔다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건대에 도착했다. 지하철 사물함에 초콜릿 화분을 숨기고 작은 초콜릿 하나만 사든 채 그녀를 만났다. 화이트데이라며 초콜릿을 주고 데이트를 했다. 저녁쯤만나 밥을 먹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여의도 벚꽃축제를 구경했다. 바닥에선 불빛이 나오고 걸어갈 때마다 꽃잎은 떨어졌다. 손잡고 걷은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느꼈다. 시간은 흘러 점점 더 어두워지고 언제 고백할까 생각하다 보니 순식간에 그녀와의 데이트가 끝났다. 결국 그녀 집 앞에서 초콜릿 화분과 함께 고백하기로 다짐하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일곱 걸음 다가갔다



여의도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니 이미 막차가 지나갔다. 금요일이라 늦게까지 운행할 줄 알았던 지하철이 주말 시간으로 운행했다.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어쩔 줄 모르며 아무 말도 못 하였다. 그녀가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날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당황한 내 모습을 알았던 건지 쉴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며 먼저 말을 해줬던 그녀. 결국엔 근처에 있는 찜질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나쯤 있을법한 찜질방은 나오질 않고 늦은 밤 계속 걷던 그녀는 조금씩 지쳐갔다. 10분만 더 찾아보자며 그녀를 업고 돌아다녔다. 결국 찜질방을 찾지 못하고 작은 근처에 보이는 모텔로 들어왔다. 예전 이사를 자주 다녔을 때 가족과 처음 모텔에 가보고 그 이후로 처음 가본 곳이다. 속으로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망했다"



여덟 걸음 다가갔다.



그녀는 상당히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혼자서 심장이 뛰었고 혹시나 나를 오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추울까 이불은 꼭 덮어줬다. 혼자 의자에 엎드려 불편하게 밤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그녀는 일어나서 나에게 이불을 덮어줬고 씻으러 들어갔다. 손만 잡고 잔다는 말이 있던데 그 날은 손조차 잡지 않고 잠들었다. 그녀가 씻는 중에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씻고 나왔을 때 그녀의 표정이 어떨까 걱정만 앞섰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나왔다. 나와서는 날 보고 기분 좋게 웃어줬다. "다행이다" 그녀에게 들릴 듯 말 듯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왔다. 결국 그날 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갔다.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결국 당황했던 마음과 함께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지 못한 채 헤어졌다. 초콜릿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그리고 그녀에게 먼저 연락할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낯선 곳에 데려갔다는 생각으로도 이미 실격이라 생각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온갖 고민과 신경을 많이 써서 그랬는지 앉자마자 잠들었고 150km를 다 가서야 깨어났다. 그녀에게 뭐라고 이야기할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게 맞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도착한 걸 알았던 걸까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잘 도착했어? 많이 피곤하지?" 고마웠다.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었기에 모든 게 서툴렀던 나에게 그녀는 다가왔다. "이제 집 앞에 도착했어요. 어떻게 딱 맞춰서 연락했데요" 큰 의미 없이 답장을 보냈다. 결국 고백하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꼬여버렸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말에 그녀가 답장을 보냈다. "초콜릿 맛있게 먹고 있어. 꽃도 예쁘네, 우리 오늘부터 1일이지?"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당연하지



내 인생의 첫사랑이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를 위해 장미를 만들었고, 그녀를 위해 목도리를 짜 줬고, 그녀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었다. 내 생에 가장 순수하고 돈 없이 행복했던 연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기도 하다. 그녀는 어리숙하고 서툰 날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 옆에 기절한 듯 잠든 그녀의 손조차 못 잡아주고 당황했던 사람을, 고백할 때 기념일 프러포즈 하듯 말도 안 되는 선물을 준비했던 사람을, 고백도 못하고 쩔쩔매던 사람을. 그런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녀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키는 나보다 한참 작았다. 지금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작고 귀여운 그냥 딱 그런 여자였다.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두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세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여덟 걸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녀가 다가왔다.
한 걸음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_by pu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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