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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ding Apr 21. 2016

사랑 잔혹동화 #어장관리

어장관리 잔혹한 진짜 속마음

사랑 잔혹동화 #1

어장관리



뭐하고 있어?



늦은 밤 너무 심심하다. 할 것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다. 그냥 생각나는 사람들한테 문자나 보내보자. "뭐하고 있어?" 문자를 보낸지 2분이 지나고 답장이 왔다. 잠이 안 와서 누워있다는 친구, 술 마신 다는 친구, 컴퓨터 한다는 친구. 근데 답장 온 사람들이 모두 여자다. 왜냐면 내가 여자한테만 문자를 했으니깐. 그렇게 가끔 떠오를 때 뭐하고 있냐며 연락하고 심심함을 달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많고 많은 친구들 중에 나름 성격 잘 통하고 외모도 괜찮고, 그런데 사귀기는 싫고 친하게 지내는 정도 되는 친구들한테 보내는 말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없다. 그냥 그 사람들은 내 심심함을 달래 주는 사람들이니깐.



아 진짜? 영화나 볼래?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는데 여자친구가 없다. 누굴 데려갈까 하다가 그냥 만만해 보이는 네가 생각나서 불렀다. 데이트라고 생각하지 마 그냥 딱 영화를 보려고 부른 것뿐이야. 좋아한다고 착각하든 뭐하든 상관없어. 난 널 사귈 생각이 전혀 없으니깐. 그러니깐 나 말고 영화에 집중해.



영화 잘 봤다, 술이나 한 잔 할까?



갑자기 술도 당기고 이왕 이렇게 만난 거 얘랑 하루 자야겠다. 어차피 얘는 날 좋아하는 거 같으니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술값도 낸다는데 거절할 것도 없고 딱히 내가 먼저 표현한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술 마시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데 솔직히 듣기 싫다. 그냥 지 주제나 알았으면 좋겠는데 뭐 저렇게 말이 많은지. 뭐 그래도 술은 얻어먹는 거니깐 그냥 들어줄게. 빨리 마시고 자러 가고 싶다. 설마 튕기거나 그러진 않겠지?



뭐? 나 좋아한다고? 아직 준비가 안됐어.



알고 있어. 그러니깐 심심할 때 널 부르고 여자가 생각날 때 너랑 잠자지. 근데 나는 너 전혀 좋아하지 않아. 준비가 안된 게 아니라 그냥 너랑 연애하고 싶지 않아. 근데 남남처럼 지내기 싫으니깐 적당히 핑계 대는 거야.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하면 너도 미련하게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지. 난 좋아하는 사람 만날 때까지 너랑 그냥 딱 그 정도로 만날 거니깐 그렇게 알고 있어. 아 그렇게 알고 있으면 안 되는구나. 그냥 계속 날 좋아해 적당히 하다 지치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널 좋아하지 않아. 그냥 너는 내가 잠깐 심심할 때 만나는 사람이야. 뭐하고 있는지 물어봤지 사귀자고 한건 아니잖아. 혼자 착각하지 마. 영화 봤다고 다 커플이면 세상 사람들이 다 커플이게? 이쯤 했으면 이제 그만 떨어져. 너 말고도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렇게 귀찮게 해. 내가 좋으면 그냥 너 혼자 좋아해. 왜 나한테 뭐라 그러는지 이해가 안 돼. 너랑 잔 건 맞는데 너도 좋다고 동의한 거잖아. 내가 자러 가자고 했을 때 싫다고 안 했잖아. 그래 놓고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되지. 넌 그냥 어장이야 너한테 쥐꼬리만큼도 관심 없었어 그러니깐 이젠 그만 사라져줘.






사랑을 가볍게 생각하고, 사람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잔혹동화를 써보게 됐다. 어떤 계기에서인지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사귄다는 건 굉장히 성스럽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고, 또 사람을 가볍게 보게 됐다. 시대의 트렌드인지 인식의 변화인지 결국 어장관리라는 말이 생기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어장관리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적여봤다. 막상 글을 쓰다 보니 더 이상 적지 못할 정도로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불과 90년대만 해도 그토록 성스럽고 조심스럽고 아름다웠던 사랑이 이렇게 변했을까.


쓰다보니 감정이 격해질 정도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울컥한다. 짧게 줄였지만 아마 어장관리란 이런 느낌으로 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리움을 토하는 글도 아니고 사랑을 말하는 글도 아니다. 그렇기에 쓰는데 힘들었지만,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를 대하는 상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론 이런 글이 일반화의 오류로 번져지길 바라는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빠져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모른채 혼자만 사랑하고 있을 순 없지 않을까? 사랑은 `서로` `함께`하는거니깐. 쓰기 힘든 글이지만 이런 글도 필요하다 느끼면, 필요하다고 말하면 간혹 한 번씩 써보려고 한다.



아 근데 말이야.
내가 여자친구가 생겨도
그냥 넌 계속 날 좋아해라.
데리고 놀아줄게.


_by pu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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