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농담 한 송이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집. 하지만 언제나 다음 시로 넘어가지 못하고 첫 시에서 멈추게 되는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시인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서러움을 서로 보듬고, 무거운 마음을 가벼운 농담처럼, 때론 나비의 날갯짓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을까. 고고학자처럼 마음과 언어를 채집하던 시인이 부디 그곳에서는 나비처럼 훨훨 자유롭게 날며, 농담 한 송이와 함께 해사한 미소를 짓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