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있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머리털이 부글부글 자라서 눈을 점점 덮기 시작한 뒤로 먹을 걸 찾아내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빠 차가 저 멀리서 온다면 얼른 발견하고 달려 갸야 하는데, 이래서는 엄마 아빠의 냄새가 코 앞까지 오기 전에는 달리지 못할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엄마 아빠가 나를 못 알아보지는 않겠지? 에이, 그럴 리가 없다. 우린 가족이니까. 그나저나 한낮에는 슬슬 더워지고 있어서 벌레가 너무 많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쬐끄만 것들이 여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게 아니다. 특히 모기의 앵앵거리는 소리가 정말이지 매일 밤 나를 히스테릭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저기 간질간질하고 따갑기도 하다. 목욕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샴푸든 뭐든 박박 문질러서 몸에 붙은 이 지저분한 것들과 이별하고 싶다. 그런 후에 한 2년쯤 목욕을 안 하면 그만이지. 오늘도 아빠차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내가 못 본 건 아닐까?
부스럭부스럭.
'엇, 발자국 소리!'
여긴 바닷가가 보이는 자동차 도로다. 나처럼 중간에 쉬를 해야 하는 몇몇 생명체가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럼 혹시 드디어 엄마랑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온 걸까? 엄마! 아빠!
이 거슬리는 머리털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다. 킁킁. 아는... 냄새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지? 그런데 고기 냄새도 함께다. 배고파 쓰러질 것 같은 때가 되면 기가 막히게 먹을 거 한 조각쯤은 생긴다. 이래서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고 하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는 아니지만 고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일리가 없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까지 애교를 보이는 건 나답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꼬리가 흔들리고 말았다.
'여기요! 여기요!'
"얘는 쉬운데? 사람한테 경계심이 없나 봐. 간식 켄넬에다가 넣고 얼른 태우자."
"덩치가 있어서 각오했는데, 다행이네."
간식이 들어간 하우스다. 이건 저 하우스가 좋은 곳이라는 신호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다. 혹시 나를 집에 데려다주려는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 착하게 살았더니 이런 우연이 나에게 생겼나 보다. 집에 가면 아빠한테 왜 차를 세우지 않았냐고 따진 다음 엄마한테 빗질을 해달라고 해야겠다. 아, 그전에 밥부터 먹어야지. 그릇 가득히 쌓인 사료, 한 그릇 먹고 두 그릇 먹고 또 먹을 거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잠을 자야지. 집 안에는 모기가 없을 테니까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덜컹. 하우스에 들어오니 잠이 온다...
덜컹덜컹. 차는 아직 멈추지 않았는데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잠깐, 엄청 많다. 웅크렸던 몸을 펴고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나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집에 가는 길은 아닌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왕왕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차가 드디어 멈춰 섰다. 조금 전 고기를 주고 차를 태워준 고마운 사람들은 하우스 문을 열고 낡은 목줄을 내게 채웠다. 그리고는 개 짖는 소리가 맹렬하게 들려오는 커다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비닐이 겹겹이 쌓인 커다란 문. 키 큰 사람 세 명쯤은 세로로 세워놔도 될 것 같은 높이. 지붕이 제대로 씌워져 있는 건지도 의심스러운 건물이다. 무엇보다 저 안에서 들리는 개들의 소리가 나를 환영하는 소리는 아닌 게 분명했다. 소싯적 힘 꽤나 쓸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풀이랑 모래랑 츄로스 꽁지만 겨우 먹고 지내다 보니 거의 뼈 밖에 안 남은 몸으로는 나를 잡아끄는 사람들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강한 의지가 무색하게도 사실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끼이익. 낡은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코를 찌를 듯한 악취가 쏟아졌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가 바로 여기라는 걸 증명하듯 귀를 아프게 하는 우렁찬 고함들은 덤으로 나왔다.
"저기 좀 봐, 하나 또 왔어."
"쟤는 뭐 하다가 여길 왔대."
"야! 너도 버려졌냐?"
"안 궁금하고 나나 내보내줘라, 이것들아!"
세상 온갖 소음은 다 모아놓은 것 같다. 냄새나고, 시끄럽고, 교양이 없다. 얘네들은 가정교육을 안 받은 애들인 게 분명하다. 머리털이 눈을 가린 게 오히려 나은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자란 것들과 눈싸움을 할 기운도 없으니까.
"자, 들어가."
나를 끌고 온 사람이 비어있는 철창 하나의 문을 열었다. 녹이 잔뜩 슬어서 몸에 닿을까 두렵다. 어기적 어기적 시간을 끌자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나는 구겨지듯 철창 안으로 들어갔고, 곧장 문은 밖에서 철컹 잠겨버렸다. 사람들은 문 밖으로 나가기 전에 지저분하고 낡은 밥그릇을 나를 넣은 철창 안에 넣었다. 파란색 플라스틱, 유치한 뼈다귀 모양에 가운데 반으로 나눠져 있는 디자인이다. 마치 강아지 그릇계의 짬짜면 그릇 같은 모습이랄까. 게다가 누가 쓰던 건지 이빨자국이 덕지덕지 나있고, 설거지는 언제 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사람들이 나가고 난 뒤에 소음군단은 다소 기세가 누그러졌다. 아무래도 문이 열리면 소리를 지르자는 자기들끼리의 약속이라도 있었나 보다. 여전히 떠드는 애들이 많았지만, 아까보다 조금은 조용해지고 나니 약간은 주변이 느껴진다. 여기는 내가 들어와 있는 이런 철창이 여러 층으로 쌓여있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아파트? 아니 이런 건 닭장이라고 하는 거였던가. 내 자리 위에도 뭔가가 덮여있는 것 같다. 당연하게도 옆 철창도 있다. 바닥은 흙이다. 다른 개들의 냄새가 섞여 있다. 잠깐만, 누가 잠자리에 배변하라고 했지? 못 배워도 이렇게 못 배웠을 수가 있나? 문화충격 그 자체다. 해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환기도 안되는지 곰팡이의 쿰쿰한 냄새에 교양 없는 것들의 똥오줌 냄새가 섞여서 지옥이나 다름없다.
"반가워, 신입."
옆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머리를 좌우로 털어가며 시야를 조금이라도 확보하려고 하다 포기한 뒤 냄새를 맡았다. 나이가 있고 덩치가 별로 안 큰 녀석 같다. 아마 내 또래이려나. 피곤함을 억누르며 가장 궁금한 질문을 건넸다.
"반가운 건 모르겠고, 여긴 도대체 뭐야?"
"가족을 기다리는 방."
"여건 도저히 가족이 올 거라는 기분이 안 드는데?"
"운이 좋으면 오기도 해. 그렇게 운 좋은 애들은 거의 없지만. 그래서 또 다른 이름도 있지. 궁금하니?"
"내가 지금 무척 피곤해서 상대해주고 있지만, 쓸데없이 거슬리게 말한다면 재미 없어질 거야."
"진정해, 신입. 농담을 모르는 녀석이군. 좋아, 알려주지.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을 기다리는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