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암'
오랜만에 잠깐이라도 편안한 잠을 잔 것 같다. 새 가족은 이른 아침부터 안방에서 나와 주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늦지 않게 아침밥을 챙겨주는 모습은 마음에 든다. 역시나 자로 잰 듯 담아주는 밥양은 별로지만 말이다. 우드득 우드득 순식간에 밥을 먹었다. 어쩌면 우드득 우드득이 아니라 터업 터업하고 삼켰는지도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배고픈 생활 한 번쯤 해 본 강아지라면 코 앞에 있는 밥그릇에 눈 돌아가는 심정을 이해할 테지. 주방 식탁에 앉아 멍하니 나를 보는 새 가족에게 다가갔다. 새 가족의 손 아래로 머리를 쑤욱 들이밀며 툭툭 쳐서 올렸다.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쩐지 눈이 부은 것 같다.
"미안..."
아까부터 웅얼거리는 소리는 '미안'이었나 보다. 왜 미안하지? 아침밥을 조금 준 게 미안한 일이라면,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말 대신 점심을 더 많이 주면 된다니까. 답답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잠시 뒤에는 자고 있던 아이가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와락 안아버리며 온몸을 마구 문질렀다.
"푸딩! 잘 잤어? 밥 먹었어? 쉬했어? 나쁜 꿈 안 꿨어?"
'이 녀석은 너무 격하잖아.'
후다닥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쪼르르 따라와서는 부비적거렸다. 다시 거실로 피했더니 이번에도 여지없이 따라왔다. 나는 아이에게도 순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먹은 건지, 지난 길거리 생활에 지친 건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그냥 포기하고 있어보니 이 아이의 격한 애정표현이 마냥 싫지만도 않은 것 같다. 잠시 후에는 새 가족이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입에 욱여넣었다. 지독하게 맛없는 알약 몇 개를 입 안 깊숙이 넣고 입을 못 열도록 양손으로 잡은 뒤 콧구멍에 바람을 훅 불었다.
'윽....'
꿀꺽. 나도 모르게 약을 삼켰다. 분명 의사 선생님이 준 약은 맛있었는데, 이 약은 뭐가 이렇지. 독이라도 탄 건가? 나쁜 사람인가? 콧구멍 공격 다음은 귀청소였다. 귀에 물 같은 걸 집어넣는데 기분이 너무 별로다. 내가 듣기로 나의 조상들은 물에서 뭔가를 물어왔다던데 난 물이 썩 달갑지 않다. 일단 목욕부터 최악이니까.
"엄마 분리수거 잠깐 다녀올게. 푸딩이랑 같이 있어."
"응! 천천히 와. 푸딩이랑 같이 있으니까 안 무서워."
새 가족이 부은 눈으로 쓰레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아이는 즉시 나에게 들러붙어 또다시 문질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뭐랄까. 내가 그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뭐더라... 문지르면 나타나는 파란색 괴물 같은 거였는데...
"푸딩아. 너무 좋아. 푸딩이도 언니가 좋아?"
'글쎄. 우리 알게 된 지 하루도 채 안된 것 같은데. 알아갈 시간 정도는 필요하겠지.'
"너도 그렇다고? 그럴 줄 알았어."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아이는 마냥 웃고 있었다. 분리수거를 간 사람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서 현관이 보이는 곳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누워버렸다. 그랬더니 아이도 내 옆에 찰싹 붙어 팔베개를 굳이나 해주려고 애썼다. 솔직히 내가 다리를 쭈욱 뻗는다면 이 아이와 몸길이가 비슷하거나 내가 더 커 보일 거다. 그럼에도 나를 동생처럼 대하려는 아이가 웃기고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렇지만 적당히 문질렀으면 한다.
'하도 문질러서 털 다 빠지겠다.'
띠리리릭. 한참이 지나서야 새 가족이 돌아왔다. 그런데 얼굴이 여전히 어둡다. 눈은 더 부은 것 같고 콧물도 쿨쩍쿨쩍거리며 느린 걸음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잠깐 앉아볼까?"
'대체 왜 계속 눈이 부어있는지 말해주는 건가요?'
"사실은 엄마가 밤새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푸딩이를 키우기 어려울 것 같아."
"..."
"정말 미안해."
'...'
조금 전까지 꺄륵꺄륵거리던 아이가 얼굴이 굳어버렸다. 이 집 사람들은 다들 얼굴이 어두운 게 기본인가?
"왜? 우리가 키우기로 했잖아."
"어제 병원에서 들었잖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수술도 필요하대..."
"그래서? 유기견은 아플 수도 있다고 공부했었잖아! 유튜브에서 보고 갔잖아."
"그렇긴 한데. 심지어 대형견은 병원비도 이렇게까지 비쌀지 몰랐어. 찾아보니까 유선종양은 재발 가능성도 높고 심하면 수술비가 몇 백만 원씩도 든대. 미안하지만 엄마는 그렇게까지 돈을 내긴 어려울 것 같아."
"엄마 정말 너무해. 푸딩이는 이미 유기됐던 애라고. 우리가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했잖아. 엄마가 지금 얘기한 거 이미 알고 있던 거잖아!"
"게다가 너 지금도 피부에 알러지가 올라왔어. 새벽에는 열도 나더라."
"약 먹으면 되잖아. 집에 알러지 약 있잖아."
"엄마는 네가 앞으로 매일 약을 먹으면서 살길 바라진 않아. 그리고 어제 산책할 때 마주친 사람들 표정... 아파트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하나? 시비 걸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던 일이 바로 일어났지. 엄마는 역시 사람들이랑 싸우면서 살 자신이 없어."
'...'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한들 아무도 못 듣겠지만. 어쨌든 왜 집에 오는 길부터 얼굴이 어두웠는지, 왜 병원에서 목소리가 떨렸는지, 왜 새벽에도 몇 번이고 나와서 나를 바라보다 들어갔는지, 왜 미안하다고 계속 말했는지, 왜 눈이 점점 부어갔는지는 알게 되었다. 나는 눈치가 무척 빠른 강아지이다. 이런저런 견생 7년 살다 보면 이런 눈치쯤은 원하지 않아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새 가족은 나를 하루 만에 버리겠다는 얘기를 하는 중인 거다. 새 가족은...
'새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겠구나... 어차피 그럴 거면 밥이나 많이 주지.'
"보호소에 전화했는데, 주말이라 아직 서류가 처리되지 않아서 오늘 안에 데리고 오면 받아주겠대. 품종견이라서 그... 안락사 명단에는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다행히 그러니까 우리보다 더 돈 많고 마당도 있는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이 가족이 되어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아."
"하나도 다행이지 않아. 안락서 명단에 안 올라가는 거 어떻게 믿어? 자리 없으면 언젠가 올라갈 수도 있잖아. 돈 많고 마당 있는 사람이 언제 푸딩이를 데리러 올 줄 알고, 그 쓰레기장 같은 곳으로 다시 보내? 엄마도 거기 봤잖아."
"... 미안해."
'...'
둘은 마주 보고 앉아 대화했는데 둘 다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다. 나는 슬쩍 두 사람 사이에 팔 하나를 들이밀고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철푸덕 배를 뒤집고 누워버렸다.
'실례할게요.'
"흑흑. 이거 봐. 푸딩이 좀 봐. 보내지 말라잖아. 우리가 좋다잖아!"
"미안해, 푸딩아. 미안해, 라하야... 엄마가 다 미안해."
'우는 건 괜찮은데 내 얼굴에 콧물은 떨어뜨리지 말아요.'
두 사람이 양쪽에서 나를 끌어안고 울어대는 통에 우리는 셋이 한 묶음이 되어버렸다. 좋아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목욕을 해서 나를 따라다니던 지지한 똥오줌 냄새가 사라졌다. 오랜만에 고소한 냄새가 나는 사료를 먹었고, 누가 먹다 버린 츄로스 꽁지가 아닌 멀쩡한 강아지용 고기 간식도 먹었다.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예쁘다 칭찬을 듣고 쓰다듬을 받았다. 오랜만에 포근한 이불 위에서 잠을 잤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 딱 하루 동안만 말이다. 괜찮다. 다시 그 쓰레기장 같은 보호소에 돌아간대도 돈 많고 마당 있는 집에 사는 누군가가 나를 입양할지도 모르니까.
'그럴 리가 있나.'
멍청한 소리이다. 괜찮지 않다. 나와 평생을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 한마디 인사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에 나를 버렸다. 굶어 죽기 직전에 겨우 새로운 집이 생기나 했더니 하룻밤 만에 버려진다. 그런데 다음은 부자 가족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강아지가 주인공인 영화도 그렇게는 안 만들 거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제 내가 이 집에 왔던 것처럼 오늘 이 집에서 나가는 것도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없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할 마음이 없다’는 말과 다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여기서 며칠은 더 잘 테다. 그러고 나서 말할 테다. 보라고, 난 생각보다 밥도 많이 먹지 않고, 집 안에 똥오줌도 안 싸고, 가구를 망가뜨리지도 않으며, 문 밖에 인기척이 들려도 시끄럽게 굴지 않고, 눈치도 빠르고, 아랫배에 혹이 있다 한들 딱히 아파하지도 않는다고. 이렇게 훌륭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느냐고. 만약 내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몇 시간 동안의 눈물 폭풍이 지나가고 난 후 차에 올랐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주택 앞에 차가 멈추고는 아이가 내렸다.
"다녀올게."
아이는 엄마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고 그 계단을 따라 어제 운전을 했던 언니라는 사람이 내려왔다. 눈치는 빠르지만 배알이 없는 나는 뒷좌석에서 일어나 어제 만난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솔직히 이건 나로서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는 건데, 제아무리 속상한 때라도 반가우면 꼬리가 먼저 움직여버린다. 언니라는 사람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활기차게 인사해 주었다.
"푸딩이 잘 잤어? 어구, 예뻐라."
'잘 자긴 했어요. 배고픈데 뭐 없으신가요?'
"아침부터 미안해. 혼자 가기 또 그래서..."
"그래, 전화받고 당황했지만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니 뭐. 잠 못 잤지? 내 차로 갈까?"
"아니야. 오늘은 내가 꼭 운전할게."
울면서 운전하는 위험해 보이는 한 사람과 덤덤하게 앉아서 가끔 나를 돌아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한 사람, 그리고 입양 하룻밤 만에 버려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강아지 하나를 태운 차가 먼 길을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