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차 안에 달린 거울로 힐끔힐끔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내 바로 앞자리에는 아이가 앉아있는데 이 콩알만 한 녀석이 나를 자꾸 돌아보면서 싱글싱글 웃는다. 왜 자꾸 웃는 거지? 아이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또 휙 돌아보고는 짧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보려고 한다.
"엄마, 이렇게 하면 강아지랑 친해질 수 있대."
'엉터리 스마트폰 같으니라고.'
"안 되겠다. 창문 열어야겠어. 다들 춥지는 않지? 어휴 냄새가 장난 아니야."
운전하는 여자가 저 앞에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말하며 창문을 시원하게 내렸다. 아빠 차를 놓친 이후로 씻은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찜통 같은 퀴퀴한 보호소 안에서 한층 냄새가 익었을 것이다. 나는 별로 상관은 없긴한데 내게서 나는 냄새 덕분에 창 밖 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와 내가 있는 트렁크까지 유연하게 훑고 나가기 시작했다. 차는 꽤나 넓었다. 카시트 같은 건 없었고, 대신 오랜만의 바깥이 궁금한 내가 앉아있기에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였다. 솔직히 엄청 피곤한 몸이었지만 도저히 누워서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 가는 길에 우리 집이 있지는 않은지, 이 사람들이 나를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건지 무슨 이야기든 듣고, 뭐든 보고 싶었다.
"쟤 킁킁거리고 있어. 밖에 보고 싶은가 봐."
"무슨 생각하는 걸까?"
"모르겠어. 근데 여기서도 머리 보이는 거 웃기다. 대형견은 처음이니까 다 신기하네."
"너무 큰가...? 정말 괜찮으려나..."
"이미 저지른 일인데, 괜찮아야지. 순한 거 같은데? 애가 만져도 가만히 있잖아. 이름은 스푸로 확정이야?"
'스푸?'
"아, 입양서류에 쓴 이름? 바꿔도 상관없다고는 했지. 아까는 급한 대로 라하가 제안한 이름으로 적긴 했는데, 영... 별로야."
'세상에. 이름이 스푸라고? 스탠다드 푸들, 스푸라고? 이 사람들 날 몰라도 너무 모르잖아. 우선 나는 스탠다드 푸들도 아니고, 내 이름은 스푸가 더더욱 아니야!'
"뭐 괜찮은 이름 없을까? 아직 익숙해지기 전이니까 다른 걸 생각해 보자."
"우리 집 애들은 알다시피 이름이 다 먹을 거라서. 호두, 인절미, 흑임자, 단무지. 귀엽지?"
'이름이 음식이라니. 너무한데? 그러고 보니 저런 애들 많이 본 것 같아. 초코라든지, 감자라든지, 여하튼 나는 스푸가 아니라고.'
"음식이름이 아니라도 기왕이면 푸들의 '푸'자가 들어가도 좋을 것 같긴 해. 스푸는 빼고."
"보자. 푸가 들어가는 귀여운 이름이라..."
'글쎄 푸들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 사람들이!'
"푸... 푸딩! 푸딩 어때?"
"오, 푸딩?"
'푸딩?'
"아무래도 음식 이름 밖에 안 떠올라, 나는. 깔깔. '푸'자도 들어가고 발음도 너무 귀엽지 않아?"
"푸딩... 괜찮은 거 같은데. 적어도 스푸보다는 훨씬 좋은 듯. 라하야, 이 친구 이름은 푸딩이 어때?"
"왜? 난 스푸가 좋은데."
"스푸는 솔직히 너무 대충 지은 것 같잖아."
"내가 엄청 열심히 생각한 거야! 무시하지 마!"
"아, 미안. 엄청 열심히 생각해 줬구나. 그런데 이 친구 평생 부를 이름이니까 스푸보다는 푸딩이가 더 귀여운 느낌이지 않아?"
"흥. 마음대로 해."
'이봐요. 이번에도 내 의견은 아무도 안 물어보나요? 어휴...'
아이는 자기가 제안한 이름이 탈락했다는 것이 불만인 것 같았지만, 못 이기는 척 이름을 양보했다. 내 기분은 어땠냐고? 스푸보다는 푸딩이 낫겠지. 앞에서는 주거니 받거니 나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 보호소를 나오면서 시야와 응가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나를 차에 태웠다. 이 사람들 정말 괜찮은 걸까? 괜찮을지는 아닐지는 앞에 앉아있는 저 사람이 아니라 내가 걱정해야 되는 거 아닐까?
"고생했다. 먼 길 다녀왔네."
"고마워, 언니. 쫄보인 나 때문에 먼 길 운전도 해주고 같이 가주고. 언니 아니었으면 갔어도 그냥 돌아왔을 거 같아."
"뭘. 잘 키우기나 해."
'저기요. 다 왔으면 문이나 열어줘요.'
드디어 트렁크 문이 열렸다. 하지만 나는 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가정교육을 무척이나 잘 받은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안 내리네. 음... 탈 때도 '타'라고 해서 탔으니까, '내려'"
됐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폴짝 뛰어내려 차 옆으로 바삐 걸었다. 그리고 주변 냄새를 맡기도 전에 자세를 잡고 다리에 힘을 모았다.
"어어어! 잠깐만, 여기 주차장. 배변패드! 배변패드!"
"이모, 여깄어요."
운전을 한 여자가 재빠르게 아이에게 배변패드를 넘겨받고는 내 응가를 날렵하게 받아냈다. 제법이잖아. 응가를 받은 여자와 아이가 깔깔대며 서로 으쓱거리는 모습 옆으로 조수석에 있던 여자는 어쩐지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저 사람은 차에서부터 고민이 가득인 것 같았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올라가는 길에 참았던 시야도 해결했다. 환한 대낮에 주차장 경사로에 시야를 하는 게 불편했던 모양인지, 한 사람의 표정이 더더욱 흑빛이 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웃어주는데 저 사람은 유독 왜 저러는 걸까 싶었다. 나의 새로운 집은 아파트인가 보다. 아파트 생활은 처음인데, 걱정은 별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훌륭한 강아지이고, 적응력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 물론 먹을 게 있었다면 말이다. 방귀가 자주 차는지 아랫배 쪽이 종종 아프고, 몸도 간지럽고 무엇보다 귀! 귀가 엄청나게 간지러워서 수시로 털어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강아지라는 말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자, 들어와. 여기가 우리 집이야. 너한테는 좁을 수도 있지만, 이해해 줘."
'이해는 해줘 보도록 할 테니 인상이나 펴시면 좋겠군요.'
"그런데 얘 일단 씻겨야 될 거 같은데? 냄새가 장난 아니야."
"강훈련사님이 입양하고 한동안은 씻기지 말아야 한댔는데, 지금 심각하지?"
"응, 이 상태로 같이 잘 수 있겠어?"
"절대 무리."
"응, 씻기러 가."
언니라는 사람은 꽤나 단호하다. 반면 동생은 어딘지 우왕좌왕하고 뭐든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새 가족이 저 사람이라는 거지? 이거 참 걱정이네. 좁은 욕실에 나와 새 가족이 들어갔다. 아까 오는 길에 마트에 들르더니 급한 대로 사료와 샴푸를 사 온 모양이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시작하면 개운할 줄 알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샤워는 역시 싫은 것이다. 하지만 잠자코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앞에 있는 새 가족이 나보다 훨씬 당황한 듯하니까.
"와... 확실히 크니까 장난 아니네. 너 때도 엄청 나온다. 오랫동안 못 씻었구나."
'당연한 걸 새삼스럽게 물어보시네요.'
"샴푸질만 몇 번째인데, 구정물이 계속 나와."
'깨끗하고 작은 강아지만 보셨나 보군요.'
"잠깐만. 이건 뭐지?"
'응?'
새 가족은 내 아랫배를 문질문질하다가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혹 같은 거라고 하는데, 그게 뭘까? 요즘 들어 아랫배가 아픈 것 같은 게 혹시 그 혹 때문이었으려나? 어쨌든 5번의 샴푸질을 마치고 드디어 샤워가 끝났다. 드라이만 한 시간을 했는데, 솔직히 물기만 간신히 말린 정도였고, 보송해지기는 어려웠다. 너풀거리는 앞머리가 사람들이 보기에도 불편했는지 자꾸 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머리끈 있어?"
"라하 어릴 때 쓰던 거 있어. 꺼내올까?"
"대충이라도 묶자. 눈이 안 보이니까 얘도 답답할 거 같아."
언니는 정말 대충 머리를 묶었다. 모양새가 빗자루 같았지만 어쨌든 앞이 보이게 되어서 좋았다. 잘 정돈해 주면 이목구비가 엄청난 강아지인데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씻기다 보니까 아랫배에 혹이 있어. 병원을 가봐야 할 거 같아."
"그래? 호두 다니는 병원 아직 문 안 닫았을 걸. 거기 시설도 괜찮고 원장님이랑 직원들도 좋아."
"엇, 그러면 바로 다시 출발을 할까?"
"같이 가줘?"
"아니야. 언니도 집에 가서 저녁 준비해야지."
"괜찮겠어?"
"아니..."
"같이 가. 진료 보고 내려주고 바로 갈게."
"고마워."
이 사람들은 또다시 나의 의견을 묻지 않고 다음 일정을 정했다. 심지어 목적지가 병원이란다. 근데 병원은 뭐 하는 곳이지? 안 가봤던 곳이지만, TV에서는 대게 아픈 동물들이 가는 곳 같았다. 낑낑거리거나 소리 지르는 개들도 있다는 것 같다. 많이 아프려나.
"얘는 스탠다드 푸들이고요, 두 살 정도 추정이래요. 이름은 푸딩이라고 지었어요. 오늘 보호소에서 입양을 했는데, 아랫배에 혹이 만져져서 왔어요."
"한 번 볼게요. 이빨도 보자."
'초면에 실례가 많으시네요.'
"두 살이라고요?"
"네, 그 정도 됐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럴 리는 없을 거 같네요. 여기 이빨들 보시면 치석도 많고 마모도가 심해서 이 정도면 두 살은 절대 아니고요. 배에 혹은 유선종양인 것 같아요. 아직 심하게 큰 건 아니고 다른 곳에는 없는 것 같기는 해요. 유선종양은 아무리 빨라도 6살은 넘어서부터 생기기 때문에 두 살 일리는 없어요."
'제가 좀 동안이죠.'
"그러면 6살 정도일까요?"
"글쎄요. 이빨 상태까지 보면 솔직히 더 됐을 거 같아요. 일곱, 여덟 일 수도요. 중성화도 물론 안 했겠죠."
"중성화에 대해서는 들은 건 없어요. 간단한 키트 검사 했는데, 심장사상충은 음성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종양을 같이 떼어내면 될 것 같아요. 크기가 크지 않아서 복잡하진 않을 거예요. 사상충 약은 먹었나요? 아직 안 먹였으면 하나 먹일게요."
"네, 아직 데려와서 먹이진 않았어요."
"그리고 귀에 내이염이 심하고, 바깥쪽에는 곰팡이가 있어요. 이 곰팡이는 사람에게도 옮을 수 있어서 다 나을 때까지는 당분간 접촉하지 않으셔야 해요. 이거 약도 지어드릴게요."
진료는 무척 신속하고 명료하게 진행되었다. TV에 나온 엄살 부리는 강아지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를 정도로 별 거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진료가 끝나고 간호사 분들이 무릎베개를 해주더니 발바닥 털도 깎아주고 발톱도 깎아주었다. 발이나 꼬리를 만지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오랜만에 깨끗한 바닥에 늘어져서 쓰담쓰담을 받고 있었더니 의사 선생님이 와서 간식 하나를 입에 넣어주었다. 맛만 좋구만. 병원 별 거 아니네.
"오늘 정말 고마웠어. 운전도 많이 해서 피곤하겠다. 얼른 돌아가면 밥 먹고 푹 쉬어."
"뭘. 덕분에 드라이브 잘 다녀왔지. 대형견 가족된 거 축하해. 다들 좋은 꿈 꾸고."
아직 낯설기만 한 새 집에 다시 돌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 벌써 두 번째 입장이라니. 엘리베이터도, 아파트도 곧 적응되겠지. 저녁으로는 깨끗한 그릇에 봉지를 갓 뜯은 새 사료를 먹었다. 새 가족은 사료봉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얼마큼 줘야 할지 계산하는 듯했다. 이거 얼마나 된다고 계산하는 거지? 큰 그릇에 가득 쌓이게 주면 되는데 말이다.
"너 아까 병원에서 16.5kg였어. 엄청 말랐대."
'그걸 아신다면 밥을 더 주셔야 할 거 같은데요.'
"한동안 잘 못 먹어서 뼈가 도드라지게 마른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갑자기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수도 있다지. 역시 무리하지 않게 조금씩만 늘려보자."
'피곤하게 사시는군요. 가득이요, 가득. 어렵지 않죠?'
내가 아무리 외친 들 새 가족에게는 들리지 않을 거다. 하지만 지금 내가 점프라도 해서 사료 봉투를 물고 방으로 도망가서 다 먹어버린다면 나의 첫인상은 꽤나 심하게 망가지겠지. 참아보자. 나는 교육받은 훌륭한 강아지라고. 저녁밥이 콩알만 해서 금세 그릇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렇게 딱 세 그릇 정도만 더 주면 괜찮을 텐데. 밥을 먹고 나니 이제야 피곤함이 몰려왔다. 거실 한편에 나를 위해 깔아 둔 이불이 보였다. 아마 하우스 같은 거는 없는 모양이다.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다. 집 안 어디든 내가 갈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 푹신한 이불 위에 몸을 말고 누워봤다.
'제법 쓸 만하군.'
잠이 들만하면 귀가 근질근질거렸다. 나도 모르게 푸드덕하고 크게 머리를 털거나 발이 자꾸 귀를 긁게 된다. 이래서야 모처럼 지저분한 똥바닥에서 탈출하고도 편하게 잠도 못 잘 지경이다. 잠에서 깰 때마다 고개를 들어보면 새 가족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은 처음 봤을 때부터 환하게 웃지를 않는다. 분명 저 사람이 나를 선택해서 나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집으로 데려온 것인데, 왜 걱정스러운 얼굴인 걸까? 나를 데려오라고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받은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기뻐하는 기색이 안 보이는 걸.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새 가족이 누워있는 나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와서는 쓰다듬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안 괜찮을 건 뭐 있나요.'
"네가 정말 똑똑하고 교육받은 강아지라는 건 벌써 알겠어."
'알아주시니 감사하군요.'
"그런데도 왜 나는 계속 불안한 걸까?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걸까?"
'글쎄요. 이렇게나 똑똑하고 귀여운 강아지랑 같이 살게 되셨는데 왜 그렇게 걱정이 많으시죠?'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알아요. 저는 완전 무죄예요. 저는 아빠 말을 잘 들은 것 밖에 하지 않았다고요.'
"데려와 놓고 이 모양이라 미안하다."
'그럼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내일 아침밥은 가득으로 부탁할게요.'
뭐가 걱정이고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나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그렇게 말한 새 가족은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아이는 이미 나에게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 접촉하지 말라고 한 것 때문에 많이 속상해 보였다. 게다가 저녁부터는 아이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변하기 시작했는데 알러지라고 하는 건가 보다. 아마도 오늘부터 나랑 같이 잘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의사 선생님과 엄마의 만류에 따로 자게 되어서 입이 조금 나온 것 같다. 걱정 많은 새 가족과 이유 없이 첫 만남부터 나를 마냥 좋아하는 아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도 잠을 자볼까...
"라하야, 미안해. 엄마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