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조만간 나갈 수 있겠구나. 역시 품종견이고 볼 일이라니까."
아침밥을 주러 온 사람이 나를 지나치며 말했다. 나에게 한 이야기가 맞다면 말이다. 품종견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7년의 견생동안 딱히 내가 품종견이라서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행복이의 말,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말, 요 며칠 동안 기분 좋게 여길 빠져나간 강아지들과 직원들이 끌고 가듯 데리고 간 강아지들을 보다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만 같다. 작고 어리고 귀엽고 있어 보이는 강아지, 그게 여기에 있는 강아지들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이다. 품종견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믹스견도 믹스견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에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다는 건 너무나 서슬 퍼런 말같이 느껴졌다. 그에 따르면 나는 어쨌거나 여기서 나갈 수 있겠다. 다행이다. 다행일까?
나의 열흘이 지났다. 하루하루 엄마 아빠가 오길 기다렸다. 오늘은 바빠서 여기까지 못 왔지만 아마 근처까지는 도착해서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나를 데리러 올 거라고 믿었다. 정말로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모른다고 하기에 엄마 아빠는 늘 스마트폰을 쥐고 살았다. 뭐든 찾아보면 나온다는 그것 말이다. 그러고 보면 외출할 땐 늘 차고 있던 목걸이, 그걸 왜 하필 그때 풀어주셨을까? 왜 쉬야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또 쉬야를 하라고 하셨을까? 왜 나에게 엄마 아빠의 가족이라는 표시를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을까? 행복이 말이 정말 맞았던 걸까?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보다 사실은 엄마 아빠가 나를 찾으러 안 오면 어떡할지가 신경 쓰였다.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다는 걸... 어떻게 인정할 수 있다는 걸까? 나갈 수 있다는 기쁨보다 버려졌다는 슬픔이 훨씬 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던 그때, 보호소 사람이 다가왔다.
"이리 나와."
엄마 아빠가 온 것이 분명하다!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뭉클해졌다. 정말 안 오시나 포기하려던 찰나에 엄마 아빠가 온 것이다! 역시, 내가 뭐라 했어.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라고.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했잖아. 보고 있지? 행복이 이 녀석아!
낡고 큼직한 철문을 들어온 지 열흘이 넘어서야 겨우 다시 나간다. 이 문 앞에 엄마 아빠가 계실 것이다. 나는 일단 엄마에게 와락 안겨서 반가움의 인사를 넉넉하게 한 다음, 아빠에게 돌아서서 크게 한 번 왕 짖을 거다. '아빠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요?' 하고 쏘아붙이지 않고서는 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이제 곧 철문이다.
끼이익. 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보호소 사람이 나를 철문 옆에 있는 작은 사무실 쪽으로 들여보냈다. 사무실 안에 또 다른 사람들이 몇몇 서있었지만, 엄마 아빠는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잘 됐네요. 입양하겠다는 사람은 언제 온대요?"
"필요한 서류 챙겨서 내일모레, 그러니까 이번 주 목요일에 오겠대요. 그날 바로 데리고 갈 거니까 키트 검사랑 내장칩 삽입도 아예 다 마쳐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채혈할 테니까 잘 잡아주세요."
말을 마친 여자가 내 팔을 하나 잡더니 털을 벅벅 밀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뾰족한 주사기를 꽂고 피를 뽑아냈다.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미쳤나? 나는 이런 거 안 해! 병원 안 다닌다고! 엄마 아빠는 이런 무서운 거 나 안 시킨단 말이야! 내 마음속은 요동쳤지만 겉은 고요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생각하던 사이에 이미 채혈은 끝난 것이다. 이 미친 여자가 채혈 솜씨는 능숙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한두 마리 채혈해 본 솜씨는 아닌듯하다. 내심 불편한 감탄을 하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목덜미를 잡아채더니 따끔한 뭔가를 쐈다. 이건 가만히 참기가 힘들었다. '끙'하고 꿈틀대자 나를 잡고 있던 사람이 휘청거렸다.
"다 됐어, 다 됐어. 이제 다시 넣으셔도 돼요."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다시 철문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목요일에 사람이 온다고? 엄마 아빠가 아니라 입양을 하려는 사람이 온다고? 왜지? 나는 가족이 있는데, 왜 입양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거지? 물음표가 끊이질 않는다. 결국 행복이 녀석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걸까? 이제 슬슬 엄마 아빠가 날 찾아올 거라는 기대에 불씨가 꺼져가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미 며칠 전부터 불안이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다만 그건 사실이 아닐 거라고 있는 힘껏 부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나는 이틀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머리카락이 덮여 있는 데다가 보호소는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낮이나 밤이나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느낌상 분명 뜬 눈으로 지새웠다. 너무 피곤해서 이제 생각이 잘 정리되지도 않을 정도이다.
"어쩌니. 입양 못 가게 되었지 뭐야. 글쎄 오겠다던 사람이 아침에 전화와서는 가족들이랑 합의가 안된 거였다나 뭐라나. 또 즉흥적으로 연락했었던 모양이야. 사상충 검사도 하고 내장칩도 넣었는데 아쉽게 됐네. 이런 사람들이 사실 한 둘이어야 말이지. 너무 아쉬워하지 마. 어차피 너는 안락사 대상도 아닐 테니까. 자, 밥이나 먹어라."
밥을 주러 온 사람이 주저리주저리 말을 걸었던 게 꿈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죽지 않을 만큼의 사료만 주는 덕분에 체력이 딱히 좋아지는 것 같지가 않다. 거기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잤더니 헛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하나 보다. 그러니까 헛소리를 정리하자면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다는 것 같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보호소에 있는 이 많은 강아지들을 보다 보면 내가 여기 있는 게 특별한 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시끄러운 소리들에도 익숙해졌다. 침침한 어둠에도, 퀴퀴한 곰팡이 냄새에도, 심지어 내 공간 한 구석에 쌓이고 있는 저 지저분한 덩어리들에게도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게 또 일주일, 다시 일주일... 여기 온 지도 거의 한 달은 되어가나 보다.
끼이익. 오랜만에 철문이 열렸다. 오늘은 또 어느 녀석들을 데리고 갈지 불안하다. 나는 아닐 거라고 했지만 그걸 누가 알겠어? 당장 몇 시간 후에 누구누구의 방이 비게 될지 모르는 곳에서 나라고 언제까지나 자리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을 거다. 몇몇 사람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나에게 가까워지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문의하신 애가 얘예요. 스탠다드 푸들. 지금 2살 정도 된 걸로 추정하고 있어요. 먼저 오겠다던 분이 계셨어서 키트검사도 했는데 심장사상충은 음성이었어요."
"저희 집이 아파트라서 그러는데, 많이 짖지는 않나요?"
"저는 얘가 짖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아파트에서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혹시 밖으로 나가서 볼 수는 없나요?"
"그건 곤란해요. 밖으로 나갔다가 또 잃어버리거나 하면 큰일이라서요. 죄송하지만 여기서만 보셔야 해요."
"이렇게만 보고 결정하기는 힘든 일이라서요... 문이라도 잠깐 열어볼 수 있을까요?"
"아... 곤란한데. 아주 잠깐만이에요. 못 나오게 막아야 해요."
한 사람은 익숙하지만 나머지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구석에 있다가 호기심에 일어나서 문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른이 둘에 한 명은 어린애다. 열린 문 사이로 한 사람이 손을 쑤욱 뻗어 내 얼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걷어 올린다.
'앗, 이 사람! 강아지의 얼굴을 갑자기 잡으면 놀란다고! 그것도 모른다고?'
"얘 눈이 다 가려져 있네."
"어때 보여?"
"글쎄."
내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보더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머리카락을 걷고 보니 이건 마치 신세계 같았다. 앞에 보이는 낯선 사람들을 보느라 주변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괜찮다. 이 주변이야 어차피 나처럼 똥밭에서 구르고 있는 또 다른 너저분한 강아지들 뿐일 테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은 뭐가 어때 보이고 뭐가 글쎄라는 걸까? 나처럼 성격 좋고 잘 배운 강아지가 아니고서야 분명 발작하며 깨물었을 상황이었다. 무식하다고 해야 하나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미묘한 사람들이다.
"다 보셨어요? 이제 잠글게요."
철컹.
"어떻게 하시겠어요? 전화로 말씀드린 서류 다 챙겨 오셨으면 오늘 바로 데려가실 수 있으세요."
"어... 조금 생각하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면 저희 곧 점심시간이니까 1시까지 고민하시고 연락 주세요. 저도 밥 먹으러 가야 해서요."
"네, 그럴게요."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왔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나에게 아무도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아마 저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가려는 것 같다. 지난번에 데리러 오려다가 안 왔다는 사람일까? 그 사람이랑은 다른 사람일까? 고민은 나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같이 가고 싶지 않다고 거절할 수는 없는 걸까?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좋은 걸까? 그런데 저 사람들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뒤 몇 시간은 지난 것 같다. 정확한 시간 개념은 배운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하루가 지났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잘 생각하셨어요. 애가 순한 것 같더라고요, 짖지도 않고. 가져오신 줄 저한테 주세요."
밥을 주던 보호소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녹색 목줄을 건네받고는 나에게 채웠다. 목줄과 똑같은 녹색으로 깔맞춤한 리드줄까지 연결하고 나를 불렀다. 마음에 준비가 다 되지는 않았지만 딱히 여기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행복이가 담담하게 철장을 나섰던 것처럼 나도 기꺼이 철장 문을 나왔다. 여길 나서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품종견으로 태어난 것도, 가족을 만나는 것도, 길거리에 버려지는 것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지는 것도, 심지어 죽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가족이라 믿었던 누군가들이... 늘 정해주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