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악몽
날씨도 너무 좋았던 지난 크리스마스. 눈이 오진 않았지만 적당히 쌀랑한 바람에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집으로 가서 친구를 만나고, 예약 없이 들어갔지만 운 좋게 자리를 바로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따끈 짭쪼름한 우동과 파사삭 파사삭한 치쿠와 튀김을 먹고 있으니 차차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대기시간만 40분이 넘는다는 직원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친구랑 키득거리는 철없지만 왠지 모를 승리감을 느끼던 점심이었다.
"커피는 거기로 가자!"
우동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가끔 가고는 하는 카페가 있다. 프렌차이즈가 아닌 개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카페다. 테이블은 대여섯개 정도로 회전율이 빠르지 않을 때는 수익이 괜찮나 사장님 걱정이 될 정도로 자그마하다. 갈 때마다 친구랑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장님이나 사장님의 부모님이 이 상가를 소유한 게 아니라면 운영하기 힘들 거라는 우리끼리의 소설이다. 카페에는 새로운 메뉴와 디저트가 들어와 있었다. 한동안 스타벅스의 신메뉴로 나의 입을 사로잡았던 포레스트 콜드 브루와 같은 메뉴를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이다. 카페인 폭탄이라 컨디션에 따라서는 심장이 벌렁대는 메뉴였지만 그 맛은 포기하기 어렵다! 하지만...이 카페에서 마셔야 할 것은 포레스트가 아니다. 바로 시그니처 말차라떼. 말차라떼는 여기저기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가 되었지만, 이 집이 참 잘한다. 왜냐하면 흔한 말차 시럽과 우유를 누르고 동동 떠있는 아이스크림 토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스크림은 하겐다즈의 그런 부드러움이 아니다. 프로스트 같은 재질이라 입에 넣으면 사각사각한 식감이 있다. 또 다른 정점은 넉넉한 스쿱모양을 간직한 프로스트 바닐라 아이스크림(내 맘대로 부른다) 가운데에 다소곳하게 꽂혀 있는 플레인 쿠키. 사장님네 강아지 모양을 본뜬 비숑 디자인의 쿠키이다. 하이바 한 쪽을 베어 문 듯한 모습인데, 비숑 가족이 있는 사람으로서 귀엽지만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귀엽다. 결국은 내 입으로 들어올 거지만.
친구가 계산한 덕분에 새로운 디저트도 맛볼 수 있었다. 일본식 디저트라고 했는데, 적어도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프랑스식 요리의 레시피인데, 채소나 고기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디저트 재료인 초콜렛, 치즈, 말차 등을 위주로 디저트화 시킨 메뉴였다(일본 사람들이 또!). 약간 꾸덕한 식감인데, 오븐 치즈케이크나 갸또 쇼콜라보다 조금 부드러운 정도이다. 그렇다고 양갱이나 우이로우 정도의 부드러움은 아니었다.
맛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게 입구에서 눈에 익은 실루엣이 등장했다. 누군지 알아차리는데 솔직히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한숨이 먼저 나왔다.
'하아...'
일 년 전 나를 자른 장본인이다. 그렇다. 전 직장 상사였다. 이 운 좋은 날, 날씨도 좋은 날, 기분도 좋은 날, 크리스마스에 친구와 소중한 장소에 나타난 인간이 저 인간이라니...
전 직장에서 약 5년 정도 일을 했다. 오래있을 곳은 아니겠구나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시간은 벌써 그렇게 흘러 있었다.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큰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잔잔한 일터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도태되게 만들고, 물경력을 만들게도 했지만, 당장 오늘 내일을 편안하게는 살 수 있었기에 내 발로 차고 나가기엔 아까운 그런 곳이었다. 상사는 늘 죽는 소리를 해댔지만, 그 밑에 있는 수십명의 사람들은 올해 잘리는 사람들에게 쉽게 안녕을 말하고 내 자리가 보전된 것에 내심 안도를 하는 곳이었다. 모두가 "여긴 오래 있을 곳이 아니야", "젊을 때 나가서 경험 쌓아", "좋은 자리 있으면 바로 떠나"라고 말하지만, 거길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은 아주 젊은 친구들이 아니고는 거의 없었다. 경기가 안 좋아지는 일로라서 매년 사람이 줄어들었지만, 올해에도 내가 아니길 은근히들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으며,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그런 안일하고 도태되는 시간이 멈추기 시작한 건 대략 일 년 전쯤. 느닷없이 다른 사람을 통해 면담을 잡더니 해고 통보가 훅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시기가 시기인지라 연봉 협상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 해에는 큰 똥도 처리하는데 역할이 있었고, 나름대로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올해는 조금이라도 올려주겠지 싶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냉혹했고, 회사는 나를 내보내기로 결정해버렸다. 원래도 많이 나가는 체중은 아니었지만, 통보 후에 한동안은 체중이 더 줄었다.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은 있는데, 이거 어쩌나'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해고 통보를 받은 동료는 몹시 격앙되어 면담 담당자와 면담을 뒤에서 조종한 상사에게 따지듯 대화했다고 들었다. '요즘 쉽게 해고 못한다', '노동청에 고소할 수 있다'하는 말들도 오갔지만 나는 별 말 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근저에는 늘 나를 탓하는 성격이 한 몫 했다. '다른 직원보다 내가 쓸모 없는 거겠지', '내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탓이지', '일 못하는 직원을 자르는 거겠지' 등등의 자기비하성을 하며 가라앉기로 한 것이다. AI가 무서운 속도로 노동 시장을 잠식하는 시대에 내 자리가 대체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공도 아니었고, 딱히 두각을 드러낸 직종도 아니었다. 졸업 후 갖게 된 첫 일자리였고, 시작은 창대했다. 마음 만큼은...지금까지는 어찌저찌 입에 풀칠하고 살 정도로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여기까지라고 느껴졌다. 해고 통보를 받고, 마지막 출근을 한 날까지 상사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년이었다. 좋든 싫든 같은 공간에 매일 같이 출퇴근을 하고 지내던 시간이 말이다. 나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직속 상사는 따로 있었지만, 그 상사 또한 퇴사하는 날 사내 메신저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내용의 쪽지를 보내주었을 뿐이다. 다니는 동안 충성심을 보이고 싶은 회사라고 느낀 적은 물론 없었다. 같은 용역이면서 그 와중에 소속을 나누고, 소속별로 티나게 챙겨준다든가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인간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자기 앞에서 비위를 잘 맞추는 부하직원을 편애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사내정치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서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부품 같은 직원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까지 '고생했습니다' 정도의 인사말도 하지 않는 상사라니...이 또한 '내가 쓸모 없어서 그런 건가?'라며 마음 한 켠에서 자아가 작아지고 있었다.
잘린 김에 전직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작년 새해를 맞았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을 야금야금 써가며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꼬박 일 년을 몰두했고, 적어도 지난 일 년 간 성과는 없었다. 앞으로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돈이 별로 안되지만 잘하는 것을 살려서 새로운 직업을 갖고 근근이 살아가는, 그리고 모아 놓은 돈이 점점 줄어들어 조급해지고 있던 어느 날, 모처럼 여유로운 크리스마스를 맞아 맛있는 말차라떼를 얻어 마시고 있는 소소한 행복의 시간에 하필이면 지난 일 년 간 나와 우리 가족을 고생으로 몰아넣은(?) 당사자를 마주친 것이다.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친구의 얼굴에 집중했다. 나는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는 편이라 그 상황에서 전 상사를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은 갖지 못한 사람이란 걸 잘 안다. 하지만 쓸데 없이 오지랖부리기를 좋아하던 상사는 정말이지 그 답게도 테이크 아웃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카페를 나가기 전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끝내 나를 발견했다. 이 때 나는 왜 입구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앉아있었는지 스스로를 원망했다. 전 상사는 "어"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인사했고, 결국 나는 눈을 마주치고 목례를 했다. 머쓱한듯 전 상사는 일행들과 함께 카페를 나갔다. '일어나서 인사했어야 하나?', '잘 지내셨습니까? 라고 물어봤어야 하나'라는 의문을 그 뒤로 혼자 되뇌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새해가 되는 첫 날에는 악몽도 꾸었다. 1월 1일 새벽, 나는 꿈에서 그 상사에게 또 잘렸다. 정초부터 이 무슨 액땜이람? 세상에, 올해 얼마나 운이 좋으려고.
제발, 다시는 마주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