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리으리하다. 창 밖에는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크고 깨끗한 건물들이 몇 개나 있었다. 어떤 곳은 잔디가 깔려 있는 놀이터인 것 같고, 어떤 곳은 엄청나게 커다란 창문이 건물 한쪽을 거의 다 덮고 있었다. 나를 품은 왕커다란 켄넬을 다시 두세 명의 사람들이 '끙차'하고 들어 차에서 내렸다. 바퀴가 달린 수레에 켄넬을 통째로 싣더니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며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밖으로 꺼내주면 걸어서 갈 수 있을 텐데.'
실내로 들어서자 켄넬 문이 열렸다. 다른 작은 강아지들의 켄넬은 열어주지 않는 걸 보니 이제야 내가 걸어가는 게 서로 편할 거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줄을 잡은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깔끔한 바닥에서 몇 발자국 걸었더니 아파트에서 본 것 같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위로 가는 건지 아래로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갔다. '띵' 소리 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을 따라 내리자마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저 안에서 또 많은 강아지들의 소리가 들렸다. 왕왕왕.
'오? 옆으로 미는 문이네. 신기하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가 내 꼬리까지 무사히 들어오고 난 뒤 다시 드르륵 닫혔다. 눈앞에는 좁은 길이 있었고 한쪽은 창문이 있는 벽, 다른 한쪽은 튼튼한 철문이 달린 작은 방들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해가 저물어가는지 불긋한 햇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왔다. 많은 강아지가 있다는 걸 냄새와 소리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보호소에서처럼 똥오줌이 뒤엉킨 냄새나 곰팡이의 퀴퀴한 냄새 같은 건 어쩐지 없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싱크대에는 깔끔하게 정돈된 반짝거리는 밥그릇도 엄청 많이 쌓여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사료 냄새도 한가득 새어 나왔다. 방 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문에 매달리듯 가까이 붙어서 나를 확인하려는 강아지들이 있었고, 드물게 어떤 녀석은 철문으로부터 가장 먼 구석에 몸을 한껏 움츠린 채로 어서 사람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기도 했다. 때로는 비어있는 방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새로 왔나 봐."
"어디서 왔어? 이름은 있어?"
"어떤 녀석인지 모르지만, 나한테 덤비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밥 주세요!"
'어딜 가나 똑같군...'
"다 왔다. 여기 들어가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비어있는 방 문을 연 뒤 나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곧장 줄을 풀고 혼자 나가더니 문을 닫았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물이랑 밥 가져다줄게."
나와 같은 차를 타고 온 자그마한 아이들은 아마도 다른 곳으로 갔나 보다.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부터 보이지 않았다. 좁은 길을 지나올 때 보인 녀석들 다들 덩치가 있던 걸로 보아 작은 애들은 작은 애들끼리 지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방에 들어오고 나서도 소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왕왕거리는 소리들도 함께 따라왔다.
"자, 여기 물이랑 밥. 배고프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오늘은 이거 먹고 우선은 편하게 있자. 내일 날이 밝으면 아픈데 없는지 보러 갈 거야. 푹 쉬어."
사람이 나가고 난 한참 뒤에야 조용한 밤이 찾아왔다. 문은 창살이 있지만 방의 벽은 높게 막혀있기 때문에 주변에 어떤 강아지들이 있는지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내 방 뒤쪽 어딘가에는 '아우, 아우'거리면서 몇 시간째 우는 소리를 내는 녀석도 있는 건 분명하다. 날아오는 냄새들로 짐작하자면 여긴 나보다 덩치 큰 강아지, 나보다 나이도 많은 강아지, 나보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강아지들도 있다.
"안녕?"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보자, 아까 방에 들어오기 전에 둘러봤을 때 왼쪽은 비어있었고, 오른쪽에는 나와 키가 비슷해 보이는 검은색 개가 있었다. 말을 걸어오는 건 아마도 그 녀석이겠군.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 보구나? 뭐, 이해해. 나도 강아지보다는 사람이 좋긴 한데, 여기 있다 보면 아무래도 심심해서 말이지."
"..."
"그래. 하고 싶을 때 얘기해. 여기 말이야, 생각보다 괜찮아. 밥도 물도 잘 주고, 하루에 두세 번쯤은 운동장에도 나가. 예의 없는 애, 똥 먹는 애, 늙은 애, 철없는 애 몽땅 한꺼번에 나가는 거는 약간 거슬리지만 사람만 따라다니면 예쁨도 받을 수 있어. 아, 혹시 너도 똥 먹는 애니?"
"난 그런 거 먹지 않아."
"말을 할 수는 있구나. 어쨌든 다행이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자주 와. 와서 청소도 해주고 밥도 주고 잠깐씩 놀아주고 그러는 사람들이야. 어떤 애들은 가족이 생겨서 집에도 간다고 하던데 솔직히 우리처럼 덩치 있는 애들은 한 번 들어오면 잘 못 나가더라고."
"난 별로 크지 않아."
"풉. 솔직히 말하자고. 너나 나나 작진 않아."
"그건 네 생각이야. 난 별로 크지 않아."
"그래그래, 그렇다고 치자. 방은 마음에 드니?"
"보호소에 비하면 나쁘지 않네. 깨끗하지만 바닥이 딱딱해. 이불 같은 건 안주나?"
"그런 건 없어. 나도 보호소에 오래 있진 않았지만 거기랑 여기는 비교가 안되지. 아프지 않아도 죽어야 되는 애들은 절대 없으니까. 이불 정도는 없어도 좋게 생각하라고."
"딱히 필요해서 말한 건 아니야. 그런 거 없어도 잘 수 있어. 난 불만이 많은 강아지는 아니라고."
"잘 됐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선배인 내가 친절하게 알려주지."
별로 마음을 열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강아지를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날인가 갑자기 떠나서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디로 어쩌다 가게 되는지, 다시 볼 수도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집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사람이든 강아지든 마음을 주면 언젠가 슬픈 일이 생긴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친해지지 않는 게 더 낫다.
"잘 잤니? 얘들아."
'아침 밥 시간인가.'
"안녕? 너는 밥 먹고 청소 좀 한 다음에, 오후에는 진료 보러 가자."
"아 참, 얘 이름이 푸딩이래요."
"이름이 있어요?"
"어제 도착하기도 전에 누가 센터로 연락 와서 이름을 알려줬어요. 병원도 갔었다고 했는데, 뭐랬더라."
"구조하신 분이려나. 이따 진료 보러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보죠."
'여기에 전화를 했나 보구나, 그... 아줌마. 가족이 되어주지도 않았으면서 전화는 왜 했담.'
갑자기 강아지들이 방 문 앞을 뛰어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상황인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직원이 내 방 문도 열었다. 뭔가에 홀린 듯 방에서 나와 다른 강아지들을 따라 뛰어갔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열려있는 문이 보였는데, 모든 강아지들은 저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혹시 저 문을 통과하면 선착순 소고기 육포라도 주는 건가? 열심히 달려서 문을 통과하자 풀이 듬성듬성 자라난 자그마한 운동장이 나왔다.
'육포! 육포는 어딨지?'
육포는 없었다. 신나게 달려 나온 무리들은 제각각 흩어져서 바닥 냄새를 맡더니 자세를 잡고 참았던 볼 일을 보기 시작했다.
'아... 그 시간이었군.'
지금이 아니면 언제일지 모르니까 실망스러운 기분을 넣어두고 나도 자리를 잡았다. 역시 잠자는 방에서 볼 일을 볼 수는 없지. 나와 강아지들이 운동장에 있는 동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잽싸게 방청소를 하고 있었다.
"어때? 운동장도 나쁘지 않지?"
"강아지들이 너무 많아."
"에이. 이 정도면 꽤나 괜찮지. 여기다가 싼 똥도 저 사람들이 치워줄 거라고. 빨리 치우지 않으면 똥 먹는 강아지가... 으유. 저 녀석 또 똥 먹고 있네. 저렇게 된다니까."
"저 사람들은 누구야?"
"어제 말한 사람들. 청소해 주고 밥 주고 잠깐씩 여기서 놀아주는 사람들. 몇 번 본 사람도 있긴 한데, 거의 매번 처음 보는 사람들이야."
"저 사람들이 강아지를 가족으로 데려가?"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을 걸. 가끔은? 가서 인사라도 해 봐. 혹시 알아? 가족으로 데려갈지."
"됐어."
옆 방 녀석이 킥킥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갔다. 저 녀석은 얼마나 여기 있었던 걸까? 벽에 붙어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이쪽저쪽 뛰어다니며 한껏 신이 난 강아지, 사방에다가 오줌을 찔끔찔끔 싸고 다니는 강아지, 다른 강아지가 똥을 싸고 있는데 엉덩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똥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낚아채서 삼켜버리는 강아지, 놀자고 눈치 없이 보채는 강아지, 싫다고 으르렁거리는 강아지,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따라다니며 비벼대는 강아지, 바닥에 등을 문지르며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강아지, 그런 강아지들을 쓰다듬으며 인사해 주는 사람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에게 예쁨 받는다면... 가족이 생기려나?
청소가 끝난 방으로 다시금 돌아갔다. 각자 자기 방에 무사히 돌아가고 나니 이번에야 말로 밥 냄새가 났다. 강아지들은 한바탕 난리가 나버렸다. 배가 고픈 나도 좁은 방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 밥그릇이 눈앞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이다! 기다린 시간이 민망하게도 밥그릇은 순식간에 비워졌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 방 안에 다른 강아지가 들어와서 내 밥을 뺏어 먹기에는 철문이 워낙 무겁고 벽은 한참 높다는 것을. 왜냐하면 이 방의 벽은 내가 있는 힘껏 점프해도 넘어서기는 어려운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텁텁텁', '우걱우걱우걱' 소리를 내며 공격적으로 밥 먹는 소리가 들리자 나도 뒤에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이 허겁지겁 먹어버렸다. 사람들은 금방 비워진 밥그릇을 만족스럽게 치우고는 옆으로 미는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다시 건물 안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쉬었으면 이제 가볼까?"
한참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줄을 채우고는 어제 들어온 길을 따라 문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큰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창 밖을 보니 이번에는 아무래도 위로 올라온 모양이다. 지나가는 내가 바닥에 비쳐 보일 정도로 깨끗하게 닦인 복도를 지나 커다란 유리문 안으로 들어섰더니 거기에는 파란 옷을 위아래로 입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이 친구도 어제 온 애예요. 스탠다드 푸들, 2살 추정이라고 하고요. 보호소에서 누가 지어줬다는 약을 보냈어요. 외이염 약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유선종양이 있다나 봐요. 이름은 푸딩입니다."
"스탠다드 푸들요? 그렇다기에는 다리가 길지는 않네요. 털도 완전 푸들 같지는 않고... 두들일 수도 있겠네요. 외이염이랑 유선종양이라. 줄 이리 주세요. 금방 살펴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가보겠습니다."
'뭐 하는 곳이지?'
"푸딩아. 이쪽으로 올라와 볼까?"
'어렵지 않죠.'
"옳지. 잘하네. 보호소에서는 간단 키트검사만 했다고 했으니까 피 한 번 더 뽑자."
'그건... 어렵겠는데요.'
사람들은 제멋대로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상관없이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린다. 이번에 만난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도 내게서 피를 뽑고, 몸 여기저기를 만지고, 억지로 잡아 눕히고는 사진도 찍었다. 아랫배를 자꾸 조물조물 만지는 것이 영 불편했다. 그래도 입 안으로 작은 간식을 계속 넣어주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검사라는 게 그닥 좋은 것도 아니지만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을지도.
"중성화가 안 되어 있어서요.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종양 있는 거 같이 제거하면 될 거 같아요. 귀는 말씀하신 대로 외이염이랑 곰팡이가 있어서 받아온 약 우선 먹이면 될 거고요. 그 외에는 딱히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네요. 수술은 내일 할 거니까 오늘부터 일주일 정도는 병동에서 돌볼게요. 또 다음 아이는..."
나를 여기로 데려온 사람에게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설명을 했다. 나 말고도 다른 강아지들이 여럿 있었지만, 다른 강아지들 이야기까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수술이라니? 그건 뭐를 한다는 거지. 어쨌든 어제 묵었던 방보다 병동이라는 이곳이 더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는 줄 없이 돌아다닐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커다란 유리문 밖에는 엘리베이터가 보이는데, 저기로만 안 나가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것 같다. 병동에서 돌아다니는 강아지들은 덩치가 작은 애들이 대부분인데, 얘네들은 덩치랑은 전혀 다르게 꽤나 시끄럽다.
"푸딩이라고? 귀여운 이름이구나. 눈도 참 예쁘다."
'고마워요. 제 이름은 사실 푸딩이가 아니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푸딩이든 아니든 제게 이름을 지어줬던 사람들은 이제 저를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보호소에서는 크고 곱슬거리니까 푸들로 본 모양이구나. 하지만 흉통이나 다리, 두툼한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까지. 아무래도 골든두들인 듯 해."
'음, 사람들이 저를 푸들이라고 했는지 두들이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것도 뭐 중요한가요.'
"이빨이나 피부, 털 상태를 보면 최근 못 먹어서 모질이 안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나이는 좀 있어 보이는구나. 유선종양도 있으니까 최소한 7살쯤은 됐겠는 걸."
'잘 모르지만 아마 그쯤은 되었을 거예요. 차를 타고 여기저기 제법 다녀본 경험 많은 강아지니까요.'
"이렇게 검사하는 동안에도 얌전한 걸 보면 성격도 순한 것 같아. 기본적인 훈련도 되어있는 것 같고. 중대형견 나이로 적지 않은 게 조금 걸리지만... 골든두들은 요즘 인기 있는 종이기도 하니 어쩌면 입양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저는 아직 어린데요? 경험이 많다고 했지 늙었다고는 안 했어요. 아직도 장난감 좋아하고요, 줄 없이 뛰어노는 것도 좋아해요. 그뿐인 줄 아세요? 딱딱한 간식도 얼마나 잘 먹는다고요. 혹시 간식 있으세요?'
"희망을 가지렴. 언젠가 센터에 10살 정도 된 리트리버가 있었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입양 못 갈 줄 알았지만 새 가족을 만나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대. 너도 꼭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좋은 가족...'
"자, 푸딩아. 오늘은 여기서 푹 자고, 내일 일어나면 씩씩하게 수술해 보자. 건강해지면 목욕도 하고 가려진 미모도 되찾고! 가족도 찾아보자고! 잘 자렴."
잘 때는 아쉽게도 아무대서나 자는 건 아니었다.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유리문이 달린 작은 공간이 앞으로 며칠 동안 사용할 방이라고 했다. 다행인 건 폭신한 담요를 바닥에 깔아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불만이 많은 강아지가 절대로 절대로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불 위에서 자는 것만큼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불 위에 몸을 말고 누우면 점점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더이상 잠든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사람도, 악몽을 꾸느라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안심시켜 주는 사람도, 나와 등을 맞대고 잠을 자는 사람도, 그 누구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포근한 이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이제는 내 코와 마주한 내 꼬리 만이 나를 감싸주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지만, 이 날 따라 유독 밝은 달빛이 창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이불처럼 나를 덮어주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