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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24.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20 (동경협상(2))

동경협상

협상을 마치고 야마구치(山口)가 긴자(銀座)에 위치한 일본식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다다미가 있는 룸으로 예약이 되어 있었고, 일본 전통악기의 연주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야마구치(山口)가 여종업원에게 입을 손으로 가리고 뭐라고 말했다.

"하이!" 

여종업원이 밝고 높은 톤으로 대답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잠시 후, 여러 개의 작은 접시에 담긴 음식들이 들어와 개인별로 앞에 놓여 졌고, 잔 가득 담긴 생맥주도 한 잔씩 들어왔다. 

"간빠이!" 

야마구치(山口)가 잔을 들고 건배를 제안했다. 

야마구치와 우리 팀장은 날씨와 일본 술에 대해서 일본어로 대화했다. 

야마구치가 우리 팀장에게 일본어가 훌륭하다고 치켜세우며, 어디서 일본어를 배웠냐고 질문을 했고, 신입사원 시절에 일본회사에서 연수할 때 배웠다고 우리 팀장이 답했다.


나는 앞에 앉은 마쓰야마와 1년전에 여자친구와 같이 여행 갔던 큐슈 지역과 온천, 벛꽃 축제 등을 화제로 더듬더듬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마쓰야마의 말로는 큐슈는 일본 사람들도 온천여행을 많이 가는 곳이라 했다. 


메인 요리가 들어오고 일본 술이 몇 잔 오고 갔다. 

요리와 술에 대해 마다 야마구치가 간단히 설명을 해줬고 나는 눈치껏 감탄사를 곁들이며 호응했다. 


식사 내내 날씨, 음식, 온천, 동경의 교통난 등의 가벼운 주제의 대화들이 오고 가다가 회사 생활에 관한 얘기로 주제가 옮겨갔다. 

야마구치는 B사에 엔지니어로 입사하여15년전에 특허부서에 합류한 고참 과장이었고, 마쓰야마는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3년전에 B사에 입사한 주임이었다. 

그리고 부서장인 와타나베는 단순히 우리 회사와 미팅을 피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업무상 일이 많아서 현재 미국 출장 중이라고 했다.


일본식 코스 요리가 끝나고, 디저트로 샤베트와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디저트가 나오고 석식이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가 되자 우리 팀장을 입을 열었다. 

"야마구치 상! 

우리는 이번 분쟁을 대화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B사 입장에서도 막대한 비용과 투여될 자원을 생각하면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소송을 계속 끌고가면 결국은 변호사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야마구치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저도 양사 간에 대화로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이 워낙 강경해서 대화를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결정적으로 올 초에 귀사가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하여, 오랜 거래선이 이탈한 것에 대하여 경영진이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경고장을 보냈을 때 답변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크게 불쾌감을 느꼈구요. 

새빛전자에서 납득할 만한 조건을 먼저 제시하지 않는 한, 대화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경고장 건은 전적으로 우리 회사가 경험이 없어서 벌어진 해프닝입니다. 

회의에서도 말했지만, 기술 협상을 통해 양사 특허 평가가 끝나면, 경영진을 설득해서 납득할 만한 타결 조건을 제시하도록 할 테니 야마구치 상도 귀사의 경영진을 설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와타나베 부장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오늘 내용을 보고하겠습니다. 

야마구치가 남아있는 잔을 비우며 말했다.

야마구치가 종업원을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식당을 나오면서 팀장이 오늘 석식이 훌륭했고 다음에는 한국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야마구치와 마쓰야마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이번 대면 협상은 표면적으로 큰 진전은 없었으나, B사가 우리 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자신들의 중요한 고객이 이탈한 사실에 경영진이 격앙되어 있으며 그것이 이번 특허 소송의 직접 원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실무진에서는 협상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수확이었다. 

일단 실무진과 안면을 텄으니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물 밑으로 협상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끈을 확보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호텔로 돌아가가 위해 긴자(銀座)의 화려한 밤거리를 걸어 히가시긴자(東銀座)역에서 도착했다.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호객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술집에서 한 잔 더할 것을 권했다. 


히가시긴자(東銀座)역에서 호텔이 있는 시나가와(品川)역까지는 멀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 도착해서 팀장과 차 한잔을 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장대리, 소감이 어떘나요?" 

팀장이 물었다. 

"동경에 와서 만나보길 잘한 것 같습니다.

미팅에서는 입장이 강경하였지만 석식 자리에서 느낀 분위기로는 어느정도 협상의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느낀 점을 말했다. 

"나도 동감이에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협상의 첫 단추를 끼웠으니, B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십시다. 

그리고 내일 오전 비행기로 귀국해서 오후에 바로 결과 보고를 해야 하니, 수고스럽지만 간단하게 미팅 보고서를 준비해 주세요.

길게 쓸 필요 없이 1장으로 정리하면 되겠네요. 

늦었으니 들어가 쉬십시다. 

내일 아침 7시에 호텔 식당에서 봐요. 굿 나잇!"

인사를 하고 팀장이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팀장과 헤어져 룸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켰다. 

뭔가 많은 얘기가 오고 간 것 같은데 한 장으로 정리하라니 막막했다. 

취기도 올라와 잠깐 침대에서 눈을 붙일까 싶다가 지금 누우면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샤워를 하고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창밖으로 멀리 동경만의 랜드마크인 레인보우 브릿지가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고 있었다.




Tip 20. 

특허협상의 과정에서 진행되는 술자리를 포함한 석식은 비공식적으로 상대방의 속내를 파악하기 좋은 기회이며, 협상 상대방과의 친분과 관계를 형성하는 자리입니다. 


과음은 금물이며, 매너를 갖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협상의 가장 높은 기술은 나를 압박하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도록 만드는 기술입니다. 


협상 사안 이외에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취미, 기후, 역사, 음식 등의 화제를 사전에 준비해 두면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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