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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21.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19 (동경협상(1))

동경협상

오전에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여 비행 끝에 하네다(羽田)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간장과 생선 비린내가 합쳐진 찝찔한 냄새가 났다. 

어느 나라든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하는 데, 이것이 일본 특유의 냄새인 것 같다. 


입국 수속과 세관 검사를 마치고 공항 터미널로 나왔다. 

공항에서 동경 모노레일을 타고 하마마쓰초(浜松町)에서 내려서 야마노테선(山手線)으로 갈아타고 시나가와(品川)역에 도착했다. 

하네다(羽田) 공항은 도심과 가깝고 대중 교통이 잘 되어있어서 시나가와(品川)역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역에서 나오니 예약한 비즈니스 호텔이 가까이에 보였다.

우리 팀장은 신입사원 시절에 일본업체에 연수한 경험이 있어서 인지 일본어와 동경 지리에 밝아 능숙하게 목적지로 안내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체크인 시간전이라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팀장이 안내한 곳은 연륜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집이었다.

"이랏샤이마세!"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장대리 일본은 처음인가?"

"대학생 때 1주일 정도 여행 온 적은 있었는데 오래되서 그런지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그렇군. 일본 음식은 우리 입맛에 맞아서 먹는 즐거움이 있지.

여기는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발견한 맛집인데 아버지랑 딸이 2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우선 주문부터 하지" 

"팀장님이 잘 아시니 추천해 주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내가 주문할 테니 한번 먹어봐요."


팀장은 종업원을 부르더니, 유창한 일본어로 음식을 주문했다. 

팀장이 시킨 음식은 ‘히쓰마부시'라는 나고야식 장어 덮밥이었는데, 한국에서 먹은 것보다 조금 더 달고 짠 맛이 느껴졌지만 아주 맛있었다.




B사와의 약속 시간이 오후 3시여서 점심을 먹은 후 바로 지하철을 타고 동경역으로 향했다. 

B사 본사는 동경역에서 멀지 않았다. 

B사 빌딩 로비의 안내 데스크에서 야마구치 상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데스크 여직원이 여권을 확인하고 출입증을 발급해준 후,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짙은 청색 정장에 넥타이를 맨 남자 2명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부팀장 야마구치(山口)와 실무자인 마츠모토(松本)였다. 

야마구치는 키가 작고 머리에 기름이 흐르는 전형적인 일본 중년 남성이었고, 마츠모토는 30대의 마른 체격으로 총기가 있어 보였다. 

서로 인사와 명함을 교환하고 야마구치와 마츠모토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에 들어섰다. 크지 않은 회의실에는 테이블 양쪽에 페트병에 든 음료수가 각각 2개씩 놓여 있었다. 


B사 참석자와 우리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팀장과 나는 받은 명함과 노트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날씨에 관한 주제로 간단한 대화를 서로 주고받았다. 

팀장은 일본어가 능숙함에도 영어로 대화를 진행했고 야마구치의 영어도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알아듣기는 쉬웠다. 


"준비해 온 타결 조건이 있나요?" 

야마구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제 본격적인 협상이 개시된 것이다. 


"메일에도 썼지만 소송보다는 양사가 대화를 통하여 원만하게 이번 사안을 해결하는 것이 양사 비즈니스에 도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시는 대로, 미국 특허 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절차인 바, 소송이 지속되면 제조업을 하는 양사에 여러가지로 부담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팀장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난 여름에 대화로 해결하고자 서신을 보냈지만, 귀사의 무응답으로 당사 경영진이 소송을 결정하였으니 소송이 발생한 책임은 새빛전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소송이 시작된 이상 소송을 끝까지 가서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경영진의 입장입니다."

야마구치가 무표정한 얼굴로 B사 입장을 말했다.


"우리회사 경연진들도 소송을 끝까지 진행해서 결론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면 양사 모두 리스크가 있지 않겠습니까?

반소로 제출된 새빛전자의 특허들도 내부적으로 침해 검증이 모두 완료된 특허들입니다."

우리 팀장도 지지 않고 강경한 입장으로 대응했다.

나는 이러다 협상이 조기에 결렬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지만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귀사에서 반소한 새빛전자의 특허들을 분석한 결과 특허 2건은 무효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되어 특허소송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빛전자가 납득할 만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한, 소송으로 승부를 보자는 당사 경영진의 입장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마구치는 계속해서 강경한 자세로 압박했다. 

B사는 사전에 소송을 철저하게 준비해 왔고, 우리 회사의 반소 특허 2건에 대한 분석도 완료한 것으로 보였다. 

협상 진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더 커져갔다. 


"기술협상(Patent Discussion)을 통해 특허의 침해성과 무효성에 대하여 서로의 포지션을 파악한 후, 양사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요?" 

"당사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새빛전자에게 주었는데, 귀사가 그것을 받지 않아 이런 상황이 된 것입니다. 

특허에 대한 침해성과 무효성은 법원에 다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마구치와 우리 팀장 간의 대화에 불꽃이 뛰었다. 

우리 팀장은 어떻게든 협상의 실마리를 찾아 내려고 했지만 적어도 오늘 미팅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괜히 말실수를 할까 싶어서 잠자코 대화 내용을 기록하면서, 간간히 팀장에게 나의 생각을 간략히 메모로 써서 보여줬다. 

B사의 마츠모토 역시 회의 내내 별다른 말없이 팀장과 야마구치의 대화를 지켜봤다.


잠시 간의 브레이크를 갖고 다시 자리에 마주 앉았다. 

"여러 번 말했듯이, 미국 소송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은 양사에 모두 부담이 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따라서, 합리적인 타결 조건을 찾기 위해 양사 소송 특허들의 평가를 위한 기술협상 (Patent Discussion)을 진행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팀장이 입장을 정리해서 기술 협상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로서는 새빛전자에서 납득할 만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한, 소송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 기술 협상을 진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 까지가 전부입니다." 

야마구치도 자기들의 강경한 입장을 다시 강조하면서 회의를 마무리했다. 


일단 다음 일정은 잡지 않고 오늘 논의된 양사 입장을 각자의 경영진에 보고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회의가 날선 분위기로 종료되고 야마구치와 마츠모토가 회의실을 나가 바려서, 나는 오늘 예정된 저녁 식사는 취소되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야마구치와 마츠모토가 조금 전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와서는 예약된 식당으로 가자고 말했고 우리 팀장 역시 웃는 얼굴로 식사에 초대해줘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처음 접해 본 협상의 세계는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Tip 19. 

특허협상의 전 과정에서 회사 방침과 명분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상 초기에는 양사가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방의 내심을 파악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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