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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19.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18 (협상 준비(2))

협상 준비

B사에서 답장이 왔다.


"친애하는 김지훈씨, 

귀사의 메일에 감사드립니다. 

귀사의 미팅 제안에 감사하나, 현재 당사로서는 귀사를 만나야 하는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양사 모두 미국 법원에서 법적 절차를 통하여 옭고 그름을 가려내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소송 전에 당사는 본 사안을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서신을 보냈으나, 귀사의 무성의하고 터무니없는 대응으로 인해 당사는 소송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사는 귀사의 특허 침해 행위에 대해 법원에서 막대한 손해배상판결 및 특허침해중지 판결을 내릴 것을 확신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사는 귀사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나, 귀사에서 이번 달 마지막 주에 동경으로 오실 수 있다면 우리 팀의 부팀장인 야마구치(山口) 상이 시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Beat Regards,

와타나베(渡辺)"


일본 특유의 겸양어가 섞인 영문 편지였으나, 우리 회사를 협박하고 조롱하는 무례한 내용의 답장이었다. 

나 역시 B사 메일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팀장은 특별한 표정 변화없이 본 서신 대응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 전에 먼저 B사 답장을 읽고 온 우리 회사 중역들이 회의 시작 전부터 하나 같이 몹시 격양되어 있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회사간의 편지에 이렇게 쓰는 X들이 어디 있어요!"

"이것들이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실무진이 어떻게 했길래 이런 답장을 받나요, 화도 안나요?"



우리 팀장이 우선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기분은 나쁘지만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번 협상은 문화와 성향이 다른 외국 회사와 하는 글로벌 협상이고, 단기간에 협상이 결판날 것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냉정하게 현 상황을 분석하고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사가 무례한 답장을 보내왔지만, 우리는 정중한 매너를 유지하고 대화의 끈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본사 기획팀장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B사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니, 우리가 동경으로 가서 대면 미팅을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우리가 동경으로 오면 만날 수 있다는 여지를 보였으니까, 우리가 간다고 하면 만나주기는 할 겁니다."

우리 팀장이 차분하게 답변했다. 


"그쪽 팀장은 못 나온다고 하잖아요.

겨우 부팀장 만나겠다고 동경까지 간다는 겁니까?"

본사 기획팀장이 계속해서 우리 팀장을 몰아붙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발 빼고 우리 팀이 대처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다가 이제 기회가 왔다 싶은 모양이다.


"부팀장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허심탄회하게 B사 속내를 알아볼 기회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저와 장대리가 가서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협상에 대한 우리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안면도 트고 인사도 하는 것이 향후 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 팀장이 답변했다. 


"김지훈 팀장 말이 일리가 있네요. 변호사는 같이 갈 필요는 없을까요?"

듣고 있기만 하던 연구소장이 입을 열었다. 

"소송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변호사가 참석하면, 각자의 속내를 말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미팅은 회사 직원들만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김팀장과 장대리가 가서 한번 사정을 들어보세요."

연구소장의 승인으로 대처 방향이 정해졌다. 

기획팀장은 여전히 못 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딱히 반론을 내지는 않았다. 


나 역시 B사의 무례한 답장을 받았을 때는 화도 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팀장의 내공으로 잘 수습이 된 것 같다.

개인 간의 일도 아니고 회사 간의 협상에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금물이라고 윤변호사에게 그렇게 들었으면서 쉽게 흥분했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직접 대면 협상을 하게 되면 이보다 훨씬 많은 돌발 상황이 벌어질 텐데 그 때를 대비해 마음 수양을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회의에서 정해진 방향에 따라 그날 오후 B사로 편지를 보냈다. 

우리 팀장과 내가 이번 달 마지막 주에 동경으로 갈 수 있으니, B사의 편리한 날짜와 시간 그리고 참석자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정과장은 일본 통인 자신이 출장자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팀장의 결정이니 만큼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틀 후, B사에서 우리 편지에 대한 답장이 왔다. 

마지막주 수요일 오후 3시, 장소는 동경 치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B사 본사, 그리고 참석자는 부팀장 야마구치(山口)와 실무자인 마츠모토(松本)였다. 

말미에, 회의 후 석식에 초대하고 싶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날 오후, 김포-하네다 비행기표 왕복 2매을 예약하고, 시나가와(品川)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을 예약했다. 


마지막 주 수요일, 동경에서의 첫 미팅은 B사의 의도 파악, 우호적인 타결 분위기 조성과 향후 협상 일정을 B사와 논의해 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B사와의 첫 번째 협상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Tip 18. 

특허협상의 특징은 협상 기간이 길다는 것입니다. 

짧게는 6개월에서 보통은 2년 여의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특허협상은 오랜 시간 이어지는 관계지향적 국제 협상이므로 상대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울러, 어떠한 경우에도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항상 비지니스 매너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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