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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18.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16 (협상 모색)

협상 모색

LA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날 오전에 출장보고를 마치고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니 팀장이 잠시 회의실에서 보자고 했다.


"장대리, 출장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소송 대응의 첫 단추는 잘 뀌어진 같은 데, 이제 B사에게도 접촉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팀장이 물었다.

사실 나도 내심으로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B사에서 경고장을 받고 소송까지 오는 과정에서 우리 회사는 B사에게 아무런 의견을 보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팀장을 포함한 우리 팀의 책임도 있기에 말을 꺼내기에 조심스러운 주제이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상의 드리려고 했습니다. 

B사에 접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북극해 윤변호사 의견을 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네 그러면 바로 윤변호사와 논의해 봅시다."

곧바로 윤변호사에게 메일을 보내 컨퍼런스 콜을 제안했다. 

윤변호사도 시간이 괜찮다고 하여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출장은 잘 다녀오셨나요? 얼굴이 좀 타신 것 같네요"

윤변호사가 화상으로 인사했다.

"네 CP&L에서 준비를 잘 해 주셔서 출장은 잘 마쳤습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캘리포니아 구경도 잘 했구요."

내가 팀장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메일로 간략히 말씀드렸지만 이제 B사에 접촉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해서 변호사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네 좋은 생각이십니다.

특허 소송은 판결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고 협상을 통해 양사간 타결을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철저하게 대응하면서, 동시에 협상을 진행하여 비지니스적으로 타결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B사의 속내를 알아야 소송을 끝을 보든지, 아니면 협상으로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지도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새빛전자도 반소장을 제출해서 양사 간에 소송에서의 균형도 맞춰졌으니 지금이 B사에 접촉하기에 좋은 타이밍일 것 같습니다."

윤변호사가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B사에 보낼 이메일 초안을 좀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윤변호사의 제안에 팀장이 수긍하면서 말했다. 

"네 물론입니다. 한글 버전/영문 버전으로 초안 준비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화상 회의를 통해 B사에 접촉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회의를 마치고 일어나려고 할 때 팀장이 말했다.

"참, 그리고 장대리 혼자서 너무 고생이 많은 것 같아서 정과장에게 도와주라고 했으니까 지금까지 진행상황을 설명해주고 앞으로는 같이 대응하도록 하세요. 

정과장이 일본어를 잘하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거예요."


정과장은 우리 팀의 선임 과장으로 일본 지사 주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번 주부터 회사로 복귀했다. 

계산이 빠르고 업무 능력이 좋아서 윗분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지만 매사에 좀 딱딱하고 원칙적이어서 후배 직원으로서 같이 일하기 좋은 타입은 아니었다. 

나 역시 정과장에게 아주 편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데다가 혼자서 일하면서 소송 대응을 해가는 것에 나름 보람도 느끼고 있었던 참이라 정과장과 같이 일하게 되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팀장이 나름 배려하여 인원을 할당해 주는 것에 토를 달 수 없어 알겠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정과장이 조인하더라도, 장대리가 소송 대응의 실무 책임자인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다른 것은 걱정하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잘 진행해봐요.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주고." 

팀장은 내 심경을 눈치챘는지 나를 다독이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정과장에게 알려줄 그간의 소송 경과를 정리하고 있으니 윤변호사로부터 B사에 보낼 이메일 초안이 도착했다. 


"친애하는 와타나베(渡辺)씨

귀사에서 미국에서 제기하신 특허소송과 관련하여 연락 드립니다. 

당사는 귀사의 소장을 접수하고 대리인을 선임하여 법적인 절차를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송을 통한 해결보다는 양사가 대화를 통하여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양사 비즈니스에 도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미국 특허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절차인 바, 소송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양사에 여러가지로 부담될 것으로 믿습니다. 

우선 본 사안과 관련한 양사 입장을 교환하기 위한 미팅을 제안하니, 귀사의 편하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incerely, 

김지훈/새빛전자 연구지원팀장 "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문장으로 협상의 의지가 잘 드러나게 작성된 것 같다. 

사소한 수정 사항을 요청하기 위해 윤변호사에게 답장을 쓰고 있자니, 정과장이 내 자리로 왔다. 

 

"장대리, 커피나 한잔할까?"

정과장과 나는 회사 로비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갔다.

 

"장대리도 들었겠지만 나도 소송대응에 참여하게 됐어.

내가 회사를 비운 중에 발생한 일이라 아직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는데 장대리가 좀 정리해서 알려줘." 

정과장이 단도직입적으로 업무 지시를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간 혼자서 힘들었는데 이제부터 정과장님이 같이 해주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내가 짐짓 기뻐하는 척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정과장의 합류를 환영했다.

 

"그래 장대리가 그간 혼자서 소송 대응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어

B사 스타일은 내가 좀 아니까 장대리는 이제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앞으로 잘해 보자구"

정과장이 내 기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저러니 후배들이 싫어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 지금까지 발생한 자료들은 카테고리별로 정리해서 공용 폴더에 lock걸어서 올려 놓겠습니다. 

자료를 읽어 보신 후에 제가 시간을 내서 보완 설명을 드리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오케이, 내가 읽어보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장대리에게 물어볼께"

정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재원도 다녀왔으니 만큼 성격이 조금은 변했을까 기대했는데 알고 있던 정과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정과장과 같이 일하는 것이 껄끄럽기는 했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어야 할 정도로 바쁜 상황을 고려하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후에 윤변호사가 수정해온 이메일 초안을 출력해서 팀장에게 전달했다. 

"잘 작성됐네. 일단 보내고 B사의 반응을 보지요."

팀장은 아끼는 몽블랑 만년필로 편지에 사인을 하면서 말했다. 

팀장이 서명한 편지를 PDF로 구워서 B사로 email을 보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B사와의 협상을 준비할 때가 온 것 같다. 

가게에서 물건 값 하나 제대로 못 깎는 내가 특허 협상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B사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마음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자료를 정리하여 공용 폴더에 올리면서 본인만 참고하시라는 부탁과 함께 정과장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정과장에게 잘 알았다는 짧은 답장이 왔다.

 

시차 때문에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수정이에게 전달할 면세점 물품들을 챙겨서 조용히 회사문을 나섰다. 


Tip 16. 

대부분의 미국 특허 소송은 법원의 판결까지 가기 전에 당사자간의 합의로 중간에 종결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소송 대응을 철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협상을 진행하여 비지니스적으로 타결을 모색하는 것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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