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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13.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14 (LA 출장(1))

LA 출장

드디어 출국 날이 왔다. 

CP&L변호사들에게 소송 특허와 관련된 기술을 포함하여 디스플레이 전반에 걸친 기술 설명과 소송 스케쥴 협의를 위한 출장이었다. 

출장자는 제품개발팀의 이수석과 박책임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으로 정해졌다.

총무팀에서는 미국 출장을 굳이 세 명이나 갈필요 있냐고 계속 타박했지만, 패널과 회로 기술이 전혀 다른 분야이고 엔지니어 한 명이 두 분야를 모두 커버하기는 어렵다고 이수석이 총무팀을 잘 설득하여 박책임도 출장에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 해보는 출장 준비인지라 항공권 구매, 호텔 예약 등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막상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들어서니 기분이 설레였다. 

주말에 수정이가 면세점에서 한아름 구매한 물품들을 픽업하고 사진을 찍어서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수정이는 요즘 안그래도 바빠서 자주 못보는데 이제 아주 미국까지 간다고 하니 입이 삐쭉 나왔었지만 면세점에서 신나게 쇼핑하면서 기분이 좀 누그러졌다. 


장시간의 비행이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때 되면 나오는 기내식을 즐기면서 그간 놓쳤던 최신 영화들을 보고 있으니 12시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LAX 공항에 도착하니 입국 심사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입국 심사를 하는 미국 국토안보부 직원들은 사람들이 기다리든 말든 계속해서 자리를 비우고 자기들끼리 잡담도 하면서 느릿느릿 일처리를 하는 바람에 입국 심사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한국 공항의 빠릿빠릿한 일처리에 익숙한 나로서는 참 속터지는 광경이었다. 


입국 심사 후, 짐을 찾아 세관을 지나 공항 터미널로 나오니 비행기 도착 후 어느덧 두시간이나 지났다. 

렌트카 회사에서 운행하는 노란색 셔틀 버스를 타고 예약한 렌트카를 픽업하니 오후 한 시였다. 

이수석이 예약한 렌트카는 토요타 캠리였는데 캘리포니아 출장이라 조금은 럭셔리한 차를 타볼 수 있을까 했던 나는 속으로 조금 실망했다. 


"장거리 비행을 했으니, 해장이나 하러 가십시다."

미국에서 해장이라니 속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닌게 아니라 장시간 비행기를 타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해서 잠자코 있었다. 

이수석은 자신있게 5번 도로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한국은 겨울인데 날씨는 전혀 춥지 않았고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야자수가 늘어선 풍경이 LA에 왔음을 실감시켜 주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LA Korea Town에 위치한 BCD순두부 집이었다. 

"여기가 내가 미국에서 교환 학생으로 있을 때, 가끔 왔었던 곳인데 한국보다 더 맛있어요.

BCD는 북창동의 약자입니다 하하" 

이수석이 으쓱하며 말했다. 

나와 박책임은 미국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낮 설었지만, 이수석은 대학시절에 USC로 교환 학생을 와서 1년간 LA에 체류한 경험이 있어서 LA지리와 물정에 어느 정도 익숙했다. 

이수석 말 대로 이 집 순두부는 정말 맛있었다. 

더부룩한 속이 확 풀리는 게 왠만한 한국 음식점보다 솜씨가 좋은 것 같았다. 

나중에 듣기에 미국에 있는 한국 음식점들은 경쟁이 심해서 어지간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하고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우리 호텔은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저가의 체인 호텔이었다. 

출장 경비가 빠듯했기 때문에 내가 호텔 예약 사이트를 뒤져가면서 겨우 찾아낸 곳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조용하고 실내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괜찮은 인상이다. 


CP&L과는 내일 월요일 오전부터 미팅 일정이 잡혀 있었다. 

오늘 오후에는 시차 적응과 미팅 준비를 할 계획으로 출장 알정을 정했다. 

샤워를 하고 내일 미팅자료를 챙기고 있는 데, 이수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대리 뭐해요? 시차 적응도 할 겸해서 바닷가에 구경이나 갑시다.

박책임도 좋다고 하네요."

"네 좋죠. 로비로 내려가겠습니다."


잠시 후, 면바지에 영문이 크게 쓰여 있는 티셔츠 그리고 선글라스로 멋을 낸 박책임과 수수한 캐주얼 차림의 이수석을 로비에서 만났다. 

나도 청바지에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나섰다. 

"캘리포니아에는 햇빛이 강해서 선글라스가 필수품이라면서요."

박책임이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회사 안에서는 좀 딱딱하고 일 밖에 모른다는 인상이었는데 나름 여유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이수석이 운전을 해서 도착한 곳은 그 유명한 산타 모니카 해변이었다. 

넓은 비치가 펼쳐져 있었고, 나무로 만든 피어가 바닷가 쪽으로 길게 나가 있었다. 

피어 초입에는 각종 놀이 기구와 기념품을 파는 상인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피어 끝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검푸른 태평양을 바라보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산타 모니카 해변을 걸은 후, 해변 건너편에 있는 상가 밀집 지역으로 갔다. 

해변에는 편한 복장으로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비치 발리볼 하는 사람, 일광욕 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한참 주위 풍경을 즐기며 걷다가 해변이 보이는 멕시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볼륨감 있는 히스패닉계 여자 종업원이 붙임성 있게 인사를 하며 주문을 받으러 왔다. 우리는 메뉴판에 있는 그림을 손으로 집어가며 주문을 했고, 맥주도 한 잔씩 시켰다.



그렇게 산타 모니카 해변의 분위기를 한껏 즐긴 후 다음 목직지인 헐리웃으로 향했다. 

이수석의 안내에 따라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시어터 앞에서 기념 사진도 한 장 찍고, 그 옆에 있는 차이니스 시어터 광장에서 유명 배우들의 손도장들을 구경했다.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모건 프리먼, 도널드 덕 (이건 발도장이었다)의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병헌, 안성기 같은 우리나라 배우들의 손도장도 발견하니 새삼 반가웠다.


즐겁게 LA 관광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시차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지 안았지만 잠을 푹 자 두어야 내일부터 진행될 CP&L과의 미팅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았다. 


알람을 오전 6시에 맞추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멜라토닌 2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미국에서의 첫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Tip 14. 


미국 소송 대응을 하게 되면 업무 협의를 위해 현지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게 될 일이 많습니다.

출장 첫 날은 장기간 비행 후 피곤한 상태이겠지만 숙소에서 보내기 보다는 근처에 있는 명소를 방문하여 가볍게 산책하는 것이 시차 적응과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로컬 음식점들을 찾아다니면서 현지 문화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며, 업무에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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