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출장
CP&L은 LA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었다.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에서 내려 CP&L 리셉션 데스크에 도착했다.
북극해에 가본 것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로펌에 방문했던 건데 이제 미국 로펌에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는 것 같다.
한국 새빛전자에서 Mr. Stoll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푸근한 인상의 리셉션 직원이 반갑게 웃으며 회의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회의실은 통유리를 통해 LA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멋진 전망을 가졌으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큰 테이블과 가죽의자, 화상회의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었다.
또한, 벽면에 붙어 있는 테이블에는 탄산수, 물, 얼음, 커피 그리고 간단한 다과도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 3명은 창밖으로 보이는 LA시내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북쪽으로 산맥이 가로 지르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멀리 태평양도 보였다.
남쪽으로 바둑판처럼 구획된 시가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고속도로에는 장난감처럼 보이는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보다 공기가 깨끗하고 높은 산이 없어 멀리 까지도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후, Mr. Stoll이 여러 명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Good morning! 여행은 어땠나요?"
Mr. Stoll이 웃으며 물었다.
"좋은 비행이었고 도착해서 잘 쉬었습니다."
나 역시 웃으면서 답했다.
변호사들과 명함 교환과 인사가 끝나고 회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Mr. Stoll의 제안으로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했다.
나도 영어로 미리 준비해둔 자기 소개를 했다.
이렇게 많은 미국인들 앞에서 영어를 하기는 처음이라 짧은 문장인데도 내심 조금 떨렸다.
참석한 변호사들은 모두 전자, 전기공학이나, 재료, 화학 공학을 학부에서 전공하고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된 사람들이었다.
변호사들 중 로스쿨을 막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여자 변호사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나중에 듣기로 미국 변호사들도 클라이언트를 직접 대면하는 미팅은 파트너 변호사가 아닌 다음에는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수석은 교환 학생으로 LA에 1년간 체류한 경험이 있고, 나와 박책임은 이번이 미국은 처음 방문이라는 것도 자기 소개 때 전달되었다.
"저희 로펌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포함한 CP&L의 변호사들은 이번 소송에서 좋은 결과가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Mr. Stoll이 여전히 신뢰감을 주는 저음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CP&L에서 이번 방문기간 동안의 Agenda를 준비된 PPT로 설명했다.
Mr. Stoll이 이번 새빛전자의 방문 목적은 새빛전자 디스플레이 제품 전반에 걸친 기술과 소송 특허들의 기술 내용을 설명하고 소송 스케쥴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새빛전자 엔지니어들이 멀리 한국에서부터 어렵게 시간을 내어 참가한 것이니 만큼 집중해서 들으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회사 내에서도 수평적인 관계로 직상 상사와도 편하게 대화한다고 들었는데, 변호사들이 경직된 자세로 Mr. Stoll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을 지겨보면서 미국 로펌은 꼭 그렇지도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회의는 3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첫째 날 오전은 디스플레이 전반에 대한 기술 설명, 첫째 날 오후와 둘째 날은 B사 특허 기술 설명, 셋째 날 오전은 우리 특허 기술설명 오후는 Wrap-up을 하는 빽빽한 일정이었다.
디스플레이 기술 전반과 패널관련 특허 기술은 이수석이, 회로관련 특허는 박책임이 담당자로 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회사 공격 특허 설명과 소송 스케쥴에 대한 논의를 담당할 예정이다.
잠시 휴식 후에, 이수석이 준비해 온 PPT로 디스플레이 기술 전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워낙에 익숙한 기술이니 만큼 이수석은 유창하지는 않지만 무난하고 쉬운 영어로 기술 전반을 설명했다.
참석한 변호사들은 진지하게 경청했으며,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모두 엔지니어링 백 그라운드가 있고 디스플레이 기술에는 익숙한 변호사들이어서 그런지 이수석의 설명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회의실로 Catering 서비스로 샌드위치와 과일이 준비되었다.
변호사들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스몰 토크를 이어 나갔다.
변호사들이 나에게도 몇 마디 질문을 던졌는데 긴장해서인지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없어서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부디 무시하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랬다.
점심 후, 오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오후에는 박책임이 B사 회로 특허 내용과 관련된 기술을 설명했다.
미국 변호사들은 B사 특허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는지 질문을 많이 했으며, 박책임도 열심히 답변을 해주었지만 영어 표현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지 종종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그럴때마다 나를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한국어가 영어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내가 얼른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여 필요한 단어들을 알려주는 식으로 2인 1조로 회의를 진행했다.
미국 변호사들은 클라이언트이니 만큼 조금도 답답한 기색 없이 최대한 우리 설명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니 시차 때문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아닌게 아니라 장시간 비행의 여독도 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익숙하지 않은 영어 회의를 종일 하자니 몸이 피곤할 법도 했다.
그래도 회사 대표로 출장 온 것이니만큼, 커피를 마시면서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여 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정신없이 회의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덧 계획했던 3일이 흘렀다.
철저하게 준비한 보람이 있어, 디스플레이 기술 전반 그리고 B사 소송 특허 5건과 우리 회사 특허 2건에 대한 기술 설명을 잘 하였고 미국 변호사들도 기술적인 측면을 잘 이해한 것 같았다.
소송 스케쥴과 Protective order 범위도 Mr. Stoll이 상세하게 설명하고 적절한 옵션들을 제시하여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CP&L에서 예약한 로펌 인근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변호사 들과 석식을 같이 했다.
Mr. Stoll은 이 음식점이 영화 라라랜드에 나온 곳이라면서 영화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어렵게 예약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음식점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맛도 훌륭해서 큼지막한 티본 스테이크와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양껏 즐길 수 있었다.
와인에 얼큰하게 취하다 보니 갑자기 용기가 생기면서 안되던 영어도 더 잘되는 기분이 들었다.
3일동안 회의실에서 업무 얘기만 하던 변호사들에게 농담도 하면서 한국에 방문하면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석식을 마무리하면서 Mr. Stoll이 새빛전자의 출장자들 덕분에 CP&L의 소송 변호사들이 디스플레이 기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소송 승리에도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건배를 제의했다.
참석자들이 ‘치어스’를 외치면서 잔을 힘차게 부딪쳤다.
다음날, 탑승 수속을 하고 공항 면세점을 둘러보던 중에 갑자기 경리 직원인 민영씨 생각이 나서 샤넬 향수를 하나 챙겼다.
혹시라도 수정이한테 들키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Tip 15.
미국 특허 소송을 매니징하는데 있어서 소송 대리 미국 변호사들에게 소송 제품 및 관련된 특허에 대한 상세한 기술 설명을 하여 미국 변호사들이 관련 기술을 정확하게 숙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소송과 달리 특허 소송은 변호사들이 얼마나 기술을 잘 이해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