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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11.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12 (특허발굴(2))

특허발굴

몇일 후, 출근하자마자 제품개발팀 이수석에게 전화가 왔다. 

"장대리, 좋은 소식이야. 

우리 회사 특허 분석이 완료되었는데 우리 생각에는 4건 정도는 B사에서 사용하는 것 같아."

"와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기술 분야는 어떤가요?"

"회로 특허가 2건, 패널 특허가 2건이야. 

이 정도면 우리도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네,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결과인 것 같아요. 

자세한 건 북극해 변리사들과 논의해 보시죠. 

정리된 자료 보내 주시면 바로 북극해로 보내고 미팅 일정 잡을께요.

그쪽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니, 일정은 내일 오후로 잡아보겠습니다."

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공격 가능한 특허가 있기는 할까 걱정했는데 4건이나 되다니 기대 이상의 결과다.

이거 이러다가 우리가 B사한테 돈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나는 보너스라도 받으려나?

갑자기 머리 속으로 희망회로가 돌아가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음날 오후에 북극해에서 특허발굴 회의가 시작되었다. 

북극해에서는 윤변호사와 김변리사, 그리고 다른 변리사 1명이 참석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제품개발팀 이수석, 박책임 그리고 엔지니어 3명과 내가 참석했다.

우리 회사 엔지니어들은 모두 로펌 방문이 처음이라 그러지 조금 위축된 느낌이었다. 


"먼저 제품개발팀에서 특허 분석 결과를 설명해 주시지요."

회의를 시작하면서 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패널특허 2건은 이수석이, 회로특허 2건은 박책임이 발표했다. 

회로특허 중 1건은 박책임이 발명자였다. 

박책임은 자기 특허를 설명할 때 유독 높은 목소리로 발명을 착상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자신의 발명의 훌륭한 점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발표를 차분히 들은 후 윤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저희들도 어제 연락을 받고 늦게까지 자료를 검토하였습니다. 

설명을 잘 해 주셔서 4건 모두 기술적으로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CP&L 변호사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아야 하겠지만, 4건 중 2건은 침해 입증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소송에 사용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패널 관련 1건은 제조 방법에 관한 발명인데, 설명해 주신 내용에 따르면 청구항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 단계는 B사에서 직접 실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B사의 하청 업체에서 하는 간단한 작업인데 그래도 침해 주장이 어려운가요?"

이수석이 당황하면서 질문했다.

"네 저번에 설명드린 바와 같이 All-Element-Rule에 따르면 청구항의 모든 구성을 B사 실시해야 침해 주장이 가능합니다. 

물론 간접 침해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본 특허에는 적용되기 어려울 것 같구요. 

그리고, 사실 다른 부분들도 B사가 제품을 만드는 공정 중에 실시할 것으로 예상은 됩니다만 B사의 내부공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인하여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지도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윤변호사가 대답했다. 


"아 ... 그런 문제도 있군요"

이수석이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수긍했다. 

윤변호사가 이어서 설명했다. 

"나머지 회로 관련 1건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적용된 기술이라서요. 이 부분은 B사의 제품의 소스코드를 확인하지 않고는 침해를 확신하기 어려운 것 같은데 아닌가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희가 테스트한 결과로는 사용할 개연성인 높은 것 같은데요. 이런 테스트 결과만 가지고는 침해 주장이 힘든가요?"

해당 특허 발명자인 엔지니어가 질문했다.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반소한 후에 특허 침해 입증을 못하게 되면 우리의 다른 주장도 신뢰성이 약해질 수 있거든요"

회의 시작 전에 자신만만했던 우리 회사 엔지니어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머지 2건은 침해 입증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윤변호사가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한층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다만, 회로 관련 1건은 청구범위가 너무 넓어서 소송이 진행되면 무효 가능성이 높은 리스크는 있어 보입니다. 아쉽게도 종속항도 몇 개 안 되구요."

"특허는 청구범위가 넓으면 좋은 것 아닌가요? 

특허출원 교육 때 들은 것 같은 데요."

자기 특허가 무효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박책임이 약간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반드시 특허의 권리범위가 넓기만 하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등록이 된 후에도 소송이나 IPR 같은 별개 절차에서 특허가 무효라고 판단될 수 있으니까요.

적당한 범위로 등록이 되어야 상대방의 무효논리를 극복하기 용이하고, 결국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유효하다는 판단이 나와야 침해로 결론이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소송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니 본 특허도 반소장에는 포함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윤변호사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 회사는 출원을 하면 일단 등록시키는 것만 급급하여, 발명의 기술적 내용에만 충실하게 청구항을 작성하되 구체적인 청구범위는 대리인에게 맡겨 뒀다. 

윤변호사가 설명하는 침해 입증, 간접 침해, 독립항과 종속항의 개수 등과 같이 특허 등록 이후 활용 측면에 대해서는 실무적으로 전혀 고려한 바가 없었다. 

핑계 같긴 하지만, 나 조차도 회사 특허를 관리하면서 회사 내에서는 물론 외부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배운 기억이 없다. 

이렇게 소송을 직접 경험해 보니 비로소 차곡차곡 등록시켰던 특허들이 어떻게 활용되는 건지 하나씩 알아가는 느낌이다.


제품개발실에서 발굴한 특허 4건 이외에 나머지 등록 특허 76건에 대해서도 이틀에 거쳐 북극해 변리사들과 공동으로 재검토를 했으나, 추가로 침해를 주장할 특허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제품개발팀에서 기술적으로 제대로 검토한 셈이었다. 

나름대로 약점은 있었나, 발굴된 우리 회사의 미국 등록 특허 4건의 검토결과와 침해증거를 미국 로펌 변호사들의 검토를 위해 CP&L로 보내고, 나와 북극해의 김변호사가 4건의 대한 선행기술 조사를 진행하기로 하고 이틀에 걸친 특허발굴 회의를 마쳤다. 


몇 번에 걸친 CP&L 과의 컨퍼런스 콜, 선행기술 조사 및 검토결과 전달,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설명과 기술자료 전달 등의 과정이 북극해 윤변호사와 김변리사의 도움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CP&L의견도 제조방법과 소프트웨어 관련 건을 제외한 나머지 2건으로만 counterclaim을 제기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관련 내용을 보고 하고 답변서 제출시 우리 회사 특허 2건으로 반소를 제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CP&L로 B사 제품의 침해 증거가 되는 사진과 측정된 회로 파형 등을 송부하는 것으로 우리 회사 특허 2건에 대한 counterclaim 준비를 마쳤다. 


며칠이 지나 답변서 제출 기한 마지막 날에 준비한 반소장을 준비하여 B사 소장에 대한 답변서와 함께 제출한 후 본사 기획팀과 논의하여 언론 대응 문구도 배포하였다.

우여곡절 끝이 B사 제품의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우리 회사의 미국 특허 2건을 발굴하여 반소까지 제기하였다는 것은 큰 수확이었다. 

특히, 제품개발팀 엔지니어들의 노력과 북극해 변호사, 변리사들의 협력이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반소장을 제출한 날 저녁, 이수석을 포함한 제품개발팀 엔지니어들과 처음으로 회식을 가졌다.

함께 고생한 엔지니어들과 소주 잔을 기울이면서 그간 맘 고생했던 속마음을 풀어놓으니 타부서지만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았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가면서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뭔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을 꺼내서 민혁이한테 문자를 보냈다. 

"고맙다 친구야! 이번 일 잘끝나면 진하게 한잔 하자!"


Tip 12. 

Counterclaim 특허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상대방 제품에 대한 침해 입증이 가능할지 여부입니다.

침해 입증을 위한 상대방 제품의 BM이나 Reverse-Engineering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분쟁이 예견되는 경쟁사의 제품에 대해 미리 침해 입증 증거를 확보해 놓으면 소송이나 협상 시 유리한 포지션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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