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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06.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11 (특허발굴(1))

미국 로펌과 미팅한 다음날 오후에 제품개발팀과 회의를 진행했다. 

제품개발팀은 오전부터 어제 회의 결과를 반영하여 내부 회의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늘 타이트한 개발 일정을 맞추면서 일하는 조직이다 보니 소송에 대해서도 기민하게 잘 대응해준다. 


"어제 미팅 얘기 들었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또 늘었네요."

이수석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네 어제 미국 변호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회사 미국특허들과 B사 제품을 비교 분석해서 카운터 클레임 할 특허를 빨리 발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부탁드려야 할 일들이 계속 늘어나네요."

개발팀의 높은 업무 로드를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일임에도 불구하고 말하면서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다음 기종 개발과 사업부 기술지원 업무에 B사 특허 분석으로 로드가 엄청 걸려 있는 데 걱정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 지요, 회사의 명운이 걸린 일이니까요."

이수석이 긍정적으로 말해주니 고마웠다.


"우리 회사 미국 특허 리스트와 특허 원문은 제가 준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카운터 특허 발굴을 위해서는 B사 제품을 벤치 마킹해야 할 것 같은데 B사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TV와 PC들 중에서 많이 팔리는 몇 기종을 구매해서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미국 법인에 요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회의 전에 정리했던 체크 리스트를 보면서 말했다. 


"그럼 연구지원팀에서 업무 협조 공문을 미국법인으로 보내주세요, 

내가 바로 미국 법인 동기에게 전화해서 급한 건이니 빨리 추진해 달라고 할게요." 

이수석이 말했다.


회의를 마친 후 이수석과 논의한 대로, 간략하게 상황을 요약하고 B사 제품 중 미국 판매량이 많은 TV 제품 3종 각 2대, PC제품 3종 각 2대를 구매하여 본사로 보내 달라는 업무 협조 공문을 미국법인으로 보냈다. 


바로 이어서 우리 회사 미국특허 리스트와 원문을 정리를 시작했다. 소송이 발생한 이후로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당면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자니 고되기도 하지만 뭔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허 리스트 정리는 특허 정보조사 업체 DB를 활용하여 쉽게 엑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확인해보니 우리 회사의 미국 등록특허는 80건이었다. 

이 정도라도 등록 특허가 있으니, 운이 좋으면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특허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구원들이 보기 쉽도록 기술별로 분류하고 원문을 볼 수 있도록 링크를 걸어 제품개발팀으로 송부를 마치니 퇴근 시간이었다. 


사실 우리 회사의 특허 출원관리도 나의 업무이긴 했지만 체계적으로 관리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원들이 써오는 발명신고서를 특허사무소로 보내고, 명세서가 완성되면 발명자가 한번 읽어보고 오탈자 정도를 수정하여 출원하는 형편이었고, 미국을 포함한 해외출원은 전적으로 국내 특허사무소에 맡겨 놓고 비용과 현황 관리만 하는 수준이었다. 해외 대리인이 영어로 보내는 이메일은 거의 읽어보지도 않았다. 

한번은 특허사무소가 보낸 이메일에서 제안 내용이 기재된 첨부파일이 빠진 것도 모르고는 습관적으로 제안해 주신대로 진행하라고 답신을 보냈다가 서로 민망했던 기억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몇 년 전에 다른 중견 기업이 미국에서 소송이 걸려 수백억의 화해금을 내고 타결한 일이 있어, 연구소장의 주도하에 미국 출원을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80건이라도 등록 건을 보유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간략히만 살펴봐도 우리 회사의 미국 특허들은 명세서 페이지 수도 적고, 청구항도 10개 이내인 특허가 대부분이라 써먹을 만한 특허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별다른 공격 특허를 찾지 못한다면 그동안 특허 관리를 형식적으로만 해왔던 우리 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1-2건이라도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특허가 있어야 소송의 균형과 협상 포지션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변호사들의 말은 다시 생각해 봐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었다. 앞으로는 특허출원, 특히 미국출원 업무도 인력을 보강하여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우선 이번 위기를 잘 넘겨야 가능한 일이다. 

며칠 후 미국 법인에서 보낸 온 B사 제품들이 세관 보세창고에 들어와 있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B사 제품들은 연구개발용으로 들여왔기 때문에 관세 면제 혜택을 받았다. 

연구원 한 명과 같이 세관 보세창고로 가서 B사 제품을 인수했다. 회사에서 배차해 준 1톤 트럭에 제품들을 실어서 회사로 돌아왔다.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제품의 영수증과 라벨들은 사진으로 찍고, 연구원이 소송 제품인 디스플레이와 구동회로를 분해하는 과정들도 조심스럽게 사진에 담았다. 

회로 특허는 제품개발팀 회로설계 파트에서 분석하고, 패널 특허는 구조설계 파트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회사의 미국 등록 80건 중, 패널구조 관련은 50건, 회로 관련은 30건이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박책임이 회로 설계 파트장으로 이 분야 전문가이며 관련 특허도 여러 건 출원했다. 

"제가 제안한 특허 중에 괜찮은 발명이 있는데 B사에서 사용하면 좋겠네요." 

박책임이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도 기대 반 걱정 반인 심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미국 등록 특허가 80건 밖에 안되니, 해당 부서에서 모두 읽어보고, B사 제품과 비교할 수 있는 클레임차트를 작성하기로 했다. 일단 회사 자체적으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리뷰하여 침해주장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건을 발굴하고, 북극해의 김변리사와 같이 분석하기로 했다. 

그 후 침해주장 가능한 건이 선정되면 CP&L 변호사 들과 최종 협의를 하기로 했다.

"박책임님만 믿겠습니다. B사가 꼼짝못할 만한 특허 좀 찾아주세요."

내가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우리 회사가 기술력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아닙니까.

분명히 좋은 특허가 있을 겁니다"

박책임이 믿음직스러운 말투로 답변했다. 


Tip 11. 

Counterclaim특허를 발굴하여 반소하는 것은 소송의 균형과 협상 포지션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반소없이 일방적인 방어만으로는 협상에서 끌려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자사 특허 확보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경쟁사가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유효 특허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허의 양과 질을 모두 높일 수 있도록 체계적인 특허 관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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