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펌 미팅
미국 소송 대리인인 CP&L LLP의 파트너 변호사 Mr. Stoll이 Associate변호사 한 명과 같이 한국에 왔다. 소송 전반에 대한 협의라는 명목이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한국 회사가 자신들을 선임했으니 인사도 할 겸 우리 회사를 방문한 것이다.
대리인 선임의 일등공신인 북극해의 윤변호사도 함께 동행했다.
미팅은 중역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연구소장, 제품개발 팀장, 우리 팀장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참석했다.
간단한 인사와 명함 교환을 마친 후, 우리 회사 참석자와 외부 변호사들이 마주 앉았다.
"Good morning! Mr. Stoll. Thank you for visiting."
연구소장이 영어로 인사했다.
"Thank you for your hospitality and for choosing our law firm.
We will do our best to handle your case and help you achieve your goals."
Mr. Stoll이 웃으며 답했다.
통역은 북극해의 윤변호사가 맡았다.
우리 회사 참석자 중에는 해외 유학파인 연구소장 이외에는 영어가 짧았다.
나 역시 외국인과 영어로 대면 회의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라 대화를 알아들을 수나 있을지 긴장이 많이 됐다.
Mr. Stoll은 전반적인 미국소송 절차와 일정, 그리고 우리 사건에 참여 할 변호사들의 인적 사항 등을 준비해온 PPT장표를 활용해 설명했다.
텍사스 연방법원은 원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고 속행이 매우 빨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자기네 로펌은 이런 경험이 많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추가로, 자기네 로펌은 소송 관할지인 텍사스에도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어 Local firm을 별도로 선임할 필요가 없어 효율적으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으며, 텍사스 오피스에 근무하는 파트너 변호사가 담당 판사와 같은 교회를 다닌다고도 말했다.
말미에 우리 회사에게는 특별히 변호사비용을 10% 할인해 주겠으며 최대한 비용 효율적으로 사건을 관리할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판사랑 같은 교회면 좀 잘해주려나?
대리인을 선임했는데 Local Firm은 또 왜 선임한다는 거지?
그나저나 텍사스에는 아직도 카우보이가 있을까?
여러 의문이 들긴 했지만 대화를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힘들고 영어로 질문할 자신도 없어서 물어보지는 않았다.
Mr. Stoll이 천천히 말을 해서 대충 알아 듣기는 했으나, 소송절차가 복잡하고 처음 듣는 용어가 많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윤변호사가 중간중간 한국어로 통역을 했고, 전문용어가 나오면 Mr. Stoll의 양해를 받아 부연 설명을 했다.
윤변호사가 참석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Mr. Stoll은 UC계열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줄곧 특허 소송분야에서만 20여년을 종사한 50대의 백인 남성이었다.
특히, 우리 회사가 소송이 걸린 텍사스 연방법원 동부지원(EDTX)에서 특허 소송을 많이 경험했다.
백인 남성 특유의 낮게 깔린 저음의 목소리에 왠지 연륜과 신뢰감이 느껴졌고 참석자들과 일일이 눈빛을 맞추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니 마케팅에도 능력이 있어 보였다.
Mr. Stoll의 설명에 의하면, 소송 초기 단계에서 우리 회사가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1) 소장에 제시된 모든 사항에 대해 답변 내지 반대 주장을 하는 답변서 제출
2) 소송 균형과 협상 포지션 확보를 위해 우리 회사 특허를 발굴하여 Counterclaim 제기
3) 원고와 협의하여 소송절차와 기간 등의 소송 스케쥴 합의 및 이에 대한 법원의 허락
4) B사 소송특허 5건에 대한 무효소송(IPR) 준비
5) 증거개시(Discovery) 준비
답변서 제출, 스케쥴 합의 등과 같은 소송 절차에 관한 사항들은 미국 로펌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counterclaim을 제기할 특허 발굴과 상대방 특허에 대한 무효논리 발굴 등은 해당 기술을 제일 잘 아는 우리 회사에서 한국 로펌의 도움을 받아 논리와 전략을 수립 후 자신들과 협의해 나가는 것이 보다 비용 효율적 일 것이라는 조언도 해줬다.
또한, 한국에는 없는 제도인 증거개시(Discovery) 절차 대응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특히 한국 회사들이 대응에 어려움을 겪어 소송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최근의 사례들도 알려줬다.
Mr. Stoll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단계에서는 답변서 제출과 함께 반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counterclaim을 제기할 우리 회사 특허를 발굴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인 것 같다.
확인해보니 우리 회사도 나름 두자리수의 미국 등록 특허를 가지고 있는데도 방어에만 급급한 나머지 우리회사 특허로 역공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들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격언이 소송에도 적용되는지는 몰랐다.
나는 우리 회사 특허와 B사 제품을 분석하여 카운터 특허를 발굴하는 작업을 업무수첩에 기록하고 그 옆에 별표 3개를 표시해 두었다.
윤변호사의 도움으로 회의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이후 실시간 정보 교환과 의사 결정을 위한 서울-LA간 정례적인 컨퍼런스 콜은 시차를 감안해 서울시간 오전 9시에 하기로 했다.
어느덧 회의실에 걸린 벽시계가 5시를 지나고 있었다.
"모두 고생들 하셨습니다.
이만하고 식사하러 가시지요.
미국 변호사님들이 오신다고 해서 특별히 한정식 집으로 예약했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연구소장이 웃으며 말했다
반나절 이상을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회의를 진행하니 피곤이 몰려왔지만 멀리서 온 손님의 접대를 소흘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연구소장이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가서 참석자들이 저녁을 같이 했다.
연구소장은 자기가 미국 유학할 때의 에피소드와 신변잡기로 Mr. Stoll과 영어로 이야기했다.
연구소장의 영어는 유창하지는 않았으나 대화를 이어 가기에는 충분한 실력이었다.
연구소장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간단한 설명을 했으며, Mr. Stoll은 미숙한 한국어 발음으로 ‘마시써요’를 연발했다.
우림 팀장도 회의 시간에는 별다른 참여가 없었지만 식사 시간에는 특유의 친화성을 발휘하여 변호사들과 활발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얼핏 듣기에는 자신의 군대 시절 이야기를 풀고 있는 것 같은데 옆자리에 앉은 Associate 변호사가 접대성 웃음을 지으면서 팀장 말을 경청했다.
나는 말석에서 감히 대화에 끼어들 생각을 못하고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다.
내일부터는 꼭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식사 자리를 마쳤다.
Tip 10.
미국 특허소송 절차의 첫번째 대응은 소장에 대한 답변서(Answer) 제출입니다.
답변서를 통해 상대방이 소장에서 주장한 사항에 대해 인정(Admission)하거나 부정(Denial)할 수 있으며, 답변서(Answer)를 제출하지 않으면 특허 침해를 인정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자사 특허로 반소(Counterclaim)를 제기하고자 할 경우 답변서 제출과 함께 반소장을 제출하면 동일한 소송 절차에서 다뤄지므로 협상 진행 시 상호 균형을 맞추어 협상 타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