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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Sep 28.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9 (특허 분석)

특허 분석

B사가 소송을 제기한 특허는 총 5건으로 디스플레이 구조 2건, 회로 3건이었다. 

무엇보다 소송 특허의 권리범위와 침해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급했다.

연구소 제품개발팀에서 소송특허가 확인된 날부터 특허분석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품개발 단계에서도 특허분석을 했으나 형식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소송특허 5건 중 3건만 검토 기록이 있었다.

 

검토 결과에는 3건 모두 침해한다고 언급되어 있었으나, 후속 대응 항목에는 아무런 내용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소송특허 분석을 위한 1차 특허분석 워크숍이 시작됐다. 

우리 팀에서는 팀장과 나, 제품개발팀에서 제품개발팀장, 이수석 그리고 회로 전문가인 박책임 외 엔지니어 2명이 참석했고, 민혁이도 새빛전자와 정식 자문 계약을 체결한 북극해의 변리사로서 워크샵에 동석했다.

"제품개발팀에서 지금까지 진행한 특허분석 결과를 설명해 주시죠."

우리 팀장이 말했다 

"지금까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송 특허 5건 중 2건은 비침해를 주장해 볼 여지가 있으나, 나머지 3건은 우리회사 제품이 침해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수석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B사가 업계 선두업체라 좋은 특허가 많을 것으로는 생각했지만,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특허들은 우리 제품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선정한 특허인 것 같습니다." 

박책임도 한마디 했다. 

"하지만 B사 특허 내용을 살펴보면 교과서에도 나오는 아주 기본적인 내용들입니다. 이건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인데 이런 기술들도 특허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제품개발팀장이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공지기술이라면 특허가 될 수는 없겠죠.

다만, 특허가 해당 교과서 출판 이전에 이미 출원이 되었거나, 청구범위에 교과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추가적인 한정 사항이 기재되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각 특허별로 클레임 차트를 만들어 가면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민혁이가 개발팀장의 질문에 차분히 답변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경쟁사로부터 특허 클레임이나 소장을 받게 되면 제일 먼저 특허권자의 침해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청구범위 해석을 하여 권리범위를 결정하고 대상 제품과 비교하여 적용된 기술이 권리범위 안에 포함되는 지를 검토하여 침해 여부를 결정합니다."

민혁이가 전문가 답게 특허 분석 방법에 관해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보기에는 소송 특허 중 적어도 3건은 침해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책임이 특허 분석 후에 걱정이 많았는지 민혁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질문했다. 

"침해성에 대한 검토가 끝나면 선행자료 조사를 통해 해당 특허의 무효 가능성이 있을지 검토해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등록된 특허일지라도 특허성에 문제가 있을 경우 사후적으로 특허를 무효시킬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민혁이의 대답에 박책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침해가능성이 높고 무효 가능성도 낮을 경우에는 해당 제품의 회피설계(Design Around)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병행해서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민혁이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B2B 회사인지라 세트 업체의 승인이 없으면 확정된 제품 스펙의 변경은 쉽지 않습니다."


제품개발 팀장이 난색을 표하면서 말했다. 

"네 물론 판매 중인 제품의 스펙을 변경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침해 금지 판결을 받게 되면 해당 제품의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도 가정하고 회피설계와 같은 대응 방안을 마련해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물론 이번 소송에서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요."

민혁이의 말에 회의 참석자들의 얼굴이 일순간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제품 생산이 중단된다는 것은 제조업 회사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임이 분명하다. 

나 역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작업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제가 너무 어두운 측면을 말씀드렸나요?

새빛전자의 특허도 함께 검토하여 B사에 역으로 한방 먹일 수 있는 카운터 클레임 특허를 발굴할 수도 있으니까 시작부터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설명 드린 네가지 분석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소송으로 대응할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지를 결정하고, 세부 대응방안을 수립합니다. 

실무적인 경험에 의하면 어떠한 경우라도 경쟁사와 협상 채널을 유지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여기 까지가 특허분쟁 초기대응에 대한 총론입니다."

민혁이의 얘기를 듣고 나니 앞으로 해야 할 업무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그럼 오늘은 첫번째 회의이니 만큼 특허의 권리범위 해석방법과 침해여부 판단에 집중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민혁이가 쉬지 않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 했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가야할 길이 먼 것 같은데 조금 쉬었다 하시죠."

이수석이 과열된 열기를 식히고자 제안했다.


"커피 주문받겠습니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손들어주세요."

내가 잽싸게 커피 주문을 받아서 회의실로 날랐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스몰 토크가 이어졌다.



"변리사님은 보통 몇 시쯤 퇴근하시나요? 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이수석이 물었다. 

"맡고 있는 사건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중요한 특허 소송에 참여하고 있을 때는 한달 내내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일한적도 있었네요. 

그 때는 퇴근한다기 보다는 집에 잠깐 들린다는 생각으로 일 했네요 하하"

로펌의 업무 강도가 높다고 하더니 정말 생각 이상이다. 

워라벨이 강조되는 요즘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직장인 것 같다.

 

"그럼 다시 주제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확한 권리범위 해석을 위해서는 상세설명을 보지 않고 청구범위를 먼저 리뷰하여, 청구범위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후 명세서를 읽고 불명확한 부분을 보완하고, 출원포대(File Wrapper)를 검토하여 금반언(Estoppel)을 확인하여 1차 해석의 권리범위를 축소하고 불명확 부분을 재차 보완하는 단계로 진행이 됩니다.

하지만 특허 권리범위 해석은 관련 판례 조사와 법률적 리뷰가 필요한 고도의 전문적인 작업이므로 최종적인 권리 범위 해석은 변리사 또는 변호사와 상의하여 정해져야 합니다. 

절대로 연구원 스스로 판단하여 권리범위를 확정하거나 침해여부를 판단하여 특허분석 보고서에 ‘침해’한다는 의미의 단어를 기재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자료는 추후 소송에서 침해를 스스로 자인한 증거로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연구원들이 속으로 뜨끔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서로 속삭인다. 

나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해 알지 못하였으니 할말은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특허의 권리범위를 확정하고 자사 제품과 비교하는 침해확인 작업이 진행됩니다. 

이때 권리 범위가 명확하게 확정되기 어려운 부분은 최대한 넓게 해석될 때와 가장 좁게 해석될 때를 동시에 고려하여야 합니다.

제품과 비교할 때는 철저하게 청구항을 구성요소 단위로 쪼개서 구성요소 단위로 제품과 관련성을 점검해야 하며, 특허침해가 되기 위해서는 청구항의 모든 구성요소에 기재된 사항이 제품에 존재해야 하며, 만약 단 하나의 구성요소라도 청구범위에 기재된 사항과 다르면 비침해로 판단됩니다. 이것을 All Element Rule이라고 합니다." 


민혁이의 설명은 명쾌하고 논리적이어서 이해가 잘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 회사는 특허분석을 잘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적으로 진행하였고 그나마도 회사에 오히려 해가 될 자료만 잔뜩 만들어 놓은 것 아닌가 싶은 우려도 들었다. 


"오늘 설명을 듣고 나니 궁금한 부분이 많이 풀렸습니다.

진작 김변리사님 같은 분을 모시고 교육을 받았어야 했는데, 소송이 터지고야 챙기다니 늦은 감이 있습니다." 

우리 팀장이 겸연적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김변리사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반영하여 다시 분석해서 빠른 시일안에 2차 특허분석 워크샵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

제품개발팀장도 말했다. 

"네, 저도 함께 검토하면서 궁금한 부분은 문의드리록 하겠습니다. 회사분들도 필요하실 때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민혁이가 답했다. 


"사장님께서 관심과 염려가 크시니까, 오늘 정해진 후속 작업들은 최대한 빨리 진행하도록 하십니다." 

우리 팀장이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당부했다. 

2차 특허분석 워크샵은 미국의 소송 변호사와 협의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Tip 9. 

특허 명세서는 기술문서인 동시에 법률문서입니다. 때문에, 특허의 권리범위 판단은 기술적인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특허의 청구범위를 각 구성요소 별로 쪼개서 침해 제품의 해당 구성에 대응되는지 개별적으로 비교 분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특허 청구항의 각 구성요소와 제품을 매칭하여 비교하는 표를 클레임 차트(Claim Chart)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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