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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Sep 27.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8(소송대리인 선임)

소송대리인

소송 대응전략에 대한 사장 보고를 마쳤으니, 이제는 특허소송을 대리할 로펌 선임이 급선무였다. 우리 회사는 미국은 고사하고 한국에서도 특허 소송 경험이 없었던 지라 특허 소송을 대리할 수 있는 미국 로펌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사내에는 없는 것 같다. 


믿을 곳은 북극해 밖에 없었기에 사장 보고 다음날에 바로 북극해와 미팅 일정을 잡았다. 

미팅에는 팀장과 함께 참석하기로 하였다.


북극해는 테헤란로가 내려다 보이는 강남 한복판의 고층 빌딩에 위치해 있었다. 

큰 로펌을 방문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급 가구들에 내심 감탄하면서 로펌 내부를 둘러보았다. 

팀장이 리셉션 데스크에 새빛전자에서 왔다고 얘기하니 데스크 직원이 준비된 회의실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잠시 후 윤변호사와 민혁이가 웃으면서 회의실로 들어왔다.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이제서야 인사드리네요. 

새빛전자의 김지훈 팀장입니다. 

장대리가 많은 도움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팀장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저도 장대리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윤찬 변호사고 여기는 김민혁 변리사입니다."

윤변호사와 민혁이가 팀장에게 공손히 명함을 건네면서 인사했다. 

"어제 사장님 보고는 잘 마치셨나요?" 

"네, 많이 도와주셔서 첫 보고는 잘 마쳤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윤변호사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나는 이어서 오늘 방문 목적은 미국 소송 대리를 할 미국 로펌 선임과 앞으로 소송진행을 위해서 우리회사가 준비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우선 미국 로펌을 선임하는 것이 빨리 진행되어야 합니다. 

소장(Complaint)에 대한 답변서(Answer)도 제출해야 하고, 특허소송 전반에 걸친 전략을 수립해서 단계별로 대응해야 하니까요. 

혹시 어디 염두에 두고 계신 미국 로펌이 있나요?" 

윤변호사가 물었다. 


"저희 회사는 미국 소송이 처음이라 경험도 없고 정보도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윤변호사님께서 추천해주시면 내부적으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우리 팀장이 솔직하게 회사 사정을 얘기했다. 


"제 생각으로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근무했던 CP&L LLP가 어떨까 합니다. 파트너 변호사 중에 특허소송 경험이 많은 분도 계시고 규모도 적당하여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할 것 같습니다. 또한, 소송 관할지(Venue)인 텍사스 주에도 오피스가 있으니 여러모로 좋을 것 같습니다."

윤변호사가 역시 평소처럼 시원스레 추천 로펌을 제안했다. 


"원래 미국 로펌을 선임할 때는 복수의 후보 로펌을 선정하여 제안서를 받은 후, 필요시 방문도 하고 장단점을 살펴 최적의 로펌을 선임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그런데 새빛전자는 현재 그럴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믿을 수 있는 로펌을 추천받아 선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

윤 변호사 우리 반응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여담으로, 로펌을 선정하는 이런 과정이 꼭 미인 대회에서 우승자를 고르는 절차와 비슷하다고 해서 저희 업계에서는 로펌 선임을 위한 절차를 Beauty Contest라고도 부릅니다. 

한국으로 치면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쯤 되겠네요 하하하"

윤변호사가 트랜드에 맞지 않는 농담을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여사원이 미팅에 참석하지 않아 다행이다. 


"말씀하신 대로 CP&L 로펌이 소송을 맡기기에 적절할 것 같습니다. 

세부 정보를 좀 더 알려주시면 내부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팀장이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네 물론입니다.

CP&L LLP는 메인 오피스가 LA에 있어서 한국과 근무시간도 겹치고, 구성원 중에 한국계 변호사도 있으니 여러모로 편리하실 겁니다. 

저희 북극해 와도 업무 제휴 관계에 있어, 제가 중간에서 도와 드리기도 수월 할 것 같고요."

윤변호사가 마지막으로CP&L 로펌의 장점을 한 번 더 어필했다.


"그럼, 윤변호사님께서 CP&L에 연락하셔서 우리 케이스를 맡을 수 있는 지 확인해주시고, CP&L의 정보와 수가 등을 알려주시면 보고하고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팀장이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윤변호사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B사 특허 분석과 관련해서는 김변리사가 도와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팀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네요 당장 특허 분석이 시급하다고 하니 북극해도 함께 선임하도록 하죠"

팀장이 시원스레 답변했다.

"중요한 사건 맡겨주셔서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민혁이가 과장스러운 말투로 답변했다.


회의를 마친 뒤 이틀 후에 윤변호사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CP&L에 확인한 결과, Conflict of interest가 없어서 우리 회사 케이스를 맡을 수 있으며, 디스플레이 기술을 잘 아는 변호사도 있어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 한다. 

통화 후, 윤변호사는 이메일로 관련 정보들을 보내왔다. 

관련 정보를 정리하여 바로 팀장에게 보고했다. 

"장대리, 수고 많았어요. 

간단히 보고서 준비해서 회의 소집합시다."


회의에는 나와 팀장, 연구소장 그리고 본사 기획팀장이 참석했다. 


"보고서 살펴봤는데 CP&L LLP는 규모가 너무 작은 것 아닙니까?

변호사 수도 많지 않고 미국 현지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로펌은 아니라고 하던데요."

본사 기획팀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특허 소송을 전문으로하는 펌이니만큼 소송에 대한 대응 능력이 좋고 다른 미국 빅 펌들에 비해서 수가도 합리적이라고 합니다.

해당 기술 분야를 전공한 박사 출신 변호사들도 두고 있어서 기술 이해도도 높을 것 같습니다."

우리 팀장이 윤변호사에게 들은 내용을 토대로 능숙하게 답변했다. 


"뭐니뭐니 해도 로펌은 이름값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우리 회사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작은 로펌을 선임합니까?

막말로 소송에 패소라도 한다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요?"

기획팀장이 뭐가 맘에 안드는지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물론 큰 로펌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나 인력은 풍부하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우리 회사처럼 소송 경험이 없는 회사가 미국의 큰 로펌을 고용한다고 이를 100% 활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때문에, 규모는 작지만 우리 회사 얘기를 잘 들어줄 수 있고 다른 특허 소송에서도 성과가 좋았던 CP&L 로펌을 선임하고, CP&L로펌과 제휴관계 있는 북극해도 같이 선임해서 활용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팀장이 왠일인지 기세를 굽히지 않고 차분하게 반박했다.


"거 자꾸 비용, 비용하는데 …. 비용이 얼마나 든다고 그래요?

우리 회사 매출이 얼만데 변호사 비용을 아까워 합니까?"

기획팀장은 평소 예스맨이던 우리 팀장이 자기 의견을 반박하는데 빈정이 상한 눈치이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최종 판결까지 소송이 진행된다면 빅 로펌의 경우 로펌 비용만 $7M~$10M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옆에서 우리 팀장을 거들었다.


"네 $10M이요? 무슨 로펌 비용이 그렇게나…"

기획팀장은 비용이 자기 예상보다 훨씬 높은데서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자자 … 이번 건은 시간도 촉박하고 연구지원팀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으니 연구지원팀장의 의견대로 가는게 어떨까요?"

회의를 잠자코 듣고 있던 연구소장이 우리 팀장의 편을 들어주었다. 

지금까지 우리 팀의 대응 과정이 매끄러웠던 점이 작용한 것 같다.


기획팀장이 떨떠름하게 마지못해 동의하면서 일이 잘못되면 연구지원팀에서 책임지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 팀장은 빙긋 웃으면서 이러다 옷 벗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쉽게 진행되리라 생각되었던 회의에서 예상치 못한 반발에 부딪혀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우리 팀장의 조율 하에 계획했던 데로 회의를 마칠 수 있어 안도했다. 

항상 자기 자리에서 신문만 보던 내가 알던 팀장이 맞나 싶으면서도 점점 팀장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 시간도 촉박하고 연구지원팀이 잘 알아봤다고 하니, 이번에는 CP&L이라는 미국 로펌을 쓰도록 합시다. 사장님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이번 기회에 공부를 철저히 해서 소송을 대응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합시다." 

연구소장이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날 오후 CP&L과 북극해의 선임 품의가 일사천리로 사장님까지 결제되었다.

Tip 8. 

미국 로펌 선임시에는 로펌의 전문가 현황 및 경험, 위치,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사내 경험이 많지 않을 경우 미국 로펌의 효율적 활용을 위하여 국내 로펌이나 컨설팅 업체를를 동시에 선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미국 로펌 선임시 로펌이 다른 경쟁사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등 회사와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소송 관할지의 소송경험과 해당 기술을 이해하는 변호사 근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국계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으면 커뮤니케이션이 편리합니다. 마음이 급하다고 무조건 규모가 크고 이름이 알려진 Big firm을 고용하는 것은 비용대비 활용도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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