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보고
월요일 오전에 준비된 보고서에 대한 사장님 보고 전 실무진 간의 사전 리뷰가 있었다.
지난번 대책회의때 모였던 연구소장외 대응 TF 인력과 영업팀장이 참석했다.
연구소장이 말했다.
"연구지원팀에서 보고서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대응 TF 인원이 모두 참석하였으니 연구지원팀에서 설명해 주세요."
우리 팀장이 보고서 내용을 설명했다.
마지막에 포맷팅에만 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 내용을 잘 숙지하여 부드럽게 설명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오랜 직장 생활의 내공이 느껴졌다.
보고서 매 페이지 우측 상단에는 북극해 윤변호사가 조언한 대로 'Privileged & Confidential: Attorney-Client Communication'이라는 머리글을 표기하였으며, 자료 공유시 북극해 윤변호사에게도 CC하였다.
앞으로 소송과 관련된 모든 문서는 미국 소송 절차 상 디스커버리 대상이 되어 법원에 제출될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한 자료에는 꼭 이러한 프로세스를 따라야 한다고 윤변호사가 거듭 강조했기 때문이다.
팀장이 발표를 마치자 연구소장이 자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질문 있는 분 있나요?"
"전반적으로 내용은 잘 작성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고서 내용을 보면 우리 회사의 특허력이 B사 대비 아주 약한 것으로 평가되었는 데, 어떤 기준으로 그렇다는 건가요?
물론 우리 회사가 후발업체이긴 하지만 기술력만 놓고보면 B사에도 그렇게 뒤쳐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
연구개발팀장도 B사가 자타가 공인하는 업계 최고기술 보유기업이니만큼 우리 회사의 특허력이나 기술력
이 B사 대비 열세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테지만, 자리가 자리이니 만큼 보고서의 특허력 평가 항목이 자칫 회사의 R&D 역량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보고서의 특허력 평가는 일단 특허 개수와 같은 정량적인 부분만을 고려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B사는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서 자국인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과 같은 주요 국가에도 많은 특허를 등록받은 상태입니다.
우리 회사는 출원한 특허 개수도 많지 않고 더구나 한국 특허가 대부분인 실정이라 특허력의 정량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B사에 많이 뒤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가 연구개발팀장의 눈치를 보면서 차분히 답변했다.
"물론 특허력과 기술력은 별도이기 때문에 특허력이 약하다고 기술력이 약하다는 소리는 전혀 아닙니다.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부분은 각주로 기재하여 두겠습니다."
우리 팀장이 연구개발팀장의 체면을 살리고자 한마디 덧붙였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연구개발팀이 내심 안도하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언론과 고객사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한 꼭지 넣는 것이 좋지 않을 까요?
특히 고객사 측에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본사 기획팀장이 말했다.
"네,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언론과 고객사 대응 부분도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고서에 포함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팀장이 역시 기획팀장의 심기를 살피며 말했다.
몇몇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 후, 연구소장이 마무리를 했다.
"오후에는 비서실로 자료를 넘겨야 하니, 연구지원팀에서는 오늘 회의에서 토의된 내용을 보고서에 반영하여 보완해 주세요.
그리고 연구지원 팀장님께서는 보고 준비 철저하게 하시고 사장님 예상 Q&A도 준비해 보세요. 어떤 질문을 하실 지 모르니까요.
팀장들은 내일 회의 전에 내방에서 차 한잔하십시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연구소장이 자리를 일어섰다
회의 후, 점심도 거르면서 보고서를 보완하고 있는데 서무 직원이 슬쩍 샌드위치를 건네줬다.
"대리님 요새 너무 바빠 보이세요. 뭐라도 드시면서 하세요."
"민영씨 고마워요. 잘 먹을께요."
민영씨는 계약직 직원이지만 센스가 좋고 일처리가 빨라서 사내 평가가 아주 좋다.
게다가 직원들을 챙기는 마음까지 훌륭해서 다음 계약에서는 꼭 정직원으로 채용되기를 모두들 바라고 있다.
물론 나도 같은 마음이다.
점심 시간이 지난 후 보고서를 완성해서 비서실로 송부했다.
비서실에서 정해준 데드라인을 가까스로 맞춘 것이다.
완성된 보고서에는 언론 및 고객사 대응방안에 대한 장표가 추가되어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수정되었다.
1. 현 상황 분석 (소송이유, 양사 특허력 분석, Risk 분석),
2. 특허소송 대응방안,
3. 협상 대응 전략,
4. 언론 및 고객사 대응방안,
5. 대응 TF 구성안
이날 저녁 늦게까지 보고를 위한 리허설이 진행되고 예상 Q&A도 작성되었다.
보고는 팀장이 하고 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업무 분담이 되었다.
드디어 보고 당일 나는 화요일 오전 6시에 출근했다.
사장 보고가 진행될 대회의실의 프로젝터, 마이크, 음료수 등을 사전 점검했다.
총무팀 동기와 사장 비서도 일찍 나와서 회의실 준비를 도와주었다.
6시 50분 중역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하고 7시 정각에 사장님이 자리에 앉았다.
우리 팀장이 긴장된 모습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어제 저녁까지 리허설을 준비한 덕인지 보고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업계 선두 업체인 B사가 우리 회사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은 우리 회사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회사가 한층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이번 소송에 적극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팀장은 며칠전부터 준비해둔 것 같은 에지있는 결론으로 보고를 마쳤다.
우리 팀장의 보고 후, 사장님이 입을 열었다.
"관련 부서들과는 사전에 조율되고 협의가 된 것이지요?"
"네, 대응 TF 구성 인원들 및 관련 부서 팀장들이 중지를 모아 대응방안을 수립하였습니다."
연구소장이 답변했다.
"전문가들이 논의하여 대응방안을 수립했다고 하시니, 회사에서는 전적으로 믿고 지원하겠습니다.
특히, 연구소장께서 각별히 챙겨주세요.
그리고 연구지원 팀장이 얘기한 것처럼 이번 소송을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관련 부서가 합심해서 이번 위기도 돌파해 나갑시다."
사장님은 우리 팀장의 보고가 맘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당부했다.
"네, 알겠습니다."
모든 참석자들이 큰소리로 답했다.
보고 내내 잔뜩 긴장해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이제 첫 번째 고비는 잘 넘긴 것 같다.
회의실을 나오면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늘 저녁은 일찍 끝날 것 같아.
그래 맛있는 것 먹자 … 그럼 내가 분위기 좋은 일식집을 알아봤지 … "
Tip 7-1.
미국은 소송진행상 Discovery(증거개시) 단계를 두어 소송 당사자들에게 소송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강제하며, 미국 연방 민사소송 법규상 법원의 증거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법원은 상대방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거나 청구의 전부 또는 일부를 기각하는 등 소송에 불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자료 제출을 면책받을 수 있는 경우는 다음 3가지 경우이며, 관련된 자료는 문서에 표시하여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Privileged & Confidential: Attorney-Client Communication
Privileged & Confidential: Attorney Work Products
Privileged & Confidential: Settlement Discussion Purpose Only (Subject to FRE 408)
Tip 7-2.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 보고서는 기안자의 의도와 전략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하며, 보고時 자신감을 갖고 발표하는 것이 최고 경영진을 설득하는 최선의 열쇠입니다. 보고서는 두괄식으로 구성하고, 예상 질문을 사전에 선정하여 보고서 내용 이외에 준비해 두는 것이 경영진의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