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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Sep 20.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6 (전략 수립)

전략 수립

사장님 보고 일자가 확정되었다. 다음주 화요일 오전이었다. 

정확히는 오전 7시, 나에게는 꼭두새벽이나 마찬가지다.

사장쯤 되면 한시라도 빨리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 못 견디겠는 걸까?

우리 회사는 매주 화요일 아침에 ‘화요회’라는 이름으로 사장님 주관의 임원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주는 특허소송 대응 전략 보고가 단독 안건으로 결정되었다고 팀장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해 주었다.

"장대리, 초안 준비 좀 부탁해. 그리고 주말에 같이 리뷰하자구, 월요일 오후까지는 비서실에 자료를 보내야 되니까."

"네" 

나는 무덤덤하게 답변했지만, 마땅치 않은 내심의 감정이 답변에 묻어 나왔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3일안에 사장님께 보고할 특허소송 대응 전략 초안을 작성해야 하다니 걱정이 앞선다

믿을 데라고는 북극해의 친구 민혁이와 윤변호사 밖에 없었다.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고 우는 소리를 했더니, 참고할 만한 여러가지 자료와 사이트를 알려주고 보고서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도 성의있게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어렴풋이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이다.

수임 계약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더군다나 사내 보고서를 외부 로펌에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니,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일단, 다음주 사장님 보고를 마치고, 로펌 선임 및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돌파해야 할 숙제였다.


사흘째 연속 야근을 하면서 보고서를 앞에 두고 끙끙거리고 있으니 팀장도 신경이 쓰이는 지, 내 자리로 찾아와서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제품별 매출 자료가 필요한데 영업팀에서 취합에 시간이 좀 걸린다는데요."

"그래 알았어 내가 연락해볼께"


팀장이 영업팀에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지 한두시간이 지나자 필요한 매출 자료가 나에게 전달되었다. 

역시 팀장도 아무나 시켜주는 건 아닌 모양이라고 내심 감탄하고 있으니, 팀장은 이제 자기는 할 일 다했으니 먼저 퇴근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며 쿨하게 퇴근하면서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존경과 원망이 뒤섞인 감정으로 퇴근하는 팀장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민혁이와 윤변호사가 보내 준 자료와 관련 사이트를 밤새도록 읽고 뒤졌다. 

많은 도움이 되었고, 나도 공부가 되었다. 우선 보고서의 윤곽과 포함해야 할 핵심 내용을 정해야 했다. 

어떠한 사안이든 사장님을 포함한 경영진에 대한 최초 보고가 향후 진행 과정에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당해보는 특허소송 그것도 미국에서. 사장님을 포함한 경영진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안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세부적이거나 법률적인 사안보다는, 큰 틀에서 특허 소송의 이유를 분석하고 소송과 협상을 투 트랙으로 대응하는 방안과 대략적인 일정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서의 방향으로 잡았다. 


법률 전문가가 없는 우리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어렵고 복잡한 법률적인 내용을 설명해봐야 크게 도움이 될 것도 없어 보였다. 


보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1. 현 상황 분석 (소송이유, 양사 특허력 분석, Risk 분석),

2. 특허소송 대응방안, 

3. 협상 대응 전략, 그리고 대응 TF 구성안이 포함되었다.





금요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보고서 초안이 완성되었다. 


팀장에게 전화했다. 

"보고서 초안이 완성되었는 데요."

"그래 고생했어, 장대리! 보고서는 메일로 보내요. 나도 보고 낼 오전에 같이 리뷰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퇴근하면서 여자친구에게 전화했다. 


"수정아? 어디야?"

"몰라 오빠는 어딘데?"

"난 이제 퇴근하지"

"이러다 임원되시겠어 … 곧 이직하신다더니 아주 회사에 뼈를 묻으시겠네"


피곤에 쳐져 있었지만 여자친구의 토라진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정신이 들었다. 


"아니 요새 회사 사정이 좀 그렇잖아 …"

"뭐가 그런데?"

"아니 회사가 특허 소송이 걸려서…"

"소송? 그런데 왜 오빠가 바뻐? 소송이 걸렸으면 변호사를 찾아야지 … 

오빠가 변호사야?"


그러게 왜 내가 바쁜걸까?

여자친구의 논리에 반박할 수가 없어서 한참을 시달리다가 겨우 전화를 끊었다.

여자친구는 초등학교 선생이라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은 편이다. 

최근 회사일 때문에 통 만나지를 못했더니 단단히 화가나 있는 것 같다.

이번엔 무슨 이벤트로 기분을 풀어줘야 하나 고민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토요일은 조금 늦게 일어나, 회사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팀장은 회의실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어이, 장대리! 보고서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

팀장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요 뭐. 

보고서는 살펴보셨나요?" 


"아침에 읽어 봤는데 내 생각에는 전반적으로 잘 된 것 같아.

다만, 사장님께 보고하는 것이니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기 좋게 조금만 수정하면 좋겠어.

여기 이 부분은 폰트를 조금 키우고 색깔도 좀 구별되는 색으로 바꾸는 게 좋겠어

그리고 이 그래프는 …."


팀장은 보고서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예상했던 대로 포맷팅에 대한 지적들이 한참을 이어졌다. 

사흘동안 야근하며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내용을 보완하거나 추가 아이디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수정하라니 … 이 급박한 상황에 내용이 중요하지 보고서를 꾸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볼멘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장대리, 보고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우선 형식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야. 수고스럽겠지만 내가 말한대로 포맷팅을 바꿔서 월요일 아침까지 마무리하자고"

팀장은 오후에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나갔다. 

나는 팀장의 코멘트를 반영하여 보고서를 수정하느라 주말 내내 파워포인트와 씨름했다. 


완성된 보고서는 스스로 보기에도 뭔가 그럴 듯 해보여서 뿌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래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Tip 6. 특허소송 피소 시, 최초 경영진 보고서는 향후 실무적인 진행에 매우 중요합니다. 경영진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전사적인 지원을 받기 위한 첫 단계입니다. 

큰 틀에서 현 상황과 소송을 조망하고 상황분석(소송 이유, 양사 특허력 분석, Risk 분석), 소송 대응방안, 협상 대응전략 그리고 경영진의 의사결정 및 지원사항을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실무적이거나 지엽적인 내용은 배제하는 것이 최고위층 임원진의 이해와 지원을 얻기에 용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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