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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Sep 16.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5(실무진 회의)

실무진 회의


어제 늦게까지 작업한 여파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

여느 때와 같이 팀장은 일찍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지금 시대에 여전히 종이 신문이라니 좀 구닥다리 같긴 하지만 그 한결 같이 모습이 묘한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아침에 팀장이 신문을 보지 않고 있으면 뭔가 문제가 생긴 거다.


내가 가볍게 인사를 했더니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그래, 어제 미팅은 잘했나요?" 

팀장이 물었다.


"네, 대략적으로 듣기는 했는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나는 밤새 정리한 내용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일단 소송을 대응할 로펌을 선임하고 종합적인 소송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략 수립과 업무분장을 위한 실무자 미팅을 바로 소집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내가 도와 줄일 있으면 뭐든지 말하세요." 

팀장이 말했다. 

자리 보존이 최우선인 팀장으로서도 어떻게든 이번 위기를 잘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일 테니 빈말로 하는 소리는 아닐거다.


대응 TF 실무자 미팅이 오후에 소집되었다. 

우리 팀에서는 나, 제품개발팀에서는 이수석과 박책임, 본사 기획팀에서는 최과장이 참석했다. 


실무적으로 빨리 진행되어야 했기에 팀장들은 제외하고 핵심 실무진들만 소집했다.

경험상 팀장들이 껴 있으면 회의 시간 대부분을 기싸움과 업무 분장에만 소모하는 일이 다반사다.

제품개발팀 이수석은 고참 부장으로 우리 회사의 디스플레이 제품 개발 전반에 경험이 많고 무던한 성격이라 같이 일하기 편하다. 

같은 팀 박책임은 회로 전문가로 성격은 까칠하나 실력으로는 우리회사 최고다. 

연구소장이 직접 챙기는 업무이니 만큼 제품개발 팀장도 사안의 중요성을 느끼고 팀내 에이스들을 대응 TF에 참여시킨 것 같았다. 


본사 기획팀 최과장은 미국 MBA출신으로 정치적이긴 하나,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일처리가 빠른 사람이다. 

기획팀장이 최과장을 TF에 참여시키면서 사전에 지시사항을 단단히 일러 두었을 것이다. 


"선배님들 바쁘신 데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제일 막내지만 대응 TF의 간사이고, 이번 사건은 우리 팀이 총대를 매기로 했으니 만큼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동안의 경과와 어제 북극해 변호사들과의 미팅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회사가 큰 위기이군요. 저희는 뭘 하면 되나요?" 

제품개발팀 이수석이 물었다. 


"일단, B사가 소송에서 침해를 주장하는 특허에 대한 분석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소장에서 침해를 주장하는 특허가 총 5건입니다. 구조관련 2건, 회로관련 3건입니다. 제품 개발팀에서 소송 특허 5건에 대해 살펴 봐주세요." 


"제품 설계 단계에서 B사 특허는 대충 검토하였었는데, 그 때 본 특허인지 모르겠네요. 바로 검토에 착수할 게요." 

이수석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특허를 어떤 측면에서 검토하면 될까요?"

이수석 옆자리에 있는 박책임이 질문했다. 사내 에이스 답게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우선은 특허가 기술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검토해주세요. 후속 작업은 로펌을 선임하고 나서 변호사들과 다시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허 전문가 없이 특허의 법률적인 부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가급적 피해달라는 윤변호사의 조언이 떠올랐다.




"우리 회사가 요즘 해외시장에서 매출이 늘고 점유율이 늘어나니 B사에서 시비를 거는 거군요." 

기획팀 최과장이 말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영업팀에 물어보니 최근에 해외의 큰 입찰에서 B사가 우리 회사에 밀렸다고 하더라구요."

나는 영업팀 동기한테 들은 얘기를 전했다. 


"최과장님은 Litigation Hold Notice라는 것을 사장님 명의로 전사에 공지해주세요. 

어제 미국 변호사 이야기를 들으니 회사는 진행중인 소송이 있거나, 혹은 현재 소송의 위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 그 소송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보존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문서 Sample은 제가 바로 공유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윤변호사에게 배운 내용 대로 각 팀에 업무를 지시했다.


"저희 연구지원팀에서는 외부 변호사들과 상의하여 종합적인 소송대응 전략에 대한 초안을 만들어서 대응 TF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업무 분담이 어느정도 끝난 것 같아 나는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그래도 뭔가 주워들은 것이 있으니 회의 진행이 한결 편했지만, 지금 지식만가지고는 이 정도가 최선인 것 같다.


"장대리가 공부를 많이 했네. 앞으로 이 건은 장대리만 믿으면 되겠어."

사람 좋은 이수석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추겨 세워줬다.


"뭘요. 이수석님이 앞으로 많이 도와 주셔야죠."

"그래 기술적인 부분은 걱정하지마. 우리 팀에서 적극 지원할께"


화기애애하게 회의가 끝나가는데 갑자기 최과장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로펌은 따로 정해둔 곳이 있나요? 미국 소송이지만 국내 로펌에서도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아직 구체적으로는…"

내심 북극해와 윤변호사를 떠올렸지만 확정된 것이 아니라 말끝을 흐렸다. 


"로펌 선정 전에 우리 팀에 먼저 알려주세요. 저희 팀장님도 생각이 있으시답니다."

최과장이 미리 준비해둔 듯한 멘트를 말했다. 

아마도 기획팀장의 사전 지시사항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짧게 답변했다.



회의가 끝났다. TF의 간사이니만큼 부담이 컸는데 첫 회의는 나름 잘 끝난 것 같아서 조금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소송 대응전략 수립은 우리 팀에서 준비한다고 말은 뱉어 놨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케세라세라…"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내 자리로 돌아갔다.


Tip 5. 미국법상 회사는 진행중인 소송이 있거나, 혹은 현재 소송의 위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소송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보존할 의무가 있습니다. 


조치 의무가 발생되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사내에 Litigation Hold Notice를 보내야 합니다. 그에 따라 관련된 모든 정보는 회사의 정책에 따른 자료/문서 자동 파기의 대상에서 제외하여야 하며, 원래의 Electronic Form으로 계속 보존할 의무가 있습니다. 

선의의 노력을 다하여 litigation Hold 조치를 시행하지 않은 당사자에 대하여 법원은 소송상 제재조치를 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Default 패소 판결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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