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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Oct 25.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22 (회피설계)

회피설계

오후 워크샵이 시작되었다. 

"회피설계 진척 사항에 대하여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제품개발팀 이수석이 장표를 스크린에 띄웠다. 

"연구지원팀에서 회피설계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저희 팀 주관으로 연구소장님을 모시고 관련된 기술부서간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저희 팀을 포함한 기술부서들의 업무 로드와 우선 순위 등을 고려하여, 지난번 특허분석 워크숍에서 우리 회사와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던 패널 1번 특허와 회로 1번, 총 2건에 대한 회피설계안을 우선 마련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북극해 변호사님들의 자문에 따라, 청구항의 일부 구성요소를 변경하거나 없애는 방법과 선행특허에서 공개된 내용으로 실시하는 방법으로 회피설계안을 수립해 보았습니다.

그럼 수립된 회피설계 방안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이수석이 찬찬히 각 특허에 대한 회피 설계 방안을 설명하였다. 

제품개발팀으로서는 신제품의 개발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인데 개발이 완료되어 

판매 중인 상품을 다시 수정하라고 하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관련 팀들을 조율하여 짧은 시간에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한 것을 보면 이수석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설명드린 회피설계 안은 현제 제품에 적용 중인 기술에 대비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패널 1번 특허에 대한 회피 설계안은 원가가 올라가는 문제가 있고, 

회로 1번 특허에 대한 회피 설계안은 제품의 성능이 다소 저하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본 회피설계 안을 우리 회사 경영진이나 Set 업체로부터 승인을 받는 것이 어려운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만, 연구지원팀 정과장님께서 잘 해결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수석이 웃으면서 발표를 마쳤지만, 말속에 뼈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이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것은 큰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수석님을 비롯한 제품개발팀 분들 모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피설계 이슈에서 총대를 매기로 한 정과장이 발언을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해주신 회피설계 안이 최적의 대안일까요?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제품에 적용된 기술에 비해 단점이 너무 큰 것으로 보입니다만…"


"뭐라고요?

B사 특허들을 회피하면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하시는 말입니까?

연구지원팀은 직접 제품 개발을 하지 않아서 실상을 모르는 것 같은데 이정도 대안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저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늘 사람좋은 모습만 보여주던 이수석이 정과장의 말에 참지 못하고 목소리가 올라가면서 회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나 역시 이번 소송 대응으로 인해 개발팀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알고 있어서 심정적으로는 이수석 말에 동감이 갔으나, 또 같은 팀인 정과장에게 반기를 들 수도 없어서 선뜻 중재를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보다 못해 북극해의 윤변호사가 나섰다. 

"오늘 이수석님이 발표하신 3건의 회피설계안을 도출하는 과정에 저도 참여해서 아는데, 이수석님 그리고 많은 엔지니어들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회피설계안을 확보해 놓으면 최악의 경우 소송에서 침해금지(Injunction)를 막을 수 있고, 협상에서도 강력한 BATNA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소송 대응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회사마다 내부 사정과 방침이 있기 때문에 실제 회피 설계안을 실제로 제품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은 소송 초기 단계이니 만큼 소송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리스크를 파악해서 

회피 설계안을 계속 발전시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네, 저도 윤변호사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얼른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윤변호사의 말에 동조했다. 

이수석과 정과장도 상기된 표정으로 마지못해 그렇게 정리하는 것으로 하고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윤변호사가 덕분에 언쟁이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이수석과 정과장은 회의가 끝난 후에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그 사이에서 덩달아 나도 불편했다.

다들 회의실에서 나간 후에 이수석이 정과장에게 말했다. 


"정과장, 옥상에서 담배나 한 대 피울까?"

"네 그러시지요."

나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혼자 자리로 돌아왔다.


퇴근길, 2월초의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Tip 22. 

회피설계(Design Around)안을 확보하면 패소시에도 침해금지 (Injunction) 판결을 막을 수 있으며, 협상에서도 상대방의 기대치를 낮추기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회피설계의 요령으로는 청구항의 일부 구성요소를 변경하거나 없애는 방법과 선행특허에서 공개된 내용으로 실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청구범위의 권리범위 해석이 달라지면 회피여부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균등론을 고려해여 권리범위를 널게 해석하여 회피 설계 안을 수립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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