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뒤늦게 촬영부 막내로 새로운 영화 인생을 시작한 김해인 씨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다.
그 성장은 커리어에서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삼인 가족이 된 우리 가족의 생계 그 자체였다.
한 촬영팀에 있으면 승진이 빠르지 않기 때문에 뒷 말을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촬영부를 옮겨 다녔다.
빈자리가 생기면 무엇이든 했다.
늘 영화만 하던 영화인 김해인 씨는 그 때부터 영화와 드라마, 가끔은 광고나 뮤직비디오까지 어디든 자리가 나는 곳이면 달려나가 촬영을 했다.
예술보다는 생계를 위하여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쭈굴거리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나의 성격이었고, 그건 김해인 씨의 성격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성격대로, 서로 결혼할 때 결심한 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이든 최선을 다 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무엇이든 했던 김해인 씨에게도 꼭 하나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있었다.
내 자식이 언제 보아도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
내가 잔고 0원의 통장을 위해 조용히 결혼반지를 팔며 가족과 일상을 지키는 동안, 김해인 씨 또한 프리랜서의 긴 창을 휘두르며 조용한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팀을 이루어 영화 촬영만 하던 영화인으로 살던 김해인 씨가 큰 맘을 먹고 드라마로 현장을 옮겨간 것이 딱 그때였다.
그 당시 그건 도전이었으며, 도발이기도 했다.
드라마 첫 회는 해외 촬영이라는 공식도 이 무렵 생겨났고 드라마 한 편의 시간도 50분에서 70분으로 늘어나서 일주일 동안 촬영해야 하는 분량이 넘쳐났다.
지금처럼 사전 제작이 아닌 거의 생방송에 가까운 상황이어서 일주일에 두 편씩을 미친 듯이 찍어냈다.
카봉(카메라 봉고)이라고 불리는 스타렉스에 한 번 올라타면 일주일이 지나도록 서울을 뱅글뱅글 돌면서 집에 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목욕탕에 붙은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카봉에 올라타면 뱅글뱅글..
그러다가 피곤에 쓰러질만하면 병원에 가서 영양제 한 병을 맞고 다시 카봉타고 뱅글뱅글 촬영장을 돌고 돌았다.
머리만 닿으면 숙면을 취할 정도의 잠대장인 나도 김해인씨를 기다리느라 잠을 푹 자 본 날이 별로 없었다.
가끔씩 갈아입을 옷을 들고 촬영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한 번은 홍대의 클럽에서 촬영을 하던 날, 꼬꼬마였던 첫째 아이 주희를 데리고 드라마 촬영장으로 김해인 씨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아이돌의 멤버가 주연인 드라마여서 현장은 후끈후끈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나는 유난히 많은 순간들 중 그날이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촬영 현장에서의 김해인 씨는 참 많이 성장했구나,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한 치의 의심 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표정으로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 표정은 한 사람의 개인으로써 참으로 부러운 표정이었다.
아이와 촬영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오랜만에 셋이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데 주희가 아빠에게 꼭 안겨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빠. 우리 집에 꼭 놀러 와!”
나도 김해인 씨도 코 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밸런타인데이에 드라마에 출연 중이던 아이돌 멤버가 챙겨준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김해인 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현장에 놀러 왔던 어린 주희에게 보낸 초콜릿이었겠지만 나는 괜스레 마음이 붕붕 들떠서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나 아이돌에게 초콜릿 받은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