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로 이사를 결정하며 나는 처음으로 ‘전세’로 집을 구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이사를 갈 때면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는 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집을 페인트 칠을 하고 벽에 그림을 걸며 공간에 나만의 색을 입혀 나의 집으로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전세 계약을 앞두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고양이는 키워도 되는지, 벽에 못을 박아도 되는지, 페인트를 칠해도 되는지, 작은 것 하나에도 집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도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이사에 맞춰 전학을 해야 했고, 특히 중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 주희의 재배정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날짜에 맞춰 계약금을 보내고 잔금을 계산하고, 이사 전에 집을 청소하거나 손볼 시간이 있는지도 하나하나 협의해야 했다.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고, 시간을 조율하는 일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이번 이사는 단순히 동네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 속 아련한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처음으로 ‘내 집이 아닌 곳’에 살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집은 내가 살던 집보다 훨씬 작았고, 내 나이보다 더 오래된 낡은 아파트였다.
전세로 이사를 결심했을 때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세 사는 거 괜찮겠어? 남의 집이잖아.”
그때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게 뭐 어때? 내가 사는 동안은 어디든 나 내 집이야. 그리고 내가 원하는 동네 어디든 가서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어쩐지 인생이 더 가볍게 느껴지기도 해.”
하지만 집주인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계약서에는 반려동물 금지라는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괜찮다는 말도 없었다.
‘먼저 물었다가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그렇다고 아무 말없이 데려왔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문자를 썼다가 다시 지우고, 또 썼다가 지웠다.
‘혹시 고양이를…’
라는 문장 앞에서 손가락이 자꾸 멈췄다.
집을 둘러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벽지는 낡았고,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낡은 갈색 샤시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고, 싱크대와 신발장 문짝은 삐걱거렸다. 고치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 집에 내가 언제까지 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 집은 내 집일까, 아닐까.
돈을 들여 손봐도 되는 걸까, 그냥 참고 살아야 하는 걸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집에 어디까지 마음을 써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사를 하고 나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다.
벽에 걸어두던 액자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고, 아이 방을 정리하다가도 “이거 바꿔도 될까…” 머뭇거렸다. 못 하나를 들었다 내려놓는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어느 날 둘째가 물었다.
“우리 여기 오래 살 거야?”
“글쎄, 엄마도 몰라.”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아, 나는 지금 누군가의 집에서 살고 있구나.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이 어쩌면 어디에도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