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여름의 얼굴
김 모루
뜀틀 앞 멈춰 선 두 다리처럼
감각마저 얼어붙은 시간 지나
먼지 덮인 눅진한 껍질을 문지르니
겨울이 흐물흐물, 때처럼 벗겨진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틈으로
고드름처럼 자라난 근심 하나
오후의 긴 그림자처럼 자라고
그리움에 화상 입은 마음이
무표정한 적막을 깨우며
괘종시계처럼 울어댄다
웃음을 잃은 채
슬픔을 노래한 겨울의 끝
냉랭했던 한낮의 모퉁이를 돌자
나는 어느새, 녹음의 품속
여름은
마음을 녹슬게 했던
상실의 또 하나의 얼굴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