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간에 의사소통을 할 때, 우리는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게 된다. 의사소통을 할 때는 '언어적인 부분'과 '비언어적인 부분'으로 나뉘게 된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통해 나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고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사적인 관계에서는 감정을 전달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아'다르고 '어'다르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냐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에 따른 내 모습이나 이미지에 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나아가 나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언어적 의사소통의 부분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방법 '말하기'이다. 그리고 '말하기'는 '듣기'와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이런 쌍방적 커뮤니케이션은 아니지만,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는 '쓰기' 와 '읽기' 영역이 있다.
보통 공식적인 자리거나 정보 및 중요한 의견을 전달할 때는 '읽기'와 '말하기'를 함께 활용하여 전달하며, 반대로 중요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 '듣기'와 함께 '쓰기'를 병행한다.
몸에 특별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많은 사람들이 '음성적 소통'을 이용한다. 그리고 '문서적 방법' 을 병행할 수 있다.
나는 '입'을 통해 음성적 소통을 통해 내 의견을 전달하는데 이상은 없었고, 쓰기와 읽기를 활용하는데 크게 이상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내가 원하고자 하는 바는 말하기를 통해 전달이 가능했고, 기억하고자 하는 바는 짧게 메모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원하고자 하는 바'는 정말 간단한 일차원적인 부분이다.) 한 나라에 태어나 한 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했다면, 의사소통을 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나도 '의사소통' 이라는 영역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이 구두적 의사소통 영역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그저 발표나 회의 등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긴장도가 급격히 증가하며 평소보다 더 말을 못 한다는 것, 또는 가끔 대화를 할 때 두서없이 말하게 되고, 듣기를 할 때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 부분들은 너무 어릴적부터 그랬던 부분들이기에, 그저 '나'라는 사람이었기에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는 일상적인 부분이었다. 가끔 이해 못 할 때면, 친구들도 '얘, 또 헛소리하네. 또 이해 못 했네.' 하고 웃으며 넘어갔다. 그래도 살아가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내가 '글' 이라는 부분, '시각적'인 부분의 의존도가 '청각적'인 부분보다 훨씬 크다라는 걸 느낀 첫 순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이다. 그때도 이 정도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자연스로운 부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나의 소중했던 인연과 멀어지고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 당시, 나는 나의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걸 힘들어했다. 그저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몰랐고, 스스로도 어떤 감정인지 잘 몰랐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말'로 속을 풀어보라 했다. 나는 그게 힘들었다. 어쩌면 그 조차도 나에겐 내 감정을 '말'로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던 거 같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일기장에 '글'로 나의 감정을 조금씩 풀어나갔다. 그리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나의 감정들을 다른 책,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 읽을 때 왠지 모르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 지금 이런 감정이 올라왔던 거구나.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곤 했다.
매일 일기를 적었던 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이전부터 힘들 때마다 아무 노트나 꺼내 나의 감정을 풀곤 했었다. 글을 쓸 땐 말을 해야 할 때와 달랐다.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시간의 압박을 주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으로 나만의 속도로 풀어 갈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내 힘들었던 감정을 풀기 위해 글쓰기를 활용하는 사람이구나 라는걸 알았던 때다. 그저 미래의 '나'에게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고, 또 과거의 '나'에게 잘 견뎌왔다고 위로와 격려의 말, 칭찬 한 마디를 해준다.
나는 '음성'을 이용한 소통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직접적으로 와닿은 순간은 2022년, 작년이다. 친구들과 소통할 때도 우스갯소리로 '주목공포증'이 있다며 무엇인가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당황해서 하려던 말도 못 하곤 했다. 공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랬다. 그저 횡설수설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런 '내'가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로의 한 걸음을 시작하면서 '강의'를 해야 할 기회들이 주어졌다. 강의는 일반 말하기 보다 내용들을 명확히 하고 상대방이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메세지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해야만 한다.
'강의'라는 부분에 새롭게 도전하게 된 작년. 나는 매 강의마다 열심히 준비해 갔다. 프리랜서로는 이제 막 시작한 갓난아기였다. 이 때도 나는 강의진행 전, PPT를 만들고 강의 대본을 썼다. 대본을 쓰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대본을 '말'로 전달하는 데는 버벅거리고 어려움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강의를 위해, 매번 혼자 동영상 몇 번씩 찍어보며 연습하고, 인형을 앞에 두고 연습해보기도 했다.
내 주변에는 '말'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시기에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는지? 막 생각이 그렇게 바로 떠오르는지? 갑자기 기억이 안나는 순간에는 어떻게 하는지? 이런 부분들을 물어보고 다녔다. 아무리 해도 제자리걸음인 듯 한 나의 '말하기'에 스스로가 답답함과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두 번 하고 나면 감이 잡힌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게 안될까? 강의는 매번 새로운 느낌이고 매번 긴장됐고 나는 사람들 눈을 못 맞췄다.
하지만 스스로는 답답해하는 이 순간에도 한 번, 두 번 연습을 하며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산 동구청에서 열리는 강의에도 설 기회가 주어졌다. 보통 프리랜서 3년 이상 경력자들에게도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한다. 나는 프리랜서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이 큰 자리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총 3일 각각 진행되었다. 두 번째 진행하던 날. 아직도 기억한다.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웃으며 죄송하다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시작했다. 이젠 당황했지만 다시 돌아갈 여유도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도 왜 나는 말할 때마다 긴장할까? 에 대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시기, 조금씩 성장한 나의 모습보다는 여전히 부족한 나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때, 내 친구 아모카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 말을 잘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설 기회가 많고 자연스럽게 늘어갈 환경에 놓여있는 거, 그건 거 같아. 지금 너도 충분히 많이 늘었고, 앞으로 더 잘하게 될 거야"
지금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생활 중이다. 바로 앞에서 나는 여전히 부족한 나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고 했다. 밴쿠버에서 '영어 말하기'를 공부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제로였던 나.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나의 부족함은 점점 더 많이 느껴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표현의 한계가 느껴졌다. 그리고 대화를 할 때 못 알아듣는 나를 보며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것보다 빨리, 더 많이 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생활하다 보면 애초에 한국어도 '듣기와 말하기' 부분을 잘 활용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영어'도 빨리, 더 잘 말하고 듣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나는 조금 힘든 게 사실이었고 사실이다. 자막 없는 영화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어도 말하기 듣기를 잘 못하면서, 영어는 드라마틱하게 늘기를 바라는 건 도둑 같은 심보였다.
어느 순간 문뜩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나는 여기 와서, 메모장을 항상 들고 다닌다. 그리고 메모장에 끄적이는 걸 좋아한다. 영어 공부해야지 하면서 거기에 영어로 감사일기를 적거나 하루 일정을 적어보곤 한다. 그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미있었다. 물론 문법은 하나도 맞지 않지만,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었다.
결국, 영어도 한글도 같았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더 집중하며 '말하기'환경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표현의 방법은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어 말하기와 듣기라는 음성적 소통. '나의 부족함'에 집중하여 조급해졌다면 나는 브런치스토리도 시작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엔 한글을 멀리하고 영어만 가까이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더해졌다. 메모장에 글을 쓰는 것보다는 내 휴대폰 음성녹음을 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어느 순간 점점 영어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조급함, 의무감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즐기며 노력하기로 했다. 필수적으로 영어 말하기 환경에 놓여있는 나. 자연스럽게 늘어갈 환경에 놓여있는 사실에 감사하고, '말하기'를 조금씩 즐기다 보면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 지금 내가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글쓰기'. 이 시간은 나의 힐링시간이다. 내 생각을 표현하고 나에 대해 알아차리는 이 시간이 행복하고 기다려진다. 글쓰기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는 것.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