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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Jun 27. 2023

영알못 물리치료사 워홀러의 구직활동기

밴쿠버 구직활동프로그램 참여방법 및 현지일자리 구하는 방법

나는 지금 염색체돌연변이아이를 케어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Nanny 로 일을 하지만 일반 정상발달을 한 아이와 다르기에 하는 일과 환경에도 조금은 차이가 난다. 일반 Nanny 가 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베이비시터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의 경우 장애아동이었기에 일반 Nanny의 업무보다는 '장애인활동보조사'의 업무에 더 가깝다.

좌 : Drake단기알바, 우: Nanny job

그리고 가끔 단기알바를 다니는 중이다. 에이전시를 통해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 시간, 업무에 대해서 전달받으면 가능한 날에 컨택하여 단기알바를 갈 수 있다. 단기알바의 경우, 내가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돈을 버는 경험을 했던 수단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줘 아직까지도 종종 시간이 나면 간다.


단기알바를 통해 처음 일하게 된 건, 2월 말. 캐나다에 오고 3주가 지났을 때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Nanny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건 4월이다. 단기알바를 가서도, Nanny로 일하는 가정에 가서도 나는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 영어 말하기는 물론, 듣기 조차 힘겨워하던 내가 어떻게 현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적응할 수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 하나씩 풀어가 보려 한다.


워킹홀리데이에 오는 사람들은 각각 다른 목적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경험을 위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여행을 위해, 영주권취득을 위해, 해외취업을 위해 등. 목적과 스스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워킹홀리데이 생활은 180도 달라진다. 나의 경우,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 영어를 배우고 싶은 부분이 가장 컸다. 여행도 물론 포함이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이곳과 지금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고 싶었다.  1년이라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당장 내가 벌 수 있는 '돈' 보다 훨씬 귀중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고, 천천히 나의 속도로 조금씩 나아가보기로 했다.


'영어 못 해도 다 돈은 번다더라, 생각보다 영어가 안 늘고 그대로래.' 캐나다로 오기 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워홀을 갈 수 있었다는 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겠지만, 어린 시절 나에겐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해'라고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차선에 탄 지금 현재. '워킹홀리데이비자' 라는 정말 소중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보고 싶었다.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한 나는 '밑져야 본전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라는 마인드로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히고 다녔다. 가장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한인커뮤니티 사이트를 이용한다던지, 유학원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많이 알아보진 않았지만, 그들이 제시해 주는 방법에는 뭔가 한정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발품 뛰기 시작했다.

MINI JOB FAIR

첫 번째로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들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관심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ESL 프로그램, 직업세미나, 레쥬메클리닉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말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두 번째로 Work BC 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고용센터 같은 곳에 들러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알아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Work BC 에 레쥬메 프린터, 컴퓨터 이용 및 레쥬메클리닉을 받으러 많이 간다. 나의 경우 전자문서작성 및 구직활동 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직원에게 가서 물어보곤 했다. 'BC주 내의 법'은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었기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직접 물어보았다. Work bc 에서 돌아온 답은 나의 비자로는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세미나를 추천해 주기도 했고, 다른 기관들을 추천해 주었다.

세 번째로  'MOSIAC' 에서 1:1 컨설팅 및 인터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Work BC 에서 추천받은 기관이었다. Work BC 에서는 나와 같은 짧은 기간의 워픈워크퍼밋비자를 받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1:1로 컨설팅 프로그램에 대해 알려주었다. MOSIAC 과 ISS of BC. 두 기관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Work BC 직원은 개인적으로 MOSIAC 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래서 MOSIAC 으로 왔다. 이곳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모른다. 한인커뮤니티에서 말해주는 방법도 아니고 유튜브나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없기 때문에 나처럼 발로 뛰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들었던 방법이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레쥬메 클리닉을 해주는데 다른 곳들과 차이가 있다면 내가 원하는 직업군과 관련 있는 프로그램들을 추천해 준다. 그리고 레쥬메클리닉도 다른 곳 보다 훨씬 정밀하고 세심하게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진행된 인터뷰 프로그램은 이후 Nanny Interview 하는 데 있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좌 : OFF 우 : 바리스타
Pastry
좌 : Foodsafe 우: customer service

마지막으로 ISS of BC 에서 진행하는 GTH (The Gateway To Tourism and Hospitality Program) 이다. 이 프로그램은 도서관에서 진행되었던 Mini job fair 에 참여하여 Resume clinic 을 받다가 추천받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나는 많은 구직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고, 지금도 참여하는 중이다. 우선 이 프로그램은 화상미팅을 통해 설명회를 열고, 이후 1:1 담당자를 만나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영어점수가 필요하다. 나는 영어실력은 꽝이지만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의해 '시험'은 익숙한 사람이었다. 영어시험에 응할 때 이 시험의 난이도가 평이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나에겐 어려웠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문제 풀기 스킬을 끌고 와 겨우 턱걸이로 합격하여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순간을 생각하며 아찔하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Barriers to employment, Customer Service Basics, Barista Level 1 , Baking , FOODSAFE Level 1, Pastry Fundamentals Level 1 , OFA Level 1 , Foundations of Workplace Safety, BSAFE – BC Safety Assured for Everyone 등 많은 프로그램들을 이수하여 이곳의 문화와 시스템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들은 모든 것이 영어로 진행되었기에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Baking, Pastry, barista 같은 영역의 경우 한국에서도 접해본 적 없는 부분이었기에 그 교육을 들으러 갔을 땐 정말 1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교육 시 받은 내용물을 읽어가며 옆에 함께 듣는 분들에게 물어가며 겨우 수업을 따라가곤 했다.


지금부터는 현재 일자리를 구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가 보려 한다.


캐나다에 도착 전에는 Sever 로 일을 시작하여 영어실력이 늘면 PTA(Physiotherapist assistant)로 이력서를 넣어봐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WES(World Education Services) 인증도 받아왔다. 나는 요리를 못 했기에 레스토랑에서 Server로 일을 하면 식사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에 Server를 더 고집한 이유도 있었다. 당장 일을 구할 생각은 없었지만, 한마디를 한번이라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we're hiring" 이라는 문구가 보이면 레쥬메를 주고, Indeed 어플을 통해 많은 곳을 지원했다. 또한, 레스토랑에 전화하여 사람을 구하는 중이냐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이 과정들 조차 나에겐 익숙하지 않아서 전화할 땐 대본을 써놓고 로봇이 읽듯이 말하고,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도 혼자 10번 정도 반복한 후 들어가서 말하곤 했다. 그리고 가끔 전화라도 오거나 인터뷰 오라는 말이 올 때면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생각 안 난다.

그렇게 초반엔 Server로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준비를 하곤 했다. GTH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나는 이 과정 자체가 나와 영어가 친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Server'로 취직하여 일을 하게 된다면 더 많은 말을 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후 PTA 로 일을 하게 된다면 캐나다의 물리치료와 재활시스템에 대해 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경험들은 나를 더 성장시켜 줄 거라 생각했고,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나의 플랜 B 였다. 나의 사촌동생은 캐나다에서 ECE(Early Childhood Education)로 일을 하고 있다. 나에게 아기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Nanny 를 해보는 게 어떻냐고 추천해 주었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일자리를 추천해 준 사촌동생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했기에, 사람들을 케어하는 일에는 익숙했다. 첫 병원에서 소아물리치료사로 근무한 이력도 있었고, 두 번째 병원이 신경계재활위주였지만 산재, 자동차보험 및 수술재활환자분들도 왔었기에 다양한 연령대를 케어하는데 경험이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일본 물리치료사친구 Rena 는 이곳에서 약 1년이 넘는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우리는 Caregiver 로 일을 할 수 있다며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내가 이곳에서 Caregiver와 Nanny 로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Server 만 고집하지 않고 플랜 B 였던 Nanny 와 Caregiver 로 일하는 것을 함께 알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촌동생에게서 추천받은 사이트와 MOSIAC 에서 추천받은 사이트에 나의 소개와 레쥬메를 업로드했고 많은 인터뷰를 다니며 지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사촌동생에게서 Nanny 일자리를 추천받은 건 정말 오래전부터였다. 그래서 이전부터 나의 소개와 레쥬메를 올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마 정말 간단히 이력만 올려놨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MOSIAC 에서 클리닉을 받은 후 깔끔하게 정리가 된 후엔 많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고 많은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봤다. 어떤 곳에서는 나중에 영어실력 늘면 다시 지원해 달라고 하며 중간에 인터뷰를 끊기도 했다. 또 한 곳에서는 서류 보내달라고 이메일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이후로 연락이 없기도 했다. 한 번은 우리나라로 치면 보이스피싱 회사 같은 이상한 곳에서 메일이 오기도 했다. 짧은 구직기간 내에 한국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중간에 캐나다 내니 사이트에서 한국인과 컨택이 되어 한국인 아이를 잠시 케어하기도 했다. 한인필라테스센터에서 일할 뻔한 기회도 있었다.

Physio clinic

현재 최종 일하고 있는 곳은 염색체돌연변이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네 가정이다. 캐나다에서는 단 4명만 동일 질병을 앓고 있는데, 이 아이를 케어하는 일을 하게 되어 나도 이 아이에게 나의 경험과 스킬을 살려 운동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PTA 를 하지 않아도 캐나다의 재활시스템을 볼 수 있는 환경과 동시에 영어가 늘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여기서는 요리를 잘하는 Hailey 네 아빠, Benson이 자주 맛난 음식을 해주기에 음식까지 해결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나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은 틀림없다. 이곳에서 얼마나 더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먼 훗날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시간이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기에 현재 일하고 있는 곳, Hailey 네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도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가? 나 왜 시작했지?라는 부분을 생각하고 처음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돈'이라는 것에 조급함을 느껴 보다 빨리 일자리를 구했다면 이들과의 만남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는 분들에게까지 조금이라도 용기를 전하고 싶다. 영어를 정말 못하던 내가 하나씩 해나가는 나의 경험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해외로 가고 싶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 간절히 원하는 그 소중한 마음으로 천천히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씩 해나간다면 어느 순간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자리로 와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Benson 이 해준 간식 및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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