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이완 가정에서 염색체돌연변이 아이를 케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족의 구성원은 아이의 엄마, 아빠, 첫째 Theo 그리고 내가 주로 케어하는 Hailey. 이렇게 4명이다.
첫째 Hailey 의 오빠인 Theo 는 정상발달을 한 아이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 나이. 한참 개구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때이다.
이 아이의 생활 패턴을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 못지않게 바빠 보인다. 물론 캐나다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라왔지만 Taiwanese canadians 이기에 2개 국어를 배우는 건 거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일반 학교 외에도 중국어학교를 다니며 그 외에도 주짓수 학원도 다니고 있다.
" Reina, Can you play with me? "
Theo 가 나를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Theo 와 내가 만날 수 있는 날도 드문 데다 보통 Theo 가 돌아오면 시간이 늦어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사실 놀아줄 시간도 얼마 없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Theo 부모님들은 집에서 항상 바쁘다. 보통 Hailey 를 항시 보고 있어야 하며, 그들의 일도 늦게 끝나 집에선 Theo 의 조부모님이 집으로 오는 날이 아니면 놀아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끔 주말, 학원에 가지 않는 날에 나에게 와 놀자고 "Can you paly with me?" 만 반복해서 몇 번을 말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와 놀 수 있는 날에는 Theo 부모님들도 나에게 가끔 Theo 와 놀아줄 수 있냐고 부탁하곤 한다. 내 입장에선 나의 꼬마 영어선생님 Theo 와 노는 것도 나쁘진 않다. 가끔 말이 너무 빨라 못 알아들을 때도 많지만 말이다. 이 친구와 놀 때면,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놀아본 적이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나도 Theo 와 같은 또래인 8살 아이가 되어 에어로켓 날리기, 물풍선 던지기, 슈퍼마리오게임, 축구, 탁구, 하키 등등 많은 놀이를 한다.
하지만 이 순간을 완전히 즐기기까지 나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저 내가 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에너지 넘치는 친구와 노는 것이 나도 힘들고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한 날 나는 문득 이 아이로부터 엄청난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Theo 는 매 순간 온전히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본 Theo 는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이다. 본인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릴 적 남자아이들은 총싸움 놀이를 좋아하고, 집에 장난감 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이 날도 어김없이 이 친구와 총싸움 놀이를 한 날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었지만 그때 Theo 는 자신의 기지라며 정말 열심히 자신의 장소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무너질 건데 왜 열심히 하지?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한 것 같다. 그리고 Theo 와 컵을 쌓아 총으로 맞추는 놀이도 했다. 그때도 나는 같은 생각을 했다. 쌓고 맞추고 쌓고 맞추고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은 풀장공으로 던지기 놀이를 했다. 나는 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라는 생각에 즐기는 척만 함께 해주며 함께 놀아줬던 것 같다. 나는 매 순간마다 그 순간을 즐기기보다 후에 '정리'에 포커스를 맞추며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말 행복하게 즐기는 Theo 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순간적으로 뇌리 꽂혔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매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며 놀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해야만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닌,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기.
과거,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시기.
사실 정리는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큰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 혼자서 정리하는 부분도 아니고 다 같이 하는 부분이었다.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현재를 집중하지 못했을까? Theo 와 놀아주는 이 순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랬다. 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하며 그 자리에서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꼬마영어선생님 Theo 와 놀며 영어뿐만 아니라 정말 소중한 부분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생각이 안 난다. 어른이 되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해야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있었고, 놀면서도 공부해야 하는데 라는 걱정들로 가득했던 과거. 그 과거들을 돌아보며 내가 현재에 집중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들로 조금씩 채워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것들, 미래를 그려가는 과정들이 행복한 부분들, 힘들고 걱정 가득한 부분들이 아닌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로 내 인생을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