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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Jul 02. 2023

어른이 되며 잊고 살았던 것,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

Reina, Can you play with me?

나는 타이완 가정에서 염색체돌연변이 아이를 케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족의 구성원은 아이의 엄마, 아빠, 첫째 Theo 그리고 내가 주로 케어하는 Hailey. 이렇게 4명이다.

첫째 Hailey 의 오빠인 Theo 는 정상발달을 한 아이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 나이. 한참 개구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때이다.

이 아이의 생활 패턴을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 못지않게 바빠 보인다. 물론 캐나다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라왔지만 Taiwanese canadians 이기에 2개 국어를 배우는 건 거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일반 학교 외에도 중국어학교를 다니며 그 외에도 주짓수 학원도 다니고 있다.


" Reina, Can you play with me? "


Theo 가 나를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Theo 와 내가 만날 수 있는 날도 드문 데다 보통 Theo 가 돌아오면 시간이 늦어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사실 놀아줄 시간도 얼마 없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Theo 부모님들은 집에서 항상 바쁘다. 보통 Hailey 를 항시 보고 있어야 하며, 그들의 일도 늦게 끝나 집에선 Theo 의 조부모님이 집으로 오는 날이 아니면 놀아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끔 주말, 학원에 가지 않는 날에 나에게 와 놀자고 "Can you paly with me?" 만 반복해서 몇 번을 말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와 놀 수 있는 날에는 Theo 부모님들도 나에게 가끔 Theo 와 놀아줄 수 있냐고 부탁하곤 한다. 내 입장에선 나의 꼬마 영어선생님 Theo 와 노는 것도 나쁘진 않다. 가끔 말이 너무 빨라 못 알아들을 때도 많지만 말이다. 이 친구와 놀 때면,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놀아본 적이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나도 Theo 와 같은 또래인 8살 아이가 되어 에어로켓 날리기, 물풍선 던지기, 슈퍼마리오게임, 축구, 탁구, 하키 등등 많은 놀이를 한다.

하지만 이 순간을 완전히 즐기기까지 나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저 내가 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에너지 넘치는 친구와 노는 것이 나도 힘들고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한 날 나는 문득 이 아이로부터 엄청난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Theo 는 매 순간 온전히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본 Theo 는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이다. 본인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릴 적 남자아이들은 총싸움 놀이를 좋아하고, 집에 장난감 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이 날도 어김없이 이 친구와 총싸움 놀이를 한 날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었지만 그때 Theo 는 자신의 기지라며 정말 열심히 자신의 장소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무너질 건데 왜 열심히 하지?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한 것 같다. 그리고 Theo 와 컵을 쌓아 총으로 맞추는 놀이도 했다. 그때도 나는 같은 생각을 했다. 쌓고 맞추고 쌓고 맞추고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은 풀장공으로 던지기 놀이를 했다. 나는 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라는 생각에 즐기는 척만 함께 해주며 함께 놀아줬던 것 같다. 나는 매 순간마다 그 순간을 즐기기보다 후에 '정리'에 포커스를 맞추며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말 행복하게 즐기는 Theo 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순간적으로 뇌리 꽂혔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매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며 놀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해야만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닌,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기.

과거,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시기.

사실 정리는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큰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 혼자서 정리하는 부분도 아니고 다 같이 하는 부분이었다.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현재를 집중하지 못했을까? Theo 와 놀아주는 이 순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랬다. 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하며 그 자리에서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꼬마영어선생님 Theo 와 놀며 영어뿐만 아니라 정말 소중한 부분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생각이 안 난다. 어른이 되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해야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있었고, 놀면서도 공부해야 하는데 라는 걱정들로 가득했던 과거. 그 과거들을 돌아보며 내가 현재에 집중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들로 조금씩 채워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것들, 미래를 그려가는 과정들이 행복한 부분들, 힘들고 걱정 가득한 부분들이 아닌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로 내 인생을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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