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돼간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기분은 정말 묘했다.
이곳에서 이 생활을 끝낸다는 아쉬움은 물론이지만 반면 설레기도 불안하기도 했다.
캐나다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선 가족, 친구들을 떠나는 아쉬움, 섭섭함과 함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동시에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는 설렘이 존재했다. 1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선 보고 싶었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컸지만 동시에 캐나다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내 생활을 떠나는 아쉬움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처럼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는 설렘이 존재했다.
밴쿠버 국제 공항
2024년 한국에서의 생활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물론, 조금은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생활을 선택하자면 할 수 있었지만 왜일까? 새로운 부분들을 도전하고 만들어내보고 싶었다. 이전 한국에서의 삶과 정말 다른 삶을 살다가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 이제 한국도착하면 어떤 거부터 해야 할까?'
한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조급해지기 시작하는 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조급해도 결국 바뀌는 게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떤 상황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 데다가 무엇보다 나는그 상황이 주어지기 전에는 머릿속으로 장황하게 계획하다가도 막상 그런 시간들이 주어지면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오자마자 정말 예상치도 못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어 캐나다로 가기 전 생활과는 또 다른 변화들이 생기고 있었다. 정말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은 막상 긴 시간은 아니지만, 왜 인지 외국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지인들과도 한창 만났고 아직도 만나는 중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국에서 구정, 설날은 보내는 중이었다. 우연히 워홀생활 중 보았던 '워홀프렌즈'가 생각이 났다.
'한번...해볼까?'
나는 내 워홀생활들이 과거의 나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들 해보지 못해 '두려움'이 있는 상태에 있는 분들에게 '용기'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능숙하고 잘하진 못해도 이런 경험들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천천히 써 내려갔다.
그렇게 워홀프렌즈 13기 지원을 했고 '합격' 이라는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이쯔음 캐나다 세금신고도 함께 했어야 했다. 세금신고를 위해 'T4' 라는 서류를 받았어야 했다.
나는 캐나다에서 총 3곳에서 일을 했다. 여러 일을 했지만 Drake 라는 에이전시를 통해 일했기에 결국 T4 라는 서류를 받는 곳은 3곳으로 추려졌다. 처음 내니로 일한 곳, 단기알바로 일을 했을 할 수 있었던 Drake, 그리고 마지막 나나이모에서 일을했던 The plate 였다.
내니에서 일을 했던 곳은 캐나다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사촌동생이 서류받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한국에서 내가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캐나다에 있는 동생이 직접 연락하는 편이 서로에게 편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Drake 는 생각보다 큰 에이전시였기에 알아서 나에게 메일로 보내줬고, The plate 에서도 메일로 보내줬다.
나는 혼자 온라인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Turbo' 라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스스로 도전했다. 거의 마지막까지 마무리 지었는데 알고 보니 처음 세금신고를 하는 사람은 온라인으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서면'으로 진행했어야 했는데, 더 이상 복잡해질거 같아 바로 '한인회계사' 를 수소문했고 내 서류들을 다 보냈다.
그런데 처음에 Turbo로 했을 때 예상 리턴텍스와 메일 답변에서 받은 리턴텍스가 차이가 났다.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Turbo' 에서 내려받은 서류와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전문가분들이 해주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정확한 원인을 아는 게 속 시원하다 생각했기에 찾아보았다. 중간에 내가 잘못 체크한 부분으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CANADA WORKER' 부분에 나는 체크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 나는 혜택을 못 받는 부분이었고 의문스러웠던 부분이 해결되었다.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다른 워홀러들에 비해 노동시간 자체가 적기에 소득도 적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받는 것을 보아 다른 워홀러들은 더욱더 번거로워도 필수로 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4년부터는 워홀비자가 2년, 그리고 2번까지로 변경되었는데 2023년과 2024년도 또한 차이가 나기에 내가 전달해 줄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나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는 캐나다에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떠나게 되었다. 급하게 귀국을 하게 되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비자 연장을 고려하고 있었고 못해도 6월, 9월 정도까지는 해외에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눈을 떠보니 3월 말인 현재 한국에서 워홀프렌즈 합격을 했고, 어느새 캐나다에서 생활을 했다는 것이 꿈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텍스신고를 할 때도, 워홀프렌즈 지원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들이 마무리가 되고 나면 내 인생에서 이런 기회들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기회는 만들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고 돌아온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1년이었다. 지난 1년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시간'이었고,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나에게 소중한 것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 알아차리고 한국으로 빠르게 다시 올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만나기까지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캐나다에서 그 생활을 끝내기가 아쉬움이 있었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움이 있어야 새로운 채움이 온다.나의 꿈만 같았던 이 시간들을 비우는 작업 '텍스신고' 와'워홀프렌즈' 작업들은 새로운 한국에서의 더 소중한 시간들을 찾아오게 하기 위한 부분들이 아닐까 한다.
아쉬움 또는 미련이 아닌 최고의 순간들로 채운 감사함으로 기억할 것이다. 1년간의 소중했던 시간들을 녹여 앞으로의 삶을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 되어 앞으로 내 삶의 빛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