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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보기 위해 영상을 본 적이 있나요

영상을 본다는건 이미 사라진 것들을 만난다는 것

by 풀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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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슈라우즈> 스틸컷



영화는 일종의 공동묘지와도 같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그의 신작 <더 슈라우즈(The Shrouds)>를 칸 영화제에서 공개하기 일주일 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크로넨버그는 7년 전 사별을 겪으며 <더 슈라우즈>의 시나리오를 썼다며, 죽은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영화를 자주 본다고 했다.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도 이제는 사라지거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을 보기 위해 영화나 영상을 본 적이 많다는 걸 떠올렸다.


반드시 죽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인이나 가족 구성원의 젊은 시절 모습, 이제는 없어진 장소의 모습이 담긴 영상 또는 사진을 흥미롭게 본 경험이 종종 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부모님의 결혼식, 좋아하는 연예인의 젊은 시절.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많은 영상은 기록으로써 현재 현실에서 사라진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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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MBC 대학가요제 레코드 이미지



종종 습관적으로 보는 유튜브 영상이 하나 있다. 제12회 MBC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밴드 무한궤도의 영상이다. 영상 속에는 노래 ‘그대에게’를 열창하는 신해철과 무한궤도 멤버들의 모습이 담겼다. 1988년도의 카메라 워킹은 이렇구나, 사람들은 이런 옷차림이었구나, ‘서울 말씨’란 소위 이런 투였구나, 가수 신해철 씨의 20대는 이랬구나. 영상을 볼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지점을 발견한다.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는 신해철, 누군가 손으로 쓴 글씨를 컴퓨터 처리(?)해서 화면에 띄우는 기법 등, 과거에 고정된 순간에서 매번 조금씩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그대에게'를 열창하는 신해철은 아직 그가 미래에 '마왕'이라고 불리게 될지 모른다. 미래에 어느 시트콤에서 뱀파이어 일족의 수장으로 출연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라고 노래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원하는 때에 재생할 수 있다. 영상 속의 인물들은 미래에 무슨 일이 다가올지 모르고, 미래의 수신자는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미래의 시간을 알면서도 영상을 통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 지나가 버린 순간에 접속할 수 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영화 또는 영상의 유령성을 비롯한 특징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했다. 그중 최근에 내 머릿속을 맴도는 문장은 이것이다.


기록은 늘 미래를 향해 있다. 카메라는 촬영 현장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미래’다.
영상에 찍힌다는 건 ‘미래의 무한한 타자의 시선’을 향한다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 34p




앞서 언급한 사례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지만 촬영되는 순간 미래를 향하는 영상의 특성을 담은 저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를 연달아 재밌게 보고 나서 더 볼 게 없나, 하다가 읽은 책에서 만난 문장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문장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말과 연결되는 지점이 보였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말이 영상이 감상 되는 시점에서 일어난 사유라면 하마구치 류스케의 말은 영상이 촬영되는 시점에서 일어난 사유다. 미래를 향해 열리는 순간과 과거를 향해 열리는 순간이 영상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불러온다.

고정된 과거와 계속해서 변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오래된 영화나 유튜브 영상, 홈비디오를 통해 교차한다.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지만 그리운 얼굴을 보기 위해 영상을 본 적이 있다면, 단순히 한 순간을 보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미래까지 함께 온다면 우리는 공동묘지를 거니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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