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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Nov 20. 2020

`오빠는 아이의 창`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오빠는 장난감이 좋아? 아이스크림이 좋아?"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 아이가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오빠 손을 잡고 걸어간다. 작은 어깨에 얹힌 핑크색 기저귀 가방이 앙증맞다. 유리창을 닦으면서 걸어가는 오누이의 뒷모습을 본다.


 결혼 전, 장티푸스로 입원한 아내를 면회 갔을 때 나보다 먼저 와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병원에서 뜻하지 않게 뵙게 되었는데 그때 아버지는 내게 물으셨다. "안행이 몇인가?" `안행??` 나는 갸웃했고 궁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안항`의 비표준어인 안행(雁行)은, 기러기의 행렬을 말하는데 맨 앞에서 길라잡이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따라 줄을 맞춰선 모습이 형제간의 서열처럼 보여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로 쓰인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 후로 오랫동안 술자리나 잡담을 하던 자리에서 `안행`은 나의 유식함을 뽐내는 좋은 소재였고 그럴싸하게 포장된 언변에 감탄하는 사람도 몇 있었던 것 같다.


 오빠 손을 꼭 잡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간 아이는 오빠를 통해서 세상을 접하게 될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핑크 색상이나 오빠가 좋아하는 초코를 고를지도 모른다. 선택의 사이에서 아이는 오빠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대비시키기도 하면서 고민할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을 아이 손에 쥐게 되는 순간까지 오빠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 줄 것이다. 오빠는 아이의 길라잡이고 세상을 보는 창이다. 성장과정에서 더 많은 의문과 질문에 오빠는 항상 명쾌한 답을 줄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처럼 오빠를 의지 할지 모른다.


 사람은 누군가를 통해서 배운다.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배우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은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 가족 구성원을 통해 배우고 친구와 선배를 답습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했다면 어른으로 성장해서는 더 다양한 방면에서 더 다채로운 방법의 교류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누군가를 통해서 영향을 받기도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작용의 한가운데 `관계`가 있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교류를 많이 하지 않으셨다. 사귀던 친구도 몇 되지 않았고 그분들이 돌아가시자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원치 않으셨던 것 같다. 어쩌면 자신에게 영향을 줄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아서 포기하셨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책을 읽으셨고, 안경과 돋보기는 책과 함께 당신이 남긴 유품이었다. 아버지의 `관계`는 책 속의 인물이거나 한 줄의 문장이었을까. 나 역시 밤늦게까지 책을 보다 들어가는 날이 잦아졌다. 어쩌면 이런 일상은 앞으로 당연시될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절연하고 책 속으로 걸어갔던 아버지처럼 나 역시 그렇게 걸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리라.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행`을 설명해 주던 그때 첫 번째 만남이 떠오르게 되고, 키가 크고 양복이 잘 어울린 미남자를 나는 추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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