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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r 03. 2021

2월이 짧은 이유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겨울이 오고 몇 번의 추위가 바람과 함께 왔다 갔습니다. 길가에 매화가 피어나곤 있지만 아직 저 산등성이 언저리에 겨울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며칠 전까지 겨울이라고 생각했는데 3월을 맞이하고 나니 겨울을 털어내고 싶어 집니다. 2월이 28일로 마침표를 찍으며 사라져 버리기에 3월이 앞당겨 온 듯한 기분입니다. 로마 황제의 욕심 때문에 2월은 줄어들었지만, 해마다 매화가 피어나는 이때쯤이면 이상하게 마음도 급해집니다. 2월에서 3월 사이에 찢겨 사라진 두장의 날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3월을 마주하는 느낌은 잠깐 졸고 난 사이에 도착해버린 목적지처럼 손해 본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고 매화가 피기 시작합니다. 3년 전 아버지의 병실에서 밤을 새우고 나오는 새벽에도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가 있었습니다. 장례를 마칠 때까지 꽃은 지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제사를 모시러 귀향하는 길가에서 꽃들을 봅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날마다 야위어갔고 미음만 겨우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서 기저귀에 쏟아냈습니다. 힘이 부쳐서 그랬는지 자꾸 덥다며 부채질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형들과 교대로 간호를 하면서 내가 한 일은 아주 느린 속도로 부채질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종을 얼마 안 남기고 아버지는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셨나 봅니다. 겨울딸기는 온실에서 자라서 달고 상큼합니다. 오히려 제철인 여름보다 그 맛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병실생활이 답답해서 상큼하고 신선한 것이 그리웠을까요. 딸기가 먹고 싶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작은형은 붉고 하얀색이 선명한 온실 딸기를 사 갔습니다. 깨끗이 씻은 딸기 몇 알을 병실 침대에 올려놓은 아들은 아버지를 일으켜 앉혔습니다. 아들은 빨간 딸기 한 알을 들어 아버지 입에 넣어 주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삼키지 못했습니다. 몇 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기력이 떨어진 아버지는 끝내 빨간 딸기를 씹지 못하고 뱉어내기만 했습니다.

온실에서 흠결 없이 자란 겨울딸기는 보기에도 예쁘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아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물을 쏟아냅니다. 겨울에 먹는 살짝 차가운 느낌의 딸기는 오히려 신선하고 상큼한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형은 딸기를 못 먹는다고 합니다. 딸기를 보면 아버지의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지는가 봅니다.


 매화가 피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력으로 3월 초였고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아버지의 묘는 팔영산과 당신의 고향이 잘 보이는 밭에 있습니다. 밭의 도드라진 곳이라 햇볕이 가득합니다. 그곳에 앉아서 팔영산을 바라보면 푸른 빛깔의 바위산이 보입니다. 그 바위산 아래 능가사란 절이 있고 우리는 1년에 한 번 그 절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를 지내는 대웅전은 서늘한 기운이 냉장실처럼 꽉 차 있습니다. 산의 찬 기운이 서려서 그런지, 제사 때 찾아오는 영가의 혼 때문인지 알 수없지만 불전은 춥습니다. 어머니는 구부러진 등으로 절을 합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방석에 대고 불상 앞에 조아립니다. 두 손을 벌려 당신의 염원과 기원을 빕니다. 숭배하는 신앞에 기도하는 신도의 행동은 간절하고 절실해 보입니다. 불전에 흐르는 냉기도 아픈 허리와 무릎도 이 진실한 신자의 믿음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며칠 전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 돌아왔습니다. 3월이 왔고 비가 내립니다.


2월이 황급히 도망치듯 가버렸고 대책 없이 3월이 왔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그러하듯이 봄날 또한 예기치 않게 오려나 봅니다. 그리고 따뜻한 봄날, 꽃길 속에서 생각할지 모릅니다. 빨간 딸기와 냉골속에서 엎드리던 내 어머니의 구부러진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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