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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r 12. 2021

봄의 정경(1)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시원합니다.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도 활기차 보입니다. 매화가 피면서 3월이 왔습니다. 꼬리가 싹둑 잘린 2월이 황급히 물러나자 봄이 왔습니다. 밖으로 나가 개울가의 산책로를 걸어봅니다. 이름 모를 풀들이 마른풀 사이를 뚫고 나왔습니다. 벌써 꽃을 피운 작은 풀들도 보입니다. 물소리도 경쾌하고 싱그럽습니다. 잔물결을 이루며 흔들리듯 낮은 곳으로 내립니다. 경사지에 이른 물소리는 부는 바람에 음량을 조절합니다. 산책로 군데군데 심어진 나무는 온몸으로 햇살을 즐기는 듯합니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 매화가지는 알사탕처럼 뭉쳐있기도 하고 꼬치처럼 촘촘하게 하얀 꽃으로 범벅을 하고 가지 끝을 하늘로 날리고 있습니다. 능수버들은 이제 막 자라난, 더벅머리 같은 짧은 가지를 연둣빛으로 물들이기 바쁘고 산수유는 그 연두색에 노란색을 섞어서 몽글몽글한 꽃을 피웁니다. 산수유의 수피는 껍질이 벗겨져서 너덜너덜합니다. 꽃과 열매를 위해 외형은 포기한 듯합니다. 기둥과 줄기에 각질처럼 일어난 껍질은 죽은 나무의 표피처럼 말라있지만 노란 빛깔의 꽃은 벌과 새를 불러 모읍니다. 매화는 홀로 있어도 외로워 보이지 않고 기품이 있지만 산수유나무는 군집을 이룰 때 더 아름답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수유 마을은 군락을 이룬 나무가 산비탈을 개간한 밭과 계곡을 넘어 마을 어귀와 앞마당까지 차지하고 있습니다.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 산수유꽃은 노란 뭉게구름처럼 정겹습니다. 마을을 끼고 피어난 꽃도, 산등성이 가파른 곳에 피어난 꽃도, 깎아지른 계곡 밑의 나무도 포근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단색의 주변 풍경 때문에 해상도나 화소가 낮은 상태로 보이지만 파스텔화처럼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마치 커다란 안개꽃으로 만든 프리저브드 같습니다. 하지만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보존을 위해 특수처리방식으로 건조한 꽃입니다. 산수유의 노란색은 미묘하고 절묘한 색상입니다. 우리가 따로 부를 이름이 없기에 노란색으로 부를 뿐입니다. 그 꽃은 말라있지도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이 빛깔은 고향의 색입니다. 봄에만 피어나는 산수유색입니다.


 미끈하게 뻗은 백목련이 하얀 꽃잎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크리스마스트리용 전구처럼 작은 꽃봉오리가 찬 바람에 떨었나 봅니다. 하얗게 돋아나는 덧니처럼, 뾰쪽한 촉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백목련은 어느 날 밤에 피어납니다. 내게는 늘 그랬습니다. 공원에 있던 백목련도, 아파트 화단의 백목련도 낮에는 가만히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 보면 피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면 찢긴 종이처럼 꽃잎이 바닥에 뒹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백목련이 종이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여에 꽂혀있다 바람에 날아간 꽃 같기도 하고, 축제 때 무대에 들고 갈 종이꽃을 누군가 밟았을 때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신발 자국이 선명한 종이꽃을 들고 줄지어 서있을 때 기분 말입니다. 그래서 바닥에 흩어진 하얀 백목련 꽃잎을 보면 애잔함이 느껴집니다. 


 부드럽고 따스한 햇살은 대지를 깨우고 나무의 심장을 뜨겁게 달굴 것입니다. 순서에 맞춰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할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다채로운 빛깔로 산과 들을 물들일 것입니다. 봄의 하루하루는 생동하는 주위의 풍경들로 살아납니다. 늘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변화 없이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삶은 계절을 통해 앞으로 갑니다. 멈춘 듯 하지만 지나온 것을 아쉬워하듯 봄은 또 그렇게 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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