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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r 22. 2021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매화가 피는 계절이다. 겨울을 지나고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꽃소식은 항상 매화로부터 온다. 매화는 꽃으로 전하는 봄의 엽서다. 운전하면서 바라본 도로가의 매화는 차창밖에서 순간 지나가지만 검은 가지 위로 부풀어 오른 하얀 꽃은 잔상으로 남는다. 지금은 매실 수확을 위해 과수원처럼 심어놓은 매화나무가 많아 정돈된 하얀 꽃밭이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산수유도 노랗게 피어오르고 있어 봄은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 골목 담벼락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던 길고양이가 느리게 움직이고 한가롭게 담 넘어온 매화 송이가 햇살에 반짝인다. 


 매화 문양으로 표피를 장식한 고양잇과 동물이 있다. 호랑이나 얼룩말의 문양이 줄무늬라면 치타나 재규어와 표범은 점으로 구분된다. 그 점의 문양도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지상에서 가장 빠른 치타는 작은 점의 연속이고 재규어는 점 속에 작은 점이 두어 개 더 박혀있다. 표범의 점 속은 비어있는데, 이 속이 빈 점의 문양을 매화 문양이라고 부른다. 표범의 매화무늬를 예로부터 최고로 쳐서 김홍도는 '표피도'를 그림으로 남겼다. 이 '표피도'는 북한의 국보고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미술 칼럼니스트 손철주가 쓴 '표피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니은 디귿 이응 그리고 이 아 으 , , , 한글 자모를 뒤섞어 놓은 듯한 그림. 도대체 무엇인가. 돋보기 대고 보면 자세하다. 자모 사이에 잔털이 촘촘하다. 아랫부분에 마주 보는 기역자는 눈썹이고, 밑에 둥그스름한 부분은 눈자위다. 맞다 표범이다. 표범이긴 한데 껍질 그림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터럭 한 올 한 올 다 그리려고 만 번이 넘는 잔 붓질을 했다.'


김홍도의 '표피도'속의 문양은 확실히 매화 문양은 아니다. 그것은 원의 형태도 있지만 끝이 연결되지 않는 형태에서 끝나기도 한다. 점과 원으로, 혹은 원의 형태로 그려진 '표피도'는 대칭과 비대칭으로, 같은 듯 다른 무늬들로 가득 차 있지만 오묘하고 아름답다. 더구나 만 번의 잔 붓질 위로 돋아난 문양은 선명하고, 분명하고, 명확하다. 표범의 분명한 문양을 다룬 고사성어 중에 많이 쓰는 '군자표변'이란 단어가 있다. 대인호변( 대인은 가을날 호랑이 털갈이하듯 바뀐다), 소인혁면( 소인은 낯짝만 바뀐다)과 함께 '군자는 표범 털갈이하듯 바뀌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정진과 혁신을 통해 스스로 변화해야 함을 이르는 것이다.


한나라 유향의 열녀전에는 남산무표(南山霧豹) - 남산 안갯속에 숨은 표범 - 란 이야기가 나온다.

도답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3년간 질그릇을 구워 팔았다. 명예는 없이 재산만 세 배나 불었다. 그의 아내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남편에게 여러 차례 그러지 말라고 간했지만 도답자는 들은 체도 않고 돈벌이에만 몰두했다. 5년이 지나 그가 엄청나게 치부해서 백 대의 수레를 이끌고 돌아왔다. 집안사람들이 소를 잡고 그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도답자의 아내가 아이를 안고서 울었다. 시어머니는 이 기쁜 날 재수 없이 운다며 그녀를 크게 나무랐다. 그녀가 대답했다. "남산의 검은 표범은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기 위해, 숨어서 해를 멀리하려는 것이지요. 저 개나 돼지를 보십시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제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잡아 먹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나라가 가난한데 집은 부유하니 이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입니다. 저는 어린 아들과 떠나렵니다. "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그녀를 내쫓았다. 1년이 못되어 도답자는 도둑질한 죄로 죽임을 당했다.(출처 <일침> 정민)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는 표범의 매화 문양 이야기는 남산현표(南山玄豹)란 고사성어로 전해지고 벼슬길 마다하고 은둔하며 학문에 정진하는 은거 선비들에게 어울리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


겨울의 찬바람을 견딘 매화가 기다림 끝에 피어난다.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는 표범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없다. 김홍도의 '표피도'역시 통일이 된 다음에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해가 시작된 지 석 달째 접어들고 있다. 올해 세웠던 계획과 목표도 점검할 시점이다. 표범이 털갈이하듯 아름다운 '매화 문양'을 새기고 싶다면 묵은 털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 부스스한 터럭을 털어내고 선명한 문양의 표피를 원한다면 매화를 보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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