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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r 22. 2021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날이 깎이나니'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가로수로 심어진 종려나무가 머리채를 흔들며 춤추는 듯 흔들거립니다. 성당 앞에 핀 백목련은 활짝 피어서 웃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나무가 하얀 꽃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크고 탐스런 흰 목련은 밤에는 전등처럼 은근하고 햇빛을 받으면 하얗게 웃는 꽃입니다. 백목련을 보고 연꽃이 나무에서 핀다고 '환생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울지 않고 웃으며 시작해도 좋을 듯합니다. 바닥엔 바람에 떨어진 꽃잎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어떤 꽃잎은 물 젖은 종이처럼 말라가고 있습니다. 하얗게 웃던 꽃의 잔해는 의외로 비루하고 처참해 보입니다.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바람이 불면서 꽃잎이 흩어집니다. 꽃들이 바람에 날리는 장면을 본 시인이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날이 깎이나니'라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인은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순간을 포착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지는 꽃을 보면서 어떤 상념에 빠진 걸까요. 삶의 어느 부분이 깎여나가기도 하고 슬픔이나 희망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시간이 지나감을 얘기할 수는 있습니다. 삶의 무상함을, 헛된 욕심과 사랑의 덧없음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스치듯 지나가지만 시인의 눈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우리에게 버림받은 꽃들도 그의 시야에서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떨어지는 꽃잎 하나를 바람이 안고 나비처럼 오릅니다. 그리고 시간을 잊은 듯 천천히 내리는 낙화. 꽃잎은 허공에 선을 긋습니다. 꽃잎이 깎아놓은 수많은 선을 바람이 지웁니다. 봄날은 그렇게 깎여서 가나 봅니다. 


봄이 오면, 꽃이 지면 떠오르는 이 시는 두보의 <곡강>입니다. <곡강>의 첫 연에 해당하는 이 구절은 많은 시인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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