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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Sep 01. 2021

계면조의 계절

 절기상 입추가 지나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직 뜨거운 한낮의 기온은 계절의 바뀜을 알아챈 곤충이 뿜어낸 소리의 열기 때문인지 쉽사리 식지 않고 있다. 어느 나무 그늘 밑에서 울어대는 매미의 처절한 소리는 바람을 타고 다른 나무로 전파되어 일제히 울어댈 때는 서라운드 스피커의 소리처럼 주위를 맴돈다. 처절하고 그악하게 울어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잠시 침묵이 흐를 때면 어느 틈에 지나온 시간이 곁으로 다가온다.

 매미 소리는 길고 시끄럽다. 찰현악기의 고음처럼 깊고 길게 그리고 선명하게 긋는 선 같다. 날카롭고 예리한 무기처럼 홈을 파고 흠집을 남긴다. 일제히 합창으로 울어댈 때는 귀가 멍해지고 혼미해진다. 소리가 그친 후에도 잔상처럼 남아서, 귓속의 동굴에서 아련한 최초의 소리처럼 떠돌곤 한다. 소리의 유령으로 남아서 몇 시간을 머물다 가기도 한다. 이명일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해 지는 시간에 산책을 하다 보면 매미 소리를 비롯해 갖은 풀벌레 소리를 듣게 된다. 숲이 있는 곳을 지나다 보면 새소리와 뒤섞인 풀벌레 소리로 제법 시끄럽다.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벌레소리는 개별적으로 듣다 보면 계면조(界面調)의 선율처럼 구슬프고 애달프기도 하다. 계면(界面)이라고도 하는 계면조는 해금, 아쟁의 연주곡이나 판소리로는 주로 서편제의 애절한 소리를 말한다. 성호사설에서 이익은 "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이 얼굴에 금을 긋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라고 계면을 설명했다. 

풀벌레 소리는 현을 켜는 소리처럼 지속음을 내기에 발현악기나 건반악기와는 구분된다. 그래서 바이올린 선율처럼 길고 가늘게 이어지며 애달픔을, 간절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계조(階調)로 농담을 표현하면서 애간장을 태워서 누선을 자극하기도 한다.

 짧은 생을 마감하는 곤충을 보면서 일본의 하이쿠 시인들은 짧은 시구 속에서 삶과 죽음을 노래했다. 통찰과 해탈과 해학으로 표현한 짧은 한 줄의 글은 때로 탄복을 일으키곤 한다.

 '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바쇼) '

곤충의 짧은 생처럼 짧은 시 속에는 시간이 지나온 흔적처럼 허물이 사연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길고 슬픈 곡조로 소리를 내는 풀벌레는 계절이 끝나는 절박함을 아는 것일까. 매미는 어둡고 축축한 땅속에서 7년을 견디고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대부분의 풀벌레들도 따뜻하고 온화한 기온에서 부화하고 뜨거운 여름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의 시간이 끝나고 있다고 아쉬움을 접으라고 소리치는 것일까. 현의 애끊는 선율처럼 밤하늘에 시리게 퍼지는 풀벌레 소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사늘한 바람과 차가운 기온으로 날이 바뀌면 그들은 사라질 것이다. 찬 공기 속에서 날개를 펴지 못하고 움츠릴 것이다. 웅크린 채로 곤충 채집통에서 죽은 나비나 나방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계절을 순환하며 산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리고 다시 오는 가을을 맞이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맑고 청아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날지 모르겠다. 어떤 그리움이 아련한 추억이. 알 수 없는 한 줄을 그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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