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뜬금없이 찾아올 때 더욱 비극적이다.
한줄로 보는 영화평 [ 엘리펀트 ] (*스포있음*)
1. '아무 관련없는' 피해자 학생 십 여명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챕터 구성
2. 악은 뜬금없이 찾아올 때 더욱 무섭다.
3. 월광 소나타 - '광란'을 상징하는 달의 이미지
[한줄평 세부설명]
1. '아무 관련없는' 피해자 학생 십 여명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챕터 구성
[ 각 챕터별로 학생들 이름이 언급되면서 학생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끔찍한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엘리펀트>는 조금 다릅니다. 그 '다름'의 첫 시작은 바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챕터 구성'입니다. 영화는 8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희생자들의 각자 일상을 짧게 보여줍니다. ‘존의 이야기’, ‘일라이의 이야기’ 이렇게 주어지고 나서 각 챕터별로 카메라는 챕터의 인물을 졸졸 따라다닙니다.
[ 존(노랑 티셔츠)의 시점 ]
[ 일라이(가운데 남자)의 시점 ]
[ 미셸의 시점 ]
[ 문제의 그 시점 충돌 장면, 위의 세 장면은 각각 영화 시작 19분, 36분, 57분에 등장합니다. ]
<엘리펀트>는 독특한 구성으로 시작하는 앞선 얘기와 더불어서 이로 인해 인물들간의 시점 충돌이 있습니다.
미셸은 도서관에서 책을 꽂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리고 일라이는 사진에 관심이 많아 사진 촬영과
인화작업을 하고, 존은 지각을 해서 학교 선생님들과 면담을 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이 세 인물은 잠시 후
복도에서 서로 겹치는 중간 장면에서 겹치게 됩니다. 세 인물은 끈끈한 친구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마주침에 가깝습니다. 이 시점 충돌은 뒤이어 이어질 재앙의 무차별성과 이어집니다.
시점을 충돌시킴으로써, 무엇을 원했을까요?
먼저 우리가 흔히 아는 영화 속 시간 흐름을 깨버립니다. 영화의 19분 때의 장면보다 당연히 57분 때의 장면은 더 뒤의 이야기일 것 같지만, 사실은 총기 난사가 났던 그 날의 학교 안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학교 안에서도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악은 뜬금없이 찾아올 때 더욱 무섭다.
악은 '복수'라는 이름을 달고 오기도 하고, '증오', '욕망' 등등 다양한 이름을 달고 피해자에게 찾아옵니다. 원한 관계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는 개연성이 있습니다.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대상을 정한 이유가 그래도 설명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냥 아무 이유없는 무차별 범죄'입니다. 우리가 뉴스를 보면서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무차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최후반부에 가기 전까지는 영화의 최후반 16분을 제외한 64분 내내 다른 피해자들의 일상을 비추는 데 주목합니다. 그 중간중간 씬에 가해자의 씬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쟤가 나중에 그 범죄자야? 싶게 만드는 장면은 극히 드뭅니다.
살인을 공모하는 범죄자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거나, 혹은 범죄를 저지르는 학생들이 과거에 그들을 괴롭히는 Bully(불량배)들한테 지속적으로 당하면서 '분노를 축적한다던가'하는 식의 장면들이 매우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저 애들로 인해 범죄가 일어날 것 같아!’하고 느끼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나 회사를 다니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당신도 갑자기 저렇게 당할 수 있다.', '어제까지 평범해 보이던 얘가 갑자기 범죄자가 된다'라는 그냥 개연성없는 악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욱 알고보면 되게 무서운 문제의식을 던진 것이구나 할 수 있습니다.
(참고) 블러효과의 과다 사용, 불안함과 붕떠 보이는 카메라 화면
<엘리펀트>에서 또한 흥미로운 점은 화면입니다. 거의 모든 인물들은 카메라 단독 샷을 계속 받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단독 샷을 받는 사람을 제외한 주변의 사람들이나 학교 건물은 흐릿하게 보입니다. 블러 효과를 과하게 주어 주변이 보일 듯 말듯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점들이 맞물려서 보는 <엘리펀트>를 보는 이들에게는 불안함과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학교라는 공간과 마치 떨어져있는 듯한 이질감을 계속해서 주는 것이죠.
3. 월광 소나타 - '광란'을 상징하는 달의 이미지
[ 월광(月'狂') 소나타 ]
이 영화는 배경음악이 매우 절제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서 항상 생각하셔야 하는 점은 대부분의 수많은 영화들은 ‘음악’이 계속 깔린다는 것입니다. 인물들이 대화를 하건, 사랑을 나누건 어떤 걸하건 음악은 항상 밑바탕처럼 깔려있습니다. 우리가 본 ‘살인범이 나오는 영화’들이나 여타의 스릴러물들은 늘 흔히 들어봄직한 낮고 심장을 찌르는 듯한 긴장된 BGM이 깔립니다. 꼭 나를 쫓는 살인마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같은 분위기를 앞서서 주는 것이죠.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처럼 <엘리펀트>는 음악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들리는 브금은 작중 살인범이 비극의 날이 오기 전에 집에서 치고 있는 ‘월광 소나타’입니다.
월광 소나타의 월광(月光)은 ‘달빛’이라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달의 이미지는 순한 여성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밤에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과 겹쳐 ‘광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광란의 ‘Fanatic’ (Frenzy라는 단어의 어원이 됩니다.) 이라는 단어는 달을 뜻하는 ‘Lunatic’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말이 있으니까요.
평범한 인간이 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하듯이 말이죠. 이런 어원을 생각하고 나면 왜 저 피아노 씬만이 유난히 강조되면서 소리를 들려줄까? 하는 데에 대한 어느정도 답이 될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다시 곱씹어보실 때 한층 더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늑대인간 - 달은 광란을 상징한다 ]
#.2017.02.13 CineRabbit, 영화 <엘리펀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