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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레빗 Feb 16. 2017

[한줄로 보는 영화] 샤이닝

겨울이 찾아왔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고전 스릴러 영화 < 샤이닝 > 리뷰 (1980, shining)




1.  파편화된 가족의 이야기, '버번 온 더 락'


2.  서스펜스의 정의: 느리고 정교하게 다가오는 공포


3.  ‘광기’ 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엇이 명품 연기인가?'







<한줄평 세부 설명>


1. 파편화된 가족의 이야기, '버번 온 더 락'



  샤이닝의 시작은 제일 먼저 ‘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서서히 폐쇄된 외딴 섬과 같은 호텔의 공간에 가족 셋(잭, 웬디, 대니)이 호텔 관리인으로서 

겨울을 보내면서 샤이닝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원래 술을 좋아해서 자주 즐기다가, 아들에게 큰 사고를 낸 이후로 술을 끊은 지 5개월이 되었다는 

작중 주인공 잭은 서서히 호텔의 기이한 기운에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술을 갈망합니다.

정처없이 떠돌던 그는 호텔 안의 파티 룸에 도착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바(Bar)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바텐더가 눈에 보이게 되고, 바텐더는 잭에게 ‘버번 온 더 락’을 만들어줍니다.   



  버번 온 더락(On the Rock)은 위스키의 일종입니다. 여기서 '온 더락'은 마시는 방법을 뜻합니다. 

말 그대로 잔에 큰 얼음 2~3개를 넣고 다른 음료나 물을 섞지 않고 

위스키를 얼음에 흘러내어 마시는 방식을 칭합니다. 

마치 바위를 따라 위스키가 흘러내린다는 의미로 ‘온 더 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음과 함께 버번 위스키를 곁들이는데, 버번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입니다. 

그리고 버번은 ‘텁텁하다, 독하다, 남성적인’이라는 상징성을 띄고 있습니다. 

버번 온 더락은 또한 값이 저렴합니다

이 상징성을 기억하면 더욱 주인공이라는 인물을 깊게 보여주는 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버번 온 더락’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문제의 시작점인 ‘잭’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미쳐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잭은 호텔을 떠나지 못합니다. 


호텔은 일종의 유령이 씌인 ‘고스트 하우스’같은 곳입니다. 그 자신도 호텔 안의 귀신들의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절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이 유령에게 목을 졸린다던가 하는 사건이 있으면서도 아내의 떠나자는 말을 따르지 못합니다. 


[ 버번 온더락을 주문하고 헐거운 지갑을 만져보는 잭 ]



  그 시작은 바로 가장에 대한 ‘의무’였습니다. 일종의 남성성에서 기인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자신도 같이 이 호텔을 떠나버리면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아내에게 아무도 떠날 수 없다고 일갈하는 씬과 더불어, 자기 자신이 미쳐가면서도 자신은 가족을 지키고 싶어했습니다. 

이때까지는 가족에 대한 깊은 구심력을 바탕으로 버팁니다. 


  하지만, 이 다음 광기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나서는, 그는 이 모든 일의 책임과 몰락이 아내와 아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죽이려고 듭니다. 그리고 가족은 원심력으로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버번 온 더락은 그 구심력에서 원심력으로 힘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상징이자, 쪼그라든, 가장을 상징하는 상징물입니다.






2.  서스펜스의 정의: 느리고 정교하게 다가오는 공포



   요즘 호러 장르나 스릴러 장르 영화를 보면, 관객들의 심장을 죄는 공포는 거의 대부분 다 

‘길고 긴 준비과정’과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급격한 변화’ 

라는 공식을 따릅니다. 길고 긴 준비과정은, 무시무시한 저음의 소리가 깔리고,

 혹은 주인공은 아주 컴컴한 곳에 들어가고, 카메라는 느리게 숨죽이면서 걸어갑니다. 그러다 


문득! 



   귀신(혹은 살인마)이 퍽하고 튀어나오거나 하는 식으로 공포감을 줍니다. 

그리고 나서 장면은 급격하게 쇼트가 짧아지고 긴박해집니다. 

 

   ‘깜짝’ 놀래키는 이런 장면은, 엄청나게 갑작스럽고, 뜬금없이 등장해야 더욱 무섭습니다. 그리고 귀신이나 살인마가 기괴한 모습을 하면 할수록, 저 끔직한 형상의 귀신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관객을 긴장시키는 것이죠. 이런 패턴이 오늘날의 호러나 스릴러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원초적인 공포에 대한 심리를 자극합니다.



   샤이닝은 이러한 공식과는 한층 동떨어져 있습니다. 진짜 나는 호러 매니아야 싶은 사람들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정도로, ‘갑작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인마는 충분히 저 멀리서 다가오고, 갑자기 뒤돌아섰더니 귀신이 튀어나오는 식으로 상황이 급격하게 전개되지 않으며, 기존에 보던 공포영화의 급격하게 변하는 속도에 비하면 느긋하게 보일 정도로 느리게 전개됩니다.


   하지만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공포감'을 재해석합니다. 샤이닝은 일종의 ‘공포’를 돌아갈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히는 잭의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에서 찾습니다. 관객은 작중 개인이 돌이킬 수 없는 광기에 서서히 사로잡히는 과정에서, "제발 원래대로 돌아와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문득문득 돌아오는 듯하지만 결국엔 돌아오지 않는 모습에서 답답함과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의지를 할 사람은 미쳐가는 데, 도움을 청할 곳은 없습니다.

완벽하게 폐쇄된 공간이라는 탈출할 수 없는 곳에서 

미쳐가는 사람을 안 미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또 실패하고 하는 

그 모든 과정은 또다른 스릴감을 줍니다. 


   그래서 뜬금없이 귀신이 튀어나오거나, 그로테스크한 얼굴의 귀신이 튀어나오는 ‘놀람’이라는 원초적인 공포보다 더욱 ‘공포’에 대해 잘 조망을 했다고 평가받는 것입니다. 

(이런 느린 호흡으로 불안감과 긴박감을 주는 걸 ‘서스펜스’라고 합니다.)






3. ‘광기’ 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엇이 명품 연기인가?'


  샤이닝은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운 명품 연기'라는 극찬을 하고 싶은 소수 정예 배우들의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작중 광기에 사로잡히는 잭 니콜슨의 연기 ]


  ‘샤이닝’의 앞서 말한 광기를 제대로 표현한 잭 니콜슨의 연기는 정말 말 그대로 명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연기입니다. 앞서 말한 모든 내용은 배우의 치밀한 심리 표현과 명연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냥 순식간에 기획만은 그럴싸했던 이류 영화로 묻혀버립니다.


  작중 인물이 정말 여타 영화들과는 다르게 공포영화치고 매우 적은 편에 속합니다. 가족 셋이서 일어나는 사건을 가지고 하는 만큼(다른 인물들도 물론 나옵니다. 하지만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세 명의 주연이 펼치는 연기는 정말 단독샷을 받으면서도 어색함 없이 모두가 입이 딱 벌어지는 연기를 기가막히게 소화해냅니다.


[작중 '잭'의 투페이스 연기]


   '연기를 잘한다'라고 말할 때의 연기는 곧, 단순히 발성이나 격앙된 목소리로 미친 것같이 연기하는 하나하나 의 장면만을 칭하지 않습니다. 관객을 '몰입'시키는가가 명연기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신세계>로 치면 박성웅이라는 ‘배우’가 아닌 '이중구'라는 ‘배역’으로써 

기억되게 연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잭 니콜슨은 샤이닝에서 세계적인 명연기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이후에도 이런 광기넘치는 샤이닝의 ‘잭’ 이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기억에 계속 남아 고민했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명품 연기를 펼친다는 평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아내 역할을 맡은 셜리도 그리고 대니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도 정말 어색하지 않은 강한 몰입을 관객에게 선사해줍니다.  


[ '대니'의 샤이닝 속 연기 ]





참고)  연기에 대한 두 가지 관점 : 몸짓이냐 얼굴이냐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연기를 잘한다고 할까요? 

   과거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연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쉽게 말하자면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아크로바틱) ‘내면을 얼굴 표정을 드러내는(심리적 사실주의)’ 연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설적인 인물들이 연기술 논쟁에 등장합니다. 메이어홀드와 스타니스탑스키라는 인물입니다.

 

메이어홀드는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한 명의 주인공의 목소리, 얼굴 표정 묘사등의 심리 묘사의 연기보다 더 뛰어난 것은 집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명의 주인공이 모여서 동시에 몸짓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더욱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준다고 생각한 거죠. 


이러한 ‘몸짓’에 주목한 연기술은 후에 그의 뜻을 이어받아 에이젠슈테인이라는 명감독의 <전함 포템킨>(1925) 이라는 고전 명작에서 잘 드러납니다. 러시아 시민들의 권력자에 대한 저항과 혁명을,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집단이 몸짓으로  표현하면서 저항정신을 표출합니다. 


그래서 이 관점에서는 한 개인이 자기 마음속을 얼마나 잘 드러내는 지에 대한 미시적인 표정변화보다 

과도한 손동작, 격앙된 발걸음, 총을 맞았을 때 실감나게 쓰러지는 등의 

몸짓을 잘하는 것에 대해 높은 연기력을 인정해주었습니다. 



다음은 우리가 이제 흔히 아는, ‘내면을 잘 표현하는’, ‘얼굴만 봐도 느껴지는’ 

말이 아깝지 않은 ‘내면 묘사’에 관한 연기술입니다. 스타니스탑스키는 배우들의 연기는 곧 심리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서 관객을 몰입시켜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무대에서 배우는 배역과 완전히 동일시되어야 관객이 보면서 관객 자신도 배우가 된 것처럼 몰입을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관객인 우리도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를 온전히 몰입해서 ‘각성’하고 깨달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러시아 혁명 시기를 다룬 영화였지만, 스타니슬랍스키의 영향을 받은 감독 푸도프킨은 영화 <어머니>(1926)를 감독하면서 노동자 아내로서 겪은 험난한 삶을 드러내는 한 배우의 얼굴 표정에 집중하는 식으로 미시적인 카메라 샷을 보여줍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연기라도 잘한다라는 것에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했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 아크로바틱이라고 하는 메이어홀드의 연기술은 영화 분야에서는 많이 사라지고, 뮤지컬이나 연극쪽으로 많이 접목되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에서 연기를 잘한다라는 말과 영화에서 연기를 잘한다라는 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CineRabbit. 2017.02.16. <샤이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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