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한 도전>을 읽고나서
토스는 2022년 월간 활성 유저 1,400만 명을 돌파하고, 약 9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대표 유니콘 기업입니다. 그러나 이런 토스를 창업한 이승건 대표도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하는데요, 과연 이승건 대표와 토스는 지금까지 어떻게 성장해 왔던 것일까요? 오늘은 토스의 성장기를 다룬 <유난한 도전>을 참고하여 토스의 역사와 시사점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이승건 대표는 서울대학교 치의학과 출신의 치과 의사로서 평탄한 삶이 보장된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매번 더 큰 꿈을 꾸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연말 독서모임 송년회에서 그는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1년 전, 같은 사람들과 같은 모임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생생한데 그동안 자신은 크게 변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앱 하나만 만들어보는 거야. 개원은 반년만 미루자. 어차피 좋은 자리도 아니었어.’ 물론 마음속에는 안전핀 하나가 있었다. ‘언제든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잖아.'
이승건이 처음 시도한 아이템은 소셜 앱 '울라블라'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는 상대와 현실에서 만날 때 쌓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른 SNS와는 다르게 사용자 간의 실제 만남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이승건은 개발을 위해 이태양이라는 개발자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했습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의 이태양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네이버에서 인턴 과정을 마친 후 입사가 결정된 상태였는데, 입사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이태양은 이승건을 '대장'이라 불렀고, 처음 약속했던 두 달의 기간이 끝나갈 무렵 이태양은 네이버 입사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내 길을 찾은 것 같아, 대장. 나는 대장이랑 창업의 길을 갈래."
이승건과 이태양은 '울라블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선 그들은 오프라인 만남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SNS를 만들기 위해 핸드폰이 실제로 가까이 위치해야 인증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누군가 베낄까 봐 기술 특허까지 냈는데, 특허를 획득하는 데에만 거의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비스는 뚜렷한 반응을 얻지 못했고, 디자인이 별로인가 싶어서 수개월에 걸쳐 디자인을 수정하여 앱을 다시 만들어 보았습니다. 디자인은 실제로 보기에 예뻤고, 세계에서 잘 알려진 디자인 공모전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여 이승건은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승건은 각종 스타트업 경진대회에 참가하고, 온라인 광고를 집행하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고, 이미지 필터 기능을 추가하는 등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서비스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년 4개월 동안 인건비를 포함하여 총 2억 2000만 원을 쓴 울라블라는 성과를 만들지 못했고, 8명까지 늘어났던 팀원은 이태양 외에 모두 떠났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패했지만 좋은 기억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침묵 속에 짐을 쌌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실패라는 결과는 고통스러워서,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희망에 부풀어 일했던 기억마저 지워버렸다.
그리고 이태양은 이승건에게 창업에 집중하기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이승건은 월급과 생활비를 위해 일주일에 이틀은 의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승건 역시 모든 것을 걸고 헌신해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데 병행하며 성공한다는 것은 무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이태양에게서 받는 에너지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승건은 파트타임 치과 의사를 그만두고, 2013년 4월 21일 '비바리퍼블리카'라는 이름의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비바리퍼블리카의 지분을 나눠 가진 또 다른 초기 멤버이자 개발자인 박광수, 김민주도 이 무렵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울라블라 외에도 비바리퍼블리카는 긴 실패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토스는 비바리퍼블리카의 아홉 번째 제품이었고, 그 앞 여덟 번의 시도가 실패였습니다. 두세 번쯤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하다 가라앉았고, 나머지는 빛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보트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다보트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의견을 올리고 투표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이었는데, 이승건은 최종적으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효율적으로 결론을 도출해, 정부의 정책적 의사결정에 시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승건과 팀원들은 수차례에 걸쳐 다른 버전의 앱을 만들고, 카카오톡과 연동 작업을 거쳐 '다보트 포 카카오'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보트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카카오톡이 자체적인 투표 기능을 만들어 붙이면서 이승건은 다보트를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설상가상 카카오톡이 자체적인 투표 기능을 만들어 붙이면서 이승건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카카오 담당자는 전화로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회사가 크잖아요.” ... 카카오가 자체적으로 만든 투표 기능조차 곧 사장됐다.
울라블라와 다보트를 포기한 뒤, 이승건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아이템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함을 깨닫고 ‘고스트 프로토콜’을 발동했습니다. 팀원들(이승건, 이태양, 박광수, 김민주)이 서울 각지로 흩어져 새로운 이이템을 찾아보기로 한 것인데, 비밀 조직이 공중 분해된 채로 시작하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네 번째 시리즈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사무실로 출근하고 외주 개발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며 한 달 동안 수집한 아이디어는 총 100개에 달했습니다.
식당 메뉴 평점 사이트, 아마추어 가수의 노래 영상을 올리는 플랫폼, 삶의 스토리를 담은 부동산 정보 등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예선에서 탈락했고, 최종적으로 통과한 5개의 아이디어 중 3가지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보았습니다. 영수증 사진을 찍어 보관할 수 있는 앱, 문화 센터와 백화점이 여는 온갖 강습 강좌를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는 포털 사이트, 기획안과 디자인 리소스를 제공하고 작업 진척도를 체크할 수 있는 업무용 툴 등이었는데 이들 모두 초기 반응이 영 아니다 싶어서 바로 접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나온 아이디어 중에는 토스도 있었습니다. 이승건은 무턱대로 페이스북에 '송금을 간편하게, 10초 만에 송금하는 서비스'라고 적어 올리고 광고를 돌렸는데, 이틀 동안 1만 원을 지출한 광고는 6,000명에게 노출되었고, 24명이 클릭하였습니다. 이승건은 이 정도면 반응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해결책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정기 기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동이체 기술을 활용한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승건과 팀원들은 하도 실패를 많이 해왔기에 앱 개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선 티저 홈페이지부터 만들고, 트위터에 링크를 올렸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4시간 만에 1000번 넘게 리트윗됐으며, 사흘간 홈페이지에 전화번호를 입력한 사람은 2000명에 달했습니다. 이전에는 1년 넘게 8명이 2억 원을 써서 울라블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며칠 만에 1만 원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의사 그만두고 인생의 몇 년을 보낸 건 스스로 책임질 일이죠. 하지만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무슨 죄예요. 그 가족들의 인생은?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우리 함께 멋진 일을 이루어낼 거라고 믿고 온 사람들에게 정말 못된 짓을 하는 거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닥치고 제대로 하자.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자아는 지워버리고, 이제부터는 성공하는 거 찾을래. 어깨 힘 빼자.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주는 장사꾼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이렇게 모였고 슬프게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자동이체를 위한 기술은 다달이 일정액을 송금하기 위한 시스템이라, 요청할 때마다 이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토스팀은 한 주 동안 송금 기록을 모았다가 금요일에 사용자 통장에서 출금했으며, 송금은 8시간마다 이승건이 인터넷 뱅킹으로 일일이 돈을 보내 해결했습니다.
사용자 통장에서 빠져나가기 전까지 틈틈이 사비로 보내다 보니 즉시 송금은 불가능했고 이를 악용하는 이용자도 종종 있었지만, 그럼에도 2014년 3월 개시한 간편 송금 오픈 베타 서비스는 빠른 속도로 크기 시작했습니다. 가입자가 매주 8%씩 늘어서 4월 중순 토스는 가입자 수 5000명과 주간 거래액 4,200만 원을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당국의 금지로 4월 말부터 자동 이체 기술을 송금에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은행이 아니면 송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법 규정은 없었다. CMS망을 자동이체가 아닌 송금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없었다. 하지만 ‘해도 된다’는 법도 없었다. 국내 금융규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포지티브 규제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토스는 포기하지 않고 직접 은행 하나하나와 계약을 맺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규제 산업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50곳이 넘는 투자사에서 거절당했지만, 알토스벤처스에서 10억 원을 투자받으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은 생각보다 빨리 시작되었습니다. 2014년 10월, 카카오가 '뱅크월렛 포 카카오'라는 이름의 간편 송금 서비스를 다음 달 출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승건은 처음에 토스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어떠한 은행과도 계약을 맺지 못했고, 예전에 다보트를 카카오에 붙이려다 좌절한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팀원들과, 제대로 싸워보라는 당시 여자친구의 말을 듣고 이승건은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뱅크월렛은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2년 뒤인 2016년 12월 말을 기점으로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카카오페이도 당시에는 간편 결제 서비스에 주력했으며, 1년 반이 더 지나서야 카카오톡 앱을 통한 송금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 차려. 지금 네가 성공하든 망하든 아무도 몰라. 차라리 카카오랑 맞붙어서 제대로 망해봐. 그러면 팀이 유명해지기라도 하겠다.”
해가 바뀌어 2015년이 될 때까지 토스는 어떤 은행의 뱅킹망도 뚫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사회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편한 금융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늘어났고, 2015년 1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 업무보고에서 이승건이 발표를 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일변도의 금융 정책을 바꾸겠다고 화답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위원회에서 토스 서비스를 사실상 허용하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당시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기업은행장은 토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처음으로 뱅킹망을 열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부산은행과 경남은행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세 은행의 뱅킹망을 바탕으로 2015년 2월 23일 마침내 토스 서비스가 정식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용자는 빠르게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4대 은행을 뚫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한 은행 임원은 이승건에게 대체 얼마나 무모하고 말도 안 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지 아느냐며 시장을 교란시키기 전에 빨리 포기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다른 은행의 디지털 담당 부장은 선심 쓰듯 택시를 잡아주며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큰 은행이 반응하지 않자 토스는 규모가 작은 은행부터 차례로 연동해 레퍼런스를 쌓아나갔습니다. 또한 당시 토스가 커버할 수 있는 은행 계좌가 전 국민 계좌 수의 10%라면, 이 10%를 샅샅이 찾아내 사용자로 전환시키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출시한 지 약 1년이 흐른 2016년 3월 초, 토스는 목표했던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러한 성과 덕분인지 3월에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이, 5월에 신한은행이 마침내 뱅킹망을 열어주었습니다.
이후 이승건은 토스를 금융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비바리퍼블리카의 새로운 비전을 담은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 대다수 모바일 인구가 토스 서비스를 사용하고, 대다수 유저가 깊은 신뢰와 만족감을 갖고 사용한다.
- 토스는 유지 가능 이상의 수익을 확보하고 있고, 보안이나 서비스 안정성 면에서 전문가와 대중의 인정을 받고 있다.
- 토스는 송금을 넘어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플랫폼으로 인식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금융이나 은행 관련해 뭔가 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서비스’로서, 기존 금융들과는 다르게 심플하고 스트레스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긍정적 기대감을 주는 서비스다.
늘어나는 유저 수와 달리 토스는 여전히 뚜렷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습니다. 토스가 유저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납부하는 송금 수수료만 매달 2, 30억 원에 달했습니다. 중간중간 투자를 받으면서 성장을 이어왔으나, 언제까지 매출 없이 투자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사실 매출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15년 8월에는 간편 송금 이후 두 번째로 '토스결제'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토스팀은 가맹점과 고객이 토스 결제를 많이 이용할 것이고, 그럼 결제 수수료로 충분히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토스팀이 의심 없이 믿어온 두 가지 전제는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선 가맹점들이 결제 과정을 개선하고 싶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온라인 가맹점들은 사용자의 결제 편의성을 높이는 데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토스팀은 사용자도 많고 간편한 토스결제를 너나없이 이용하고 싶어 할 것이라 믿었지만 이 또한 그렇지 않았습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 수많은 새로운 페이 서비스가 쏟아질 때였고, 가맹점에서 토스결제를 쓰게 만들려면 오히려 토스가 돈을 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토스는 소액 대출 서비스 '토스대부'를 출시했습니다. 토스팀은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로 대출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대부'라는 단어는 많은 유저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게 토스의 대부업에 대해 비판하는 유저의 첫 게시물이 트위터에 올라온 지 하루 만에 5,000번 넘게 공유되었고, 평소 10-20건 내외였던 시간당 탈퇴자 수가 최대 160명까지 치솟았습니다. 결국 첫 트윗이 올라온 지 사흘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며 토스 대부 역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기회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당시 토스는 여러 가지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그중 문화상품권 판매 기능에 대한 수익이 몇 달째 흑자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는 2017년 초 기준으로 토스에서 돈을 버는 유일한 비즈니스였습니다. 사실 그래봐야 이익은 월 5,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토스팀은 이러한 기능을 40개 정도 찾으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모두 다 빠르게 해 보자는 의미에서 '다다다다' 팀을 만들었습니다.
다다다다 팀은 1년 동안 41개의 서비스를 출시했고, 26가지는 얼마 못 가 문을 닫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소액기부는 수요가 부족했고, 청첩장 간편 송금은 사용량이 들쭉날쭉해 공수를 들이기 어려웠으며, 장기 렌트 서비스는 아직 토스와 잘 연결되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성공했던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비대면 계좌 개설이 있었습니다. 사실 2016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15만 개의 비대면 계좌 개설이 이루어진 것이 고작이라, 서비스를 만들기 전 아이템에 대한 팀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토스가 증권사 한 곳과 계약하여 서비스를 출시하자, 3개월 동안 21만 개의 계좌가 개설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던 2018년 초, 카카오뱅크가 등장한 지 5개월 만에 500만 계좌를 달성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반대로 그즈음 토스는 출시 이후 처음으로 월간 활성 유저 그래프가 꺾였는데요, 토스 팀은 앞으로 유저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서 앱 디자인과 기능을 정렬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토스 앱 디자인은 꽤 오랫동안 뒤죽박죽이었고, 화면에 쓰인 파란색만 해도 수십 가지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토스팀 최고의 미덕은 '빨리빨리'였고, 디자이너를 포함한 모두가 사용자 수와 매출 성장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국내 최초 간편 송금, 국내 최초 무료 신용조회 등 기발한 기능으로 사용자에게 만족을 줬다면, 이제는 물 흐르듯 유려한 사용 경험으로 만족감을 선사할 차례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토스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한다’, ‘수익을 낸다’, ‘플랫폼 파워를 강화한다’ 등의 공격적인 문구가 나열되었던 ‘회사의 목표’ 문서에 ‘토스의 다양한 서비스를 모든 사용자에게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제공한다’, ‘사용자의 충성도와 신뢰도를 만든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이처럼 일관적인 유저 경험과 디자인을 위해 디자인 시스템을 정립하고, 효율적인 조직 구조를 위해 독립적인 서비스 운영을 보장하는 사일로 구조를 도입하는 등 토스는 내부적으로도 변화하고 성장을 이어왔습니다. 그렇게 내외부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2018년 12월 17일, 토스는 기업가치 1조 3,810억 원을 인정받으며 마침내 유니콘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토스는 금융 플랫폼이 되기 위해 2020년 8월 LG유플러스에서 결제사업부를 인수하여 만든 토스페이먼츠를 출범하고, 2021년 3월 15일에 토스증권, 그리고 2021년 10월 5일에 토스뱅크를 오픈했습니다. 동시에 2021년 6월에는 약 9조 원(74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는데요, 토스는 현재도 타다를 인수하고 베트남에 진출하며 성장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장 과정을 요약하느라 모든 내용을 담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며 토스의 성장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비스가 주는 가치에 반해 첫 번째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합류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페이팔로부터 투자유치가 임박했던 시기에 합류하여 날인하는 날까지 한 달여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까지 일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팀에 토스에는 없는 출근 시간을 정하고 지각비를 걷었으며,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고 매일 야근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서비스를 위해서, 누군가는 성장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온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인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토스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인재들에게 적절한 동기부여를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여러분은 어떤 일/요소에 몰입하고 싶으신가요?
“뭔가 멋진 걸 만들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어요. 아무도 못 했던 걸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요. 회사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는 문화,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성장이 동기부여가 됐어요. 성장은 모든 문제를 다 없애요. 피곤한 것도 못 느끼고, 아파도 안 아프고, 싫은 사람도 안 싫고요. 새벽 2시인지 오후 2시인지 시간 감각도 없애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