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켤레의 구두를 신고 사라진 사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by 미현

윤흥길 작가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책 이야기입니다.


권씨는 안동 권씨이며 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가진 거라곤 열 켤레 구두와 처자식들을 둔 비루한 사내입니다.

그런 사내를 바라보는 또 한 명의 사내, 선생이란 직업을 가진 오선생입니다.

그는 성남에 단독주택 자기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마련해서인지 집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이 높습니다.


권씨와 오선생 둘의 관계는 집주인과 세 들어 사는 사람의 관계입니다.

그가 오선생 문간방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두명의 아이와 처를 앞세우고 크고 작은 보따리를 지고 이고 오는 '풍경이 가관이다 못해 장관'이라 표현합니다. 게다가 예고 없이 이사 날짜보다 며칠이나 빨리 들이닥쳐 놓고도 집 보증금도 다 마련하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로 찾아온 이순경으로부터 정부의 사찰 대상 전과자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가진 거라곤 처지에 맞지 않는 구두뿐인 위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입니다. 사회 부조리에 맞서 투쟁까지 하고 감옥까지 갔다 온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오선생은 본의 아니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이제 권씨를 관찰자 입장으로 바라봅니다. 매일 아침 구두를 자랑이라도 하듯 쭉 늘어놓고는 반짝반짝 윤이 나게 구두를 닦는 권씨를, 처지에 맞지 않는 호사품으로 생각하면서도, 왜 그가 그토록 그것에 집착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투쟁을 하게 되고 전과자가 된 사연까지 듣게 된 후로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됩니다.


오선생이란 사람은 양심적으로 행동했던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찰스 램과 현실과 타협하고 이기적을 살아가는 차가운 인간미를 지닌 찰스 디킨스 사이에서 늘 번뇌하는 사내입니다.

오선생은 가끔 따뜻한 시선의 찰스 램의 눈으로 권씨를 바라보게 되고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매번 그의 곤란한 일을 다 해결해 주지 못하는 현실적인 찰스 디킨스이기도 합니다.


권씨의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 옵니다. 권씨는 오선생에게 수술비를 부탁하러 학교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오선생,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라며 휘청거리며 사라지는 권씨를 보며 오선생은 집 보증금이 번뜩 생각납니다.

그는 이미 낮에 오선생의 도움으로 병원비가 해결되어 아내가 잘 수술받고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오선생 안방으로 강도짓을 하러 들어갑니다. 오선생에게 정체만 들켜 버리고 부끄러움과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열 켤레 중 한 켤레 구두를 신고 아홉 켤레를 남기고 사라져 버립니다.


책을 읽는 내내 찰스와 디킨스를 오가며 번뇌하는 집주인 오선생보다는, 가진 거라곤 구두밖에 없는 권씨의 입장에 몰입했던 거 같습니다.

그는 어쩐지 우리 아버지 또는 다른 아버지들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지난날 권씨는 어렵사리 집을 마련합니다. 맨손으로 지어 올린 집에 문제가 생깁니다. 같은 처지에 몰린 동네 사람들은 투쟁하기로 합니다. 그는 생계의 존폐가 달린 투쟁이었지만 나서지 않습니다. 다른 투쟁자들의 투쟁에 무임승차하고 싶을 뿐입니다. 결국엔 도망가려다 붙잡혀 대모의 현장에 서게 됩니다. 투쟁하다 말고 갑자기 뒤집힌 트럭의 참외를, 시궁창에 널브러져 있는 참외를 우적우적 먹는, 결국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보고 눈이 돌아갑니다. 선봉자가 되어 투쟁에 앞장서고 결국 그는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출소 후에 삶은 더 험난한 세상입니다. 뚫고 나아갈 수 있는 강인한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여전히 안동 권씨 대학까지 나온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의 보루인 열 켤레 구두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 탓 남의 탓하며, 어려움에 처하면 술만 마시고 가족들에게 폐악을 부렸던 나의 아버지. 일 저지르고 사라지는데 도사였던 아버지는 딱 권씨였습니다. 심성은 겁 많고 새가슴이며 누구와 맞서 싸울 배포라곤 없었던 권씨 그리고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 봅니다. 번쯤은 만날 수도 있었던 오선생 같은 따뜻하고 좋은 찰스램 같은 사람을 아버지는 만나지 못했던 걸까요?

아버지의 일들은 매번 꼬이고 꼬여 더 이상 풀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곤란을 겪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권씨도 아버지도 점점 더 사는 것이 두려워졌고 현실 도피야 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걸까요.

우리 아버지는 무엇을 놓고 매번 도망쳤을까요. 마지막 자존심의 보루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아버지가 놓고 간 것은 구두처럼 남겨진 가족들이었습니다. 가족은 그런 아버지를 오선생 찰스 램처럼 바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건널 수 없는 강 건너편에 서서 서로를 차갑게 바라봅니다.


윤흥길 작가님의 '직선과 곡선', '창백한 사내' 등 한권에 수록된 이야기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연작 소설입니다.


돌연 사라져 죽다 살아온 권 씨가 아홉 켤레 구두를 태웁니다. 마지막 한 켤레 구두를 신고 다시 새롭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또 다른 시련은 한 켤레의 구두만 품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민낯을 다 보이지 않고,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나 진흙탕 세상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홉 켤레의 구두 그리고 한 켤레 구두는 무엇일까요.


나는 처음엔 아홉 켤레의 구두를 생각했고, 그리고 아홉이 아니었던 열 켤레의 구두를 생각했으며, 마지막으로 남은 양심이란 한 켤레의 구두를 생각합니다.

나의 모습은 양면의 두면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다면을 가진 다양한 인간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사람으로 지켜야 최소한의 양심, 한 켤레의 구두를 마음에 품고 무소의 뿔처럼 꼿꼿이 살아가는 것을 소망하며 지향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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